안구건조증으로 눈물이 얼굴을 다 적셔도 닦지 않던 낭랑 14세. "아무 일도 아니에요!"하고 눈물을 훔치며 고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명랑 여주에 빙의한 채, 누군가 나에게 왜 우냐고 묻기만을 기다렸다. 상태가 심각했던 당시의 내 꿈은, 배우였다.
어린 나는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마지막회가 되면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 결말을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렸고, 너무 슬픈 나머지 냅다 가슴을 치며 TV 앞에 엎드려 엉엉 울기까지 했다. 누가 보면 초상을 치룬 사람처럼 과몰입을 해댔는데, 어느 날은 나만큼 눈물을 잘 흘리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아무도 모르게(중요.) 드라마 주인공 자리를 탐냈다. 웬수 같은 눈물병도 쓸모가 있다며 꽤 진지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최애 대사를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넷상을 떠돌며 100회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드라마 full.mp4, 이름하여 '영상 기차'를 찾아다녔고 드라마 시나리오까지 불법 다운로드 받아 울면서 읽고 또 읽었다.
이 정도면 사실 드라마에 들어가도 무방할 수준의 몰입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매도 나더러 그럴 거면 TV 속에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나 역시 바라던 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으나 티를 내지 않는 것이 곧 배우의 품격 아니겠는가. 영혼이 어지러운 한 중학생은 할매의 핀잔을 역경 삼아 역시 주인공은 괴로운 법이라며 슬픔에 젖었고, 가만히 계신 신을 탓했다. 다행히 세상은 나에게 재능의 ㅈ도 주지 않았고, 그토록 흘러대던 눈물도 연기만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멈췄다. 나의 간절함은 외면 당해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인위적인 감정선에 눈물샘을 열어주지 않았고, 쓸데 없는 순간에는 무지성으로 물을 흘려보내며 밸런스를 맞췄다. 과연 나는 포기했을까.
그래서 그냥. 눈물이 많은 캐릭터로 영화 같은 인생을 살기로 했다. 낭랑 n세인 지금도 여전히 영화는 상영 중. 걸어다니는 스크린이 말한다. "신이시여. 지금이라도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