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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리다 Mar 28. 2022

구글캘린더와 활동

스케줄러인 듯, 다이어리인 듯

구글캘린더는 내가 일하는 회사의 업무 일정을 제외하고, 생활과 활동이라는 영역을 관리할 때 사용하는 툴이다. 업무 일정은 프로젝트 단위로 쪼개 노션(Notion)에서 관리한다.

    여기서 활동이란 내 수고 중 먹고사는 데 쓴 일, 즉 노동을 제외한 것을 가리킨다. 나는 그간 연애하고, 글을 쓰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운동하고, 여행하고, 신을 찾는 일을 활동이라는 영역으로 여겨 왔다.

    그리고 생활이란 내가 주로 가족과 재생산이라는 영역을 아우를 때 쓰는 표현이다.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 기념일 등이 가사노동과 함께 여기 뒤섞이고는 한다.

    이런 일정을 관리하는 데 왜 구글캘린더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처음에는 이유랄 게 없었다. 단지 노동 외의 시간을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을 때 마침 손에 잡힌 게 이거였을 뿐이다. 그럴싸한 이유를 굳이 갖다 붙이자면 애플의 기기들(맥북, 아이패드류)과 윈도우 PC를 오가야 하는 내 생활-업무 환경을 가져다 댈 수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애플 기기들을 사용하지만, 회사에서는 윈도우가 설치된 PC를 쓴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출근했다고 회사 일만 관리하고, 퇴근하면 집안일만 관리하는 게 아니잖아? 이쪽과 저쪽을 매끄럽게, 스트레스 없이 오가는 건 늘 중요했다. 당시에 두 시스템 사이에서 별 덜컹임 없이 연결되는 어플리케이션은 많지 않았다. 구글캘린더는 개중에 그나마 내가 다루기 쉽고 쓸 만한 도구였다.


인터페이스

구글캘린더의 인터페이스는 간단하다. 어디든 누르면 일정을 등록할 수 있다. 캘린더의 아무 곳을 누르거나, 왼쪽 위의 + 버튼을 누르면 일정을 등록하는 창이 뜬다. 여기서 시간을 지정할 수 있고, 또는 ‘종일'로 지정해 각 날의 상단에 띄워 관리할 수도 있다. 매일 단위, 주 단위, 사용자 설정에 맞춰 일정을 반복시키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또한 일정에 알림을 등록해 두면 기본적으로 시작 30분 전에 알려 준다. 몇 분 전에 알릴지 따로 지정할 수도 있다. 혹시 의도치 않게 캘린더를 잘못 눌러 일정 등록 창이 떴다면, 당황하지 말고 x 버튼이나 아무 곳을 눌러 취소하도록 하자.



   하루(d), 4일(x), 일주일(w), 월(m), 연(y) 단위로 일정을 표시할 수 있다. 또는 일정 목록(a)으로 표시할 수도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일주일 단위로 띄우는 게 제일 편한 거 같다.

    모바일 앱 환경에서는 기기의 설정에 따라 다크모드가 활성화된다. 반면에 PC에서는 크롬 브라우저를 사용할 때만 다크모드를 사용할 수 있다. 사파리 및 웨일 유저로서 아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다.


컬러로 일정 분류

이제 내가 이걸 어떻게 활용하는지 이야기해 보자. 나는 일정을 대략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기준은 “이걸 누구와 하는가?”이다. 구글캘린더는 각 일정을 색깔로 구분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 덕에 꾸준히 쓰다 보면 꽤나 알록달록한 캘린더가 만들어진다. 잘 활용하면 자신이 시간을 누구와 쓰는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꽤 유용한 편.



    1. 내가 제일 많이 하는 건 혼자 하는 일이다. 개인 작업들, 그러니까 글을 쓰고, 노래를 짓고, 운동을 하는 것 등이다. 이 일정은 연보라(기본 색상)로 지정한다.

    2. 생활, 그중에서 아내와 우리집에 관련된 일정은 분홍(연분홍)색으로 지정해서 관리한다. 대체로 퇴근 후나 주말의 식사, 또는 데이트 등이다. 가사노동은 여기에 안 넣는데, 이 단락의 마지막에 후술할 태스크(확장 앱)으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3.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일정에는 파란색(공작)을 사용한다. 나는 워낙 내향인이라, 보통 1~2주에 1번 정도 이 색을 쓸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4. 시민으로서 관심을 두는 일정도 있다. 사회 이슈에 관련해 열리는 행사, 현장 예배, 간담회 등이다. 반드시 참석할 생각으로 이것들을 스케줄에 넣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관심을 갖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가깝다. 이런 관심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내게 본격화 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란색(바나나)을 쓰고 있다.

    5. 한편 회사 일이 하루에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아예 캘린더에서 뺄 수는 없다. 출퇴근 시간, 노션에 적기에는 자잘한 잡무들, 구글캘린더 앱으로 푸시 알림을 한 번 더 받고 싶은 것들을 녹색(세이지)으로 지정해서 관리한다.

    6. 마지막으로 가사 노동은 구글의 웹 어플리케이션인 태스크(task, 흔히 ‘투두리스트’라고 불리는 앱들과 비슷하다.)에 별도로 관리한다. 태스크에 등록한 일정에 날짜를 기입하면 구글캘린더에도 연동되기 때문에, 그날그날 시간 단위로 관리하기 애매한 일을 이쪽에 때려 박으면 편하다.  


캘린더 구독과 공유

여타 캘린더 앱이 그렇듯, 구글캘린더에서도 개별 캘린더를 공유하고 구독할 수 있다. ‘설정'의 ‘캘린더 추가' 이하에서 이 부분을 다룬다. 필요하다면 사용자가 별도의 캘린더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거다. 이걸로 업무 일정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내 주변에는 구글캘린더를 사용하는 지인이나 업무상 관계자가 워낙 적기 때문에 별 쓸모가 없었다.



구글캘린더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외부 캘린더가 몇 있다. 설정을 켜거나 구독해 두면 여러 모로 편리할 것이다.

    우선 ‘관심분야와 관련된 캘린더' 탭에서 ‘대한민국의 휴일'을 켜 두는 게 좋다. 말 그대로 한국의 명절이나 휴일을 구글캘린더에 표시해 준다. 그리고 나는 ‘개정공동성서정과’(Revised Common Lectionary)도 별도로 구독했다. 기독교의 교회력과 성서일과를 구글캘린더에 표시하기 위해서다. 자세한 내용과 사용법은 해당 홈페이지(https://lectionary.library.vanderbilt.edu/calendar.php)를 참조하면 된다. 또한 PC에 한해서 ‘설정' → ‘일반' → ‘보기 옵션’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보조 캘린더'가 있는데, 여기서 ‘한국'을 활성화하면 음력 달력이 캘린더에 함께 병기된다. 아쉽지만, 모바일 기기에서는 이를 지원하지 않는다.


스케줄러, 그런데 이제 다이어리를 곁들인

앞에서부터 일정 관리라는 표현을 쭉 써 왔지만, 사실 나는 구글캘린더를 다이어리로 사용하기도 한다. 저널링, 즉 그날의 소재를 줄글로 기록하는 데 쓴다는 건 아니다(그런 걸 따로 정리하는 일기장은 역시 노션에 있다). 그보다는 일정을 마친 후에 계획과 달라진 시간을 반영하고, 몇 가지 키워드만 거기에 남겨 두는 거다. 점심에 먹은 메뉴가 뭐였는지, 어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따위를 지난 일정에 적는 식이다. 귀찮아서 몇 주씩 캘린더를 관리하지 않다가, 갑자기 기억을 더듬어 빈 캘린더를 채워 나갈 때도 많다.



    이건 내가 시간을 다루는 데 영 서투르기 때문에 생긴 습성이다. 인생에서 의욕이란 걸 송두리째 잃었던 30대 초반을 제외하면, 내 삶은 하고 싶은 활동들을 이리저리 기웃대고 오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나는 활동할 때 행복했다. 연애하고, 글을 쓰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게 좋았다.

    문제는 하루 중 노동과 잠을 빼면 남는 시간은 작고 귀엽다는 거다. 그나마도 피곤이 조금만 휩쓸고 가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스케줄 관리라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부스러기 같은 시간이라도 붙잡아 두지 않으면 눈만 껌뻑이고 앉았다가 늙어 죽을 거 같았다.

    물론 마음을 먹는다고 그대로 되는 건 아니다. 특히 나처럼 충동적인 인간한테는 더욱 그랬다. 나도 계획대로 척척 해내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연히 세운 계획들은 매번 속절없이 무너졌다. 몇 번을 실패한 후에 깨달았다. “계획을 세우고 그걸 실행한다.”는 프로세스는 나한테 전혀 맞지 않았다.

    일단 나는 시간을 계량할 줄 몰랐다. 계획이 늘 엉터리인 데는 다 까닭이 있었다. 한 가지 활동을 준비하는 데 얼마나 시간을 써야 하는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그걸 시작하면 다음 일과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닌지를 매번 잘 파악하지 못했다. 신기할 만큼.


저지른 뒤에 계획합니다

일단 뭐라도 해 봐야 하는 인간, 시행착오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이 나였다. 그건 시간 관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제적으로 틀을 짜서 시간과 활동을 관리하려 들 게 아니라, 활동에 뛰어든 다음 그걸 지속할 수 있는 시간대가 어딘지를 찾아야 한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과연 그랬다. 뭔가를 저질러야, 비로소 그걸 앞으로 남은 시간 중 어디에 끼워넣어야 하는지가 보였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느냐 하면, 뭔가를 하고 싶어지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일을 벌였다. 그다음에 구글캘린더를 열어서 그 일을 그 시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반복, 반복, 반복했다. 어떤 건 다음날에, 어떤 건 3일 뒤에, 어떤 건 다음주에 해 보면서 지속 가능한 리듬을 찾았다. 뭔가 나랑 잘 들어맞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빼서 다른 시간에 넣기를 몇 번씩 반복했다. 마치 엉망으로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낱낱이 주워서 제자리를 찾아다니는 듯한 나날이었다. 내 활동들은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비로소 그것들이 내 계획이 됐다.

    다 한 후에 세우는 계획, 이라고 밖에 이걸 표현할 수가 없다.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을 좀 많이 만나고 싶네. 아무튼 그러니 뭐든 여러 번, 오래 반복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내 활동들은 각각 시간과 결합했고, 일종의 루틴으로 정착한 놈들만 살아남았다. 그 끝에 이제 나는 루틴대로 사는 인간이 됐다.

    평일 점심에는 회사 뒷산에 오르거나 산책하고, 저녁에는 지하철 두 정거장을 거리를 걸은 뒤에 전차를 타고, 퇴근 후에는 집을 치우고, 저녁 식사 상을 치운 다음에는 달리거나 간단한 근력 운동을 하고, 글을 쓰거나, 노래를 짓거나, 책을 읽는다. 밤에는 스트레칭을 하고, 예약 취사를 건다. 두어 달에 한 번쯤 이런저런 사회적 행사에 나간다. 이것들을 하려고 따로 의식을 들일 필요는 거의 없을 정도다. 주말은 뭐.. 하고 싶은 대로 산다.

    오늘도 나는 구글캘린더에 내일 할 활동을 적는다. 동시에 어제 미처 계획하지 못했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얼기설기 재구성해 몇 가지 키워드와 함께 남긴다. 똘똘하게 시간을 다루는 사람이 보기에는 되게 쓸데없는 짓처럼 보이지 않을까? 근데 그게 나라서 어쩔 수가 없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나한테는 여전히 거대한 반죽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얼마나 잘라서 다뤄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나는 다짜고짜 이만큼 떼어 뭔가를 빚는다. 그럴듯한 걸 만들기도 하지만, 엉망진창이 되기도 한다. 그제서야 나는 “다음에는 이만큼 떼어서 이렇게 만들어 보자.”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면 엉망이 된 시간 한 덩이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아 X됐다.”라고 구글캘린더에 새긴다.

    뭐 어쩔 수 없다. 앞으로도 쭉 이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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