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를 권리답게 보장하라
(“지하철과 세 가지 세계”에 이어진 글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그날은 2018년 3월 15일이었다. 나는 그때 고 한경덕, 이라는 존재와 이름과 죽음을 알았다. 물론 자신감과 확신에 찬 채로 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렇게밖에 쓸 수 없어서 이렇게 쓴다. 그는 2017년 10월 20일에 신길역에서 추락사했다. 선로에서 일어난 사고는 아니었다. 그는 전동휠체어 사용자였고, 일은 5호선 환승구 계단에서 벌어졌다.
그때 나는 일요일마다 신설동 어딘가에서 열리던 개신교 예배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는 항상 주중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두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한 후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 담당자를 맡은 사람은 나였다. 준비를 위해 이런저런 뉴스를 살피던 중 “리프트 호출버튼 누르려다 장애인 추락사...신길역 측 '리프트 이용과 관련 없다'?”(비마이너, 2015-03-15)라는 기사가 곧 눈에 들어왔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2017년 10월 20일 오전 10시경,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려던 한경덕 씨가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왼팔을 사용할 수 없던 그는 오른손으로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눌러야 했다. 이를 위해 전동휠체어의 방향을 돌려 계단 쪽으로 후진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이다. 98일 동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한 씨는 2018년 1월 25일에 끝내 사망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기 전,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추락해 사망했으므로 공사 측에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기사가 작성된 날로부터 4년 여가 흘렀다. 2심까지 이어진 소송 끝에, 법원은 2020년 5월 13일에 유족들의 손을 일부 들어 주었다. 서울교통공사가 상고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이 확정됐다. 그보다 앞선 2020년 2월 29일에는 신길역 5호선 환승 통로 계단에 리프트형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도 했다. 크고 둔중한 승강기는 고인이 떠난 그자리에서 운행 중이다.
얼마전 나는 그곳에 들렀다. 사진을 몇 장 찍었고, 엘리베이터 진입로에 설치된 동판을 한동안 바라봤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교통약자 이동권 확보 현장: 이 엘리베이터는 2017. 10. 20. 휠체어 이용 장애인(고 한경덕 님) 신길역 리프트 사고를 계기로 교통약자 이용편의를 위하여 설치 되었습니다.” 다시 사진을 몇 장 찍었고, 글귀를 몇 번 더 읽었다. 4년이나 지났구나, 하고 잠시 생각했다. 잠깐 기도한 후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산 거다. 이렇게 얄팍할 수 있나. 누군가가 내 옆을 지나쳐 엘리베이터를 불러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고인을 만난 적이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다. 거기서 한가롭게 어떤 비애를 느끼며 곱씹으려고 이 사건을 다시 꺼내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리속을 어지럽힌다. 그중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우선 고인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지? 느닷없이 뭐하러 그런 소릴 해? 지하철에는 이미 무수한 죽음들이 있어 왔다. 그중에 그나마 사회에 호명된 (하지만 이내 잊혀진)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찾아서 적는 데만 해도 적잖은 시간을 들여야 할 만큼일 것이다. 그 이름들을 굳이 열거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을 거다. 마음이 무력해진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질문은, 늘 이런 식으로 이긴다.
이 도시는 장애인 이동권을 철저히 외면한다. 그 이유로 누군가가 죽거나, 몸을 쇠사슬로 묶은 채 길바닥에 드러눕거나, 달리던 지하철을 멈춰 세워야 겨우 눈길을 주고 뭔가를 하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외치는 이들을 이기적이고 못된 자들로 폄훼한다. 휠체어 사용자들이 바쁜 출퇴근길을 유난히 훼방한다는 이유로 증오하는 이 사회는 괴물이라고, 당신은 차별을 일삼고 있다고, 나는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고 싶다. 그런데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지? 그냥 시끄러울 뿐이잖아. 장애인만 죽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왜 네가 거기에 흥분하고 난리를 떠느냐며 화내는 사람들과 마주보며 대거리를 하고 싶다. 근데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지? 글쎄요. 그런데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당신도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 대 쥐어 박고 싶네 정말.
사실은 이런 질문들에 더 이상 잡아먹히지 않고 싶어서 이 글을 굳이 쓰는 것이다.
실망스러울 만큼 하찮은 내 경험을 하나 이야기해 보자. 아직 쿠션 달린 러닝화를 사기 전(참조: "줌 페가수스 38과 쿠션"), 왼무릎 뒤쪽에 찬 염증 때문에 통증을 느끼던 어느 평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리가 전날보다 더 아팠다. 평소 같은 보행 속도를 도저히 유지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맞닥뜨릴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릴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마음을 먹고, 시간이 더 소요될 걸 고려해 평소보다 30분 일찍 집을 나섰다. 다리에 맨소래담 로션을, 스테로이드 성분까지 포함된 놈으로 잔뜩 바른 채였다.
지각했다. 나는 예상보다 더 느렸고, 엘리베이터는 흐릿하게 기억하던 것보다 먼 자리에 있었으며, 그게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를 미리 찾아봐 두지 않은 건 생각보다 큰 패착이었다. 심지어 어렵사리 찾아간 엘리베이터는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출근길에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나는 계획한 동선에서 절반 정도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했고, 나머지 구간에서는 그냥 통증을 감수하고 계단을 올랐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지각은 면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일 짜증나는 상황이 제일 마지막에 벌어졌다. 내릴 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출발하던 때보다 통증이 조금 더 심해졌는데, 절뚝이더라도 평지를 걷는 건 가능했지만 계단을 오르는 걸 더 이상 감당할 만큼은 아니었다. 평지와 계단에서 느끼는 통증의 격차가 너무 컸다. 이 정도면 회사가 아니라 정형외과를 가는 게 맞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회사에 갔지만. 아무튼 그자리에 드러눕지 않고 출근을 마무리하려면 엘리베이터가 만원이더라도 타야 했다. 그래서 어거지로 탔다. 비좁은 엘리베이터가 금세 지상에 이르렀고, 나는 사람들과 함께 배출됐다. 그러자 지상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이용하던 출구가 큰길 건너편에 보였다. 가까운 횡단보도는 내게서 150m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니 근데 진짜 씨X 30분은 더 일찍 나와야 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밀려들었다. 지상의 동선까지 이렇게 늘어나는 건 계산에 두지 않았으니까. 이로써 출근길이 멸망했다. 그 후 어떻게 회사까지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계속 속으로 욕을 했다는 것만 또렷하다.
매일 한 시간 일찍 출발해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한 시간씩 더 멀어지는 삶을 그려 본다. 나는 “그러면 참 불편하겠네.”라고 상황을 뭉개서 납작하게 서술하는 데 누구보다 능한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참 많이 죽었다지.” 하고 지나가는 데 오래도록 힘 하나 들이지 않아 온 것처럼 말이다. 무심하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들 그렇게 살잖아? 하고.
고인이 된 한경덕 씨를 떠올려 본다. 본 적 없는 얼굴과, 들은 적 없는 목소리를 생각한다. 그러면 부끄러워진다. 왜 그 사람은 죽었는데 나는 살아남았을까? 거기에는 아무런 타당성이 없다. 그런데 그가 남긴 엘리베이터는 운행하고, 나는 사진을 찍어 글을 남긴다. 누가 더 뻔뻔한가를 따진다면 답은 명확하다. 내 쪽, 살아 있는 쪽, 무심히 자기 앞만 건사하며 살아도 되는 쪽.
이제 나는 지하철역의 환승구를 오갈 때 생존에 확률이 개입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가 그라면, 휠체어를 타고 거기를 매일 오간다면, 하고 그려 보는 거다. 그곳은 출근길인 동시에 내 몸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을 확률을 덧입은 잠재적 황천길이다. “참 위험하겠네.” 라고 속 편히 뭉갠 다음에 지나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외출할 때마다 추락을 염두해 둬야 한다는 게 옳은 걸까?
이런 질문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나는 물어야겠다. 수치스러운 것보다는, 염치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의미 없는 짓이라도 하는 편이 낫다. 비록 이미 많은 시간 동안 수치를 택하며 먹고살아 왔다 해도 말이다.
고 한경덕 씨의 부고를 들은 날로부터 4년, 자신의 왼다리 안쪽에 작은 염증 하나가 돋아 아플 때까지, 그래서 고인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기까지 내가 뭉개고 앉았던 시간이다. 나는 그것도 수치스럽다.
고작 다리 안쪽에 생겼다 사라진 염증 하나를 가져다 타인의 죽음에 얹고, 그걸 갖고 수치를 운운하는 이 글이야말로 지금까지 내가 저지른 어떤 무심함보다 더 무례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앞서 한 모든 질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굳이 이 글을 쓴다. 수치스럽지 않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경덕 씨가 묻지 않았음에도 내게 남겨진 질문이다.
웬만한 역에는 이제 엘리베이터가 하나씩 다 있지 않나? 당신이 웬만한, 을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2022년 3월 6일(일)을 기준으로 수도권의 지하철역 278개 중 16개에는 아직 ‘1역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았다(참조: 한겨레,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법 개정…“이동권 보장 갈 길 멀어”, 2021-12-31).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매일 한 시간 일찍 출발해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한 시간씩 더...... 아니 그만 두도록 하자. 다만 예상하건대 당신이 지하철의 각 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동선이 오직 하나뿐이라면, 속이 이미 남아나지 않았을 거다.
정부와 서울시에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조금 기다리면 될 문제 아닌가? 당신이 조금, 을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약속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21년간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 관련 예산은 기획재정부를 거치며 삭감됐고, 관련 법은 강제 조항이 권고 수준으로 하향된 채로 개정됐다(참고: 한겨레, “장애인 100번 욕할 때 한번은 정부에 해달라”, 2022-02-09).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솔직히 당신은 이걸 왜 아직까지 읽고 있나? ......아니, 그래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건 다른 시민을 볼모로 잡는 일이 아닌가? 당신이 시민, 을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그럼 시민이 아닌가?
염증은 나았고, 나는 다시 5분씩 늦게 일어나고, 지하철은 제 때 와서 제 때 출발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수치스럽다. 그건 내가 금세 전처럼 나태해졌다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사람이 좀 게으를 수도 있지 뭘.
“장애인권리를 권리답게 보장하라.”
“예산 없이 권리 없다.”
누군가가 이렇게 외치며, 내가 탄 지하철을 멈춰 세운다면, 나도 그이와 함께 멈춰 서서 외치고 싶다. 그게 내 수치심을 씻으려는 알량한 행위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나 하나가 선다고 해서 세상이 멈출 리는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고 한경덕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그가 나를 모르더라도.
다시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