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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리다 Mar 21. 2022

바리스타룰스 로어슈거와 정착

습관성 정착러가 유당불내증에 시달리면

평소에 뭘 살 때 별로 고민을 안 한다. 처음 쓰는 종류를 매장에서 구입하는 경우에는 가격이 터무니없지 않으면, 그리고 디자인이 너무 괴랄하지 않으면, 그냥 가까이에 진열된 물건을 집는다. 계속 둘러본다 해도 더 나은 제품을 고를 눈썰미가 나한테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귀찮아서 그러는 것도 있다. 어차피 살 건데 뭐하러 시간을 더 들이나 싶어서. 오래전 한겨울 외투를 사러 동네 아울렛에 간 적이 있는데, 동행한 친구는 나한테 어떻게 이런 걸 고르는 데 15분(아니, 30분이었나?)밖에 안 쓰느냐고 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한번 사용한 제품이 썩 특출 나지 않아도 치명적인 단점이 없는 한에는 정착하는 편이다. 다음에도 그걸 산다. 경쟁사에 더 좋고 가격 경쟁력도 있는 제품을 내놨다더라? 드라마틱한 차이가 나지 않는 한에는, 어어 그렇구나 하고 건성으로 대답한 다음 원래 사던 걸 산다. 프로모션이나 시즌별 이벤트, 할인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냥 싸면 싼 대로, 비싸면 비싼 대로, 필요할 때(라고 쓰고 땡길 때라고 읽자) ‘전에 그거’를 산다. 전형적인 호갱이지. 심지어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아니라는 점에서 정말 완벽하게 단어의 의미에 부합하는군. 크흑.

    온라인 쇼핑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입 목록은 대체로 기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쇼핑 어플리케이션이 내 휴대폰 검색 내역을 트래킹해 맞춤 상품을 추천해 주겠다 해도 매번 거절. 어느 서비스가 1개월 무료 구독을 시켜 줄 테니 광고성 메시지 수신에 동의하라고 해도 거절, 거절, 거절, 삭제. 쿠폰은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이벤트? 응 응모 안 해. 그런 다음에 사던 걸 사는 식이다. 마케터들 입장에선 이런 소비자를 별로 안 좋아하겠지? 애초에 타깃으로 삼지도 않을 것 같다. 아니, 그들은 어떻게든 또 길을 찾으려나?

    딴 얘기지만, 이런 저한테 늘 신상품과 트렌드를 알려 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나마 현실 흐름에 저를 업데이트하면서 살고 있읍니다(…).

    그나마 전자제품을 고를 때, 취미랑 관련 있는 장비를 마련할 때, 아내나 남한테 선물할 때 정도에만 미리 이것저것 알아본다. 길면 4~5일, 보통은 하루이틀 쯤. 이런 걸 어떤 소비 특성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 뭐 그거야 파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겠다.

    아무튼 구구절절 썼지만, 이 글은 편의점 커피와 정착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 나놈은 편의점에서도 예외 없이 정착템을 산다.


사진은 본문과 관련 없음


편의점커피 정착템: 바리스타 로어슈거

가끔 편의점에서 커피를 산다. 평일 점심에 회사 사람들이랑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종종 그런다. 입구에 들어서면 다들 뭐 먹을까, 땡기는 거 없냐, 오늘은 내가 사겠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다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결정된 날이 아니라면, 나는  3초 안에 냉장 코너로 가서 3초 안에 한 커피를 집는다. “바리스타룰스(이하 ‘바리스타’) 로어슈거 에스프레소 라떼(이하 ‘로어슈거’)”다. 오후에 먹을 주전부리가 필요한 날이면 몽쉘, 카스타드, 후레쉬베리, 오예스, 빅파이 중에 한 박스도 함께 집는다.

    바리스타 시리즈에 정착한 지는 꽤 오래됐다. 바리스타에 ‘룰스'가 붙기 전, 라인업 중 ‘스모키 로스팅 라떼'만 눈에 띄던 시절 이야기니 어림 잡아도 10년은 넘지 않았을까?(참고로 이 제품은 2007년에 출시됐다.) 그래 봐야 내가 이걸 매일같이 마시는 건 아니니 개수로 환산하면 많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중 최근 몇 년간은 바리스타 시리즈 내에서도 로어슈거만 마신다.

    그러면 궁금하(다고 치겠)다. 이 작자가 왜 하필 여기에 정착했는지.


로어슈거

첫째, 일단 덜 달다. 이게 제일 크다. 로어슈거 제품이니 당연하겠지. 내가 단맛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심지어 초콜릿향을 함유한 단맛에는 열광하는 편이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컵 커피들은 대부분 나한테 너무 달다. 얘들을 마셨다간 5분 내로 혈당 수치가 폭증하고 오후 내내 졸려서 책상에 자빠질 것 같다는 (물론 이건 당 때문만은 아니고 원래 그런 면도 있음.) 예감이 거세게 몰아닥칠 정도. 식사 후 단 게 땡기면 차라리 케익을 먹고 말겠어요. 나는 정말, 식후에 단 커피를 입이랑 위장에 들이붓는 거 너무 싫어... 맛있게 먹은 점심까지 싹 다 설탕물로 절이는 느낌이란 말이야.



    물론 바리스타 로어슈거도 어디까지나 다른 커피들에 비해 설탕이 적은 거다. 달기는 단데 조금 덜 단 것 뿐이라는 이야기다.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카페라떼식 무설탕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맛있게 달다 싶은 편이랄까? 내 기준으로는 케익을 곁들여 먹어도 괜찮은 수준이다. 이러니까 케익에 아주 환장한 인간 같네.

    아무튼 내가 편의점에서 본 컵 커피 중에서 로어슈거로 제작된 상품은 딱 두 개였다. 이거랑 “마이카페라떼 로어슈거”. 공교롭게도 둘 다 매일유업 제품이다. 다만 내 생활 반경에서는 후자보다 바리스타를 찾는 게 훨씬 쉽더라. 다른 브랜드에서 로어슈거를 안 만든다는 건, 일단 이게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설탕 함유량에 따라 유통기한에도 차이가 나는 듯한데, 이건 확인해 보지 못했다.


락토프리

둘째, 락토프리 제품이다. 좀 소름돋는 건, 바리스타 시리즈 중에서 얘만 락토프리라는 거다. 아예 작정하고 나 같은 타입을 겨냥해 만든 제품인가 싶을 정도다. 덜 단 걸 좋아하는 취향과 유당불내증 사이에 무슨 생물학적, 식품영양학적 상관관계가 있나?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딱 로어슈거 제품만 락토프리 우유로 만들 생각을 했느냐는 말이지. 마실 때마다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도 유당불내증을 겪고 있다. 소장에 락타아제(이거 요즘에는 락테이스라고 부른다며?)가 생성되지 않아 유당을 분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우유를 마시면 복통, 소화불량, 설사, 재수 없으면 구토 등을 겪는 어쩌구저쩌구... 그거 맞다. 출퇴근길 30분 전에는 결코 우유, 특히 찬 우유를 마시면 안 되는 사람이다. 게다가 유당불내증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날 때부터 소화기가 약해서 출타할 때면 되도록 공중화장실 위치를 미리 파악해 둬야 하는 사람이다. 아내랑 결혼하기 전, 연애 초반 어느 데이트 때 밥을 먹다 벌떡 일어나 창백한 얼굴로 “마저 먹고 들어가. 나 먼저 갈게.” 대충 이딴 멘트를 던지고 화장실을 찾아 뛰쳐나간 적도 있는 사람이다. 그 건물에 화장실이 앖었거든. 간만에 떠올리니 쪽팔려 죽겠네 아오 씨(...).

    물론 카페라떼 계열 음료를 단숨에 들이켜는 일은 없는 편이고, 대체로 몇 번에 걸쳐 나눠 마신다. 게다가 식후에 사람들이랑 대화하면서 마실 때는 더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아무래도 생 우유를 마실 때에 비하면 장에 부담이 훨씬 덜 간다. 카페라떼를 마실 때 거기 들어간 우유가 락토프리인지를 굳이 매번 체크하지는 않는 이유다. 하지만 선택 가능한 옵션이 있다? 당연히 그걸 고르지. 어쨌든 속이 훨씬 편하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바리스타 로어슈거를 고르는 건 돌 달고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은근히 팬심이 솟아나는 포인트가 있는데, 내 만족감이 “덜 달아도 속이 편해서 마신다.”보다 “덜 단데 속도 편하네?”에 가깝다는 거다. 공산품 음료 중에 이 정도로 취향에 들어맞는 걸 찾는 게 쉽지 않은데, 솔직히 조금 감탄스럽다. 심지어 커피의 맛도 제법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내가 커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 그런 걸 수도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다른 사람들의 평을 찾아보면 락토프리 우유가 들어가는 바람에 고소한 맛이 좀 덜하다든지(이게 서로 관계가 있는 건 맞나?), 단맛이 덜해서 좀 심심하다는 경우도 있긴 한 듯하다. 음, 그렇군요.


습관성 정착러

소비라는 측면에서, 나는 어쩌다 한 제품군에 정착하는 인간이 됐을까? 아주 납작하게 말하자면, 귀찮은 걸 싫어해서 그렇지 뭐.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가지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방대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하고, 계산하는 걸 피곤해 하는 거다. 어지간히 중요하거나 급박한 일에 쓸 물건이 아니면 에너지를 들이고 싶지 않다. 거기에 시간과 품을 들이느니 차라리 돈을 좀 더 쓰고 말지, 라는 마음. 근데 문제는 뭐다? 돈이 (후략). 아무튼 이게 좋은 태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고민은 있는데, 당장은 풀어 낼 말이 없는 게 조금 답답하네. 나중에 더 생각해 봐야지.

    정착은 소비 외에 다른 측면들,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도 내가 자주 취하는 태도다. 이런 경향은 주로 습관, 요즘 자주 쓰이는 표현을 빌리자면 루틴을 형성하는 쪽으로 이어지고는 한다. 나는 일상을 거의 루틴의 연속으로 사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그런 타입이라는 걸 이해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자기계발 광풍 시대를 지나 오면서 ‘습관'이라는 말은 주로 ‘이기는' 따위의 단어랑 달라붙고는 했으니까. 근데 나처럼 게으른 인간이? 승부욕이 솟는 주기가 반 갑자에 달할 정도인 맹탕이? 그럴 리가, 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깨달은 건데, 루틴에도 결이 있더란 말이야. 치밀한 계획에 따라 루틴을 짜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는 되는 대로 살다 보니 어떤 루틴 안에 꼼짝없이 갇히는 쪽이 있더라고. 그리고 나는 명백히 후자다. 막상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이분법에 갇힌 사고 틀 같고, 자칫하면 MBTI로 굴러 떨어지기 딱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띠꺼워졌다. 흠. 어쨌든, 약간 반복하자면, 나는 한번 들인 습관을 꽤 꾸준히 유지하는 편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내 소비를 한 제품에 정착시키듯, 내 시간을 한 활동에 정착시키는 것.

    조만간 그 이야기를 한번 해 봅시다. 오늘은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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