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에어 줌 페가수스 38 리미티드 에디션, 360km 착화 후기
이거 달릴 때 신어도 되는 신발이 아니었나? 출퇴근할 때나 조깅할 때나(심지어 퇴근길에 백팩을 메고 집까지 뛸 때도) 가리지 않고 주야장천 꺼내 신던 스니커즈를 두 개쯤 박살 내고 나니 이 생각이 들었다. 네 선생님, 당연히 아니지요. 그럴 거면 신발 회사들이 뭐하러 러닝화 라인업을 따로 만들겠습니까? 물론 러닝화가 아닌 걸 신고 뛰어도 선생님의 다리가 안 움직인다거나 하지는 않지만요. 후, 됐고. 이제 그만 죽여 주시죠. 바닥이 다 닳아 빠진 “필라 레이 트레이서”(이하 ‘트레이서’)와 뒷축 안쪽이 터져 나간 “나이키 데이브레이크: 베이지-형광-검은색”(이하 ‘베형검’)이 분통을 터뜨렸다...는 건 물론 거짓말이다. 근데 얘들이 정말 너덜너덜해진 건 사실이었다. 트레이서를 신으면 맑은 날 아스팔트에서도 미끄러질 지경이고, 베형검을 신으면 삽시간에 뒤꿈치가 벗겨질 정도였으니. 내 발도 터져 나가기 전에 얼른 러닝화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에 관해 아는 건 전혀 없었지만.
이때쯤 종방한 TV드라마 [런온](2020, JTBC)을 간간이 보던 아내가 러닝화를 하나 사 줬다. “리복 직 키네티카 호라이즌"(이하 '직 키네티카')이었다. 충성충성. 이건 작중에 엘리트 육상선수로 분한 배우 임시완이 착용하던 러닝화 중 하나인데, 컬러가 대박박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한 100km 정도는 신고 달린 것 같다. 이때는 러닝 1회에 2~3km 정도 뛰면 퍼지곤 했으니, 대략 30~40회, 6개월쯤 착용했다고 보면 될 거다. 통기도 잘 되서 뛸 때 발이 상쾌했다. 역시 러닝화가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흥이 절로 났다.
그런데 전에 자전거를 탈 때부터 왼무릎 뒤쪽에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 걸 자각한 게 이맘 때였다. 뼈나 인대 문제는 아닌 것 같았고, 그쪽 근육에 어딘가에 들어찬 염증이 회복되지 않는 듯했다. 달릴 때 발을 구르는 충격을 그쪽으로 고스란히 받는다는 뜻이었다. 직 키네티카는 쿠션에 강점이 있는 러닝화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되기는 어려웠다. 급한 대로 뛰는 빈도를 좀 줄이고, 무릎 보호대를 장만해서 양쪽에 둘렀다. 달리는 자세도 교정했다. 하지만 지금이 좀 더 나은 장비 덕을 봐야 할 때라는 촉이 솟았다. 계속 뛸 거라면 그래야 했다. 이대로 두면 달리기라는 취미 자체를 조기종영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치고 들어왔기 때문에. 마침 신세계 상품권이 수중에 몇 장 있었다. 근처 스타필드에 입점한 러닝화 매장에서 제대로 된 쿠션화를 하나 사기로 마음 먹었다.
그럼 뭘 살까. 우선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해 봤다. "러닝화를 찾으시나요? 당신의 착지법이 포어풋, 미드풋, 힐스트라이크 중 뭔지 확인하세요. 발목 회전은 내전, 외전, 중립 중 어디에 속하시나요? 안정화와 레이싱화 중에 어떤 게 필요하시죠? 어쩌구저쩌구..." 어, 지식인 및 유튜버 선생님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는데요. 좀 살려 주세요... 러닝 척척박사님들의 말은 들어도 이해가 잘 안 됐다. 고려할 게 왜 이렇게 많은지, 혼이 달아날 지경이더라(물론 지금 보니 그 사람들 말이 다 맞지만). 게다가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아식스, 리복, 필라... 아니 신발 회사는 또 왜 이렇게 많아? 당시에만 해도 써코니나 브룩스 같은 전문 브랜드는 아예 몰랐고, 아식스 외에 미즈노 등 일본 스포츠 브랜드들은 생각이 안 났는데도,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결국 정보의 바다에서 허덕이다 지친 나는 그냥 초심자가 쓰기에 무난한 놈을 고르자고 마음을 먹었다. ‘초심자용 러닝화’를 검색해서 몇 개 살펴보니, 개중에 가장 눈에 띈 건 “나이키 리액트 인피니티 런"(이하 ‘리액트’)이었다. 그래, 가자 나이키로.
이렇게 해서 쿠션 기능에 특화된 러닝화를 처음으로 사 봤다. 내 손에 들린 건 “나이키 에어 줌 페가수스 38 리미티드 에디션"(이하 ‘페가수스38’)이었다. 음? 리액트 산다면서요? 네, 근데 이 말 같은 친구가 너무 눈에 띄더라고요. 사실 리액트는 신어 보지도 않았답니다.
나이키에서 1983년부터 페가수스 시리즈로 출시한 제품은 여섯 개였다. 이건 일곱 번째 버전이다. 내가 산 건 그중에서도 리미티드 에디션. 지난 여섯 버전에 사용된 컬러들을 차용했다는데, 이제 첫 페가수스를 구입하는 나로서는 잘 모를 이야기였다. 그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이해는 이거였다. ‘색상 반전.’ 왼쪽과 오른쪽의 컬러가 반대라는 거. 왼발 바탕은 흰색, 오른발은 검은 색이다. 끈을 결착하는 웨빙은 분홍과 파랑이고, 이것도 양 발에 좌우 반전으로 적용돼 있다(러닝 경력자인 한 친구는 나중에 이 페가수스38을 보더니 곧장 ‘할리퀸’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실 매대에 전시된 오른발만 봤을 때는 색 구성이 이런지 몰랐다. 근데 점원에게 사이즈를 문의해 제품을 받아 보니 왼쪽이 흰 색인 거다. 속으로 생각했다. 오 뭐야, 쩌는데 이거?
신자 마자 바로 알았다. 아 쿠션화는 이렇구나. 기능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주인을 잘못 만난 죄로 불철주야로 굴림 당하며 위아래 옆구리가 다 작살 난 스니커즈들에게 사죄했다.
페가수스38의 밑창, 즉 미드솔은 리액트폼(내가 원래 고려하던 ‘리액트’ 러닝화의 그것)이 적용됐다. 푹신하고 쫀득하다. 특히 발 볼이 들어가는 자리, 즉 미드풋에는 줌 에어 소재가 추가로 들어가 있다. 건물 3층에서 뛰어 내려도 여기로만 착지하면 뼈는 안 부러지겠구나 싶을 정도로 푹신하다(아 물론 시험은 하지 마세요. 부러집니다). 단, 본인이 평소에 달릴 때 뒷꿈치로 착지하는(힐스트라이크) 편이라면 페가수스38은 그쪽에 줌 에어를 탑재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는 게 좋겠다. 바닥, 즉 아웃솔은 고무 재질이다. 겨울에 듬성듬성 낀 빙판을 만나도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면 달릴 수 있을 정도의 접지력을 보여 준다(깡 빙판이라면 괜히 덤빈다고 까불지 말자. 골로 가는 수가 있음). 이걸 신고 360km를 달렸지만 많이 닳지 않은 걸 보면 내 체감상 내구성도 괜찮은 편.
푹신한 미드솔이 바닥으로부터 오는 충격을 흡수해 준다면 신발의 상부, 즉 어퍼(갑피)는 전체적으로 도톰하며 견고하게 발을 덮어 지지해 준다. 대부분의 러닝화가 그렇듯 소재는 통기와 신축이 좋은 메쉬이다. 단, 두께가 좀 되는 편이다. 신었는지 벗었는지 구분이 안 될 만큼 가벼운 착용감이나 극강의 통기성을 기대한다면 눈높이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발등을 덮는 귀 같은 부분, 즉 설포도 그와 마찬가지로 도톰한 편이다. 그리고 발꿈치와 발목를 잡아주는 부분, 즉 힐컵은 견고하다. 사실 이 신발을 살 때는 러너의 발목을 지지하는 기능이 러닝화에(특히 연습용) 필요하다는 것 자체를 몰랐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얘는 충실이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견고한 힐컵이 발목을 잘 잡아 준 덕에 나도 아직까지 부상 없이 잘 달리고 있다는 걸, 최근에 다음 러닝화를 알아보다 깨달았다(...).
간단히 총평하자면 페가수스38은 푹신하고 도톰하다. 나 같은 초심자가 부상 없이 훈련하는 용도로 신기에 더할 나위 없다. 나 첫 러닝화를 괜찮게 고른 거 같아. 거기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첨하자면 ‘무난하다’가 있겠다. 대체로 어느 하나 뚜렷하게 탁월한 면은 없다거나, 이 신발만의 개성을 찾기 어렵다는 평이 있다. 근데 그거야 이것저것 신어 본 사람 이야기이고, 나로서는 앞으로 다른 걸 신어 봐야 의견을 덧붙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이제 다음 러닝화를 사야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흠흠. 그리고 나이키에서 출시하는 신발은 대부분 발 볼이 넓지 않은 사람을 기준으로 제작하므로(아디다스나 뉴발란스의 같은 사이즈에 비하면 체감상 천지 차이가 난다), 본인이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반 사이즈 정도를 큰 것으로 구매하는 게 좋을 듯하다. 2022년 2월 13일, 공식 홈페이지 기준, 기본 모델은 129,000원.
여기서부터는 ‘쿠션’이라는 키워드를 물고 하는 딴 이야기다. 다음화 예고이기도 하다. 시작은 이 문장으로 해 보자.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황정은, 〈디디의 우산〉, [파씨의 입문], 2021). 좀 갑작스럽지만, 푹신한 이 신발을 신는 동안 가장 자주 떠올린 말이다.
이 토막글의 맥락 안에서 저 문장을 내 마음 가는 대로 다시 쓰자면(작가님 죄송합니다), 누구에게나 쿠션이 필요하다. 이건 러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러닝화 소비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인간의 삶이 달리기, 경주, 시합, 경쟁 따위와 찰떡 같은 유비인 세계에 산다면, 다시 말하지만, 누구에게나 쿠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일상을 딛고 나아가는 동안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충격을 완충해 줄 쿠션이. 무릎과 발목과 종아리는 매일 경주를 감당할 만큼 강하지 않다. 문제는 그럼에도 쉴새없이 달려야 한다는 거다. 아주 운 좋게 타고난 강골이 아니라면 곧 염증과 통증이 그를 찾아올 것이다. 부상은 많은 것을 앗아 가고, 특히 시간을 지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쿠션이 없다. 그이는 늘 맨몸으로 지면의 충격을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대체로 이 문제는 하찮게 취급당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일 뿐이라는 철학이나, 70억 명이 넘는 사람 모두에게 어떻게 쿠션 달린 신발을 줄 수 있겠느냐는 셈법을 빙자한 반론이 일기도 하지만 그중 십중팔구는 아무 성의 없는 흉내에 불과하다. 다들 자기 다리 하나 건사하는 데만 해도 이미 바쁘고 죽을 맛인 거다. 그들은 숨 차다, 시끄럽다, 갈길이 먼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한다.
그러나 쿠션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당신이 만난다면 부디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건 세계가 으스러지는 중임을 알리는 파열음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다 부서진 다음에는, 당신 혼자 아무리 값비싼 쿠션을 두르고 있다 한들 별 의미가 없을 거다.
그래, 나는 출퇴근길에 자꾸 지하철을 멈춰 지연시키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글은 페가수스38로 시작해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앞에 다다른 것이다. 이 둘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 이 글을 쓰는 나와 모니터 너머 당신의 존재 만큼은 있다고 대답하겠다.
다음 시간에는 이 둘이 만나는 곳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지하철과 승강장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