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 SE 6개월 사용기 (2), 운동 편
1편, "애플워치와 정돈된 삶"을 먼저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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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핏밴드나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의 8할은 운동 기록 때문이었다. 특히 걷기와 달리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걷고, 높은 데 올라가고, 달리고, 자전거 타는 걸 좋아했다. 인생의 적지 않은 시간을 무작정 걷고 돌아다니는 데 썼다.
그런데 나이를 하나씩 먹다 보니 이 활동들을 적절한 계획과 강도로 운용해야 한다는 확신이 든다. 시간은 항상 부족하고, 체력은 무한하지 않으며, 나한테는 여러 의미로 여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일상에서 지속 가능한 운동, 삶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운동이 필요했다. 나는 이걸 ‘생존형 운동’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사람들이 동의할런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영역에 있어서도 애플워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운동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영역에서 애플워치는 특히 주요한 코치다.
내 주운동은 걷기에서 시작해 자전거 타기로 옮겨 갔고, 현재는 달리기의 지분이 절반쯤 된다(이 과정은 나중에 따로 글을 파서 남길 생각이다). 나는 달린 지 1년을 갓 채운 사람이고, 일주일에 많아야 두세 번, 한 달에 50~60km 정도를 달리며, 1km를 뛰는 데 6분 안팎이 걸리는 수준인 초급자다. 달리기를 기록하는 데는 나이키런클럽(Nike Run Club, 이하 ‘나이키런’) 앱을 사용한다. 사실 이 분야에서 좀 더 유서 깊은 기기/앱/커뮤니티는 가민(Garmin)인 걸로 알지만, 나이키런으로 발을 들인 후에야 그걸 알았다. 꽤 큰 결심을 하지 않는 한에는 당장 저쪽으로 넘어갈 일은 없을 듯하다.
나이키런은 내 애플위치 첫 화면 한쪽에 ‘이번 달 기록’ 표시 상태로 늘 박혀 있다. 난 이걸 볼 때마다 마지막으로 뛴 날을 생각하고, 다음 달리기는 언제 할지, 회복을 위해 오늘은 어떤 스트레칭이나 보강운동을 할지 계획한다. 나한테 애플워치의 유용함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지점이 여기다. 단지 이번 달에 얼마나 달렸는지를 애플워치 첫 화면에 걸어 뒀을 뿐인데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는 거.
나이키런은 자체적으로 첼린지나 코칭 및 커뮤니티 기능을 제공하지만, 사실 그건 한 번도 쓴 적 없다(그렇다. 난 전형적인 솔플러다). 그저 이번 달에 내가 얼마나 뛰었는지를 애플워치 첫 화면에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계속 뛰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일종의 선순환이 생기는데, 이게 안 써 본 사람은 모를 만큼 강력하다. 뛰고 나면 더 잘 뛰고 싶고, 더 빨리 회복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뛸 수 있는지, 회복 속도를 높일 수 있는지를 공부하고 싶어진다. 훈련을 지속하면서 달리기 능력이 향상된다. 뭐 이런 식으로.
전에는 달리고 싶을 때만 달렸다. 아주 가끔이라고 할 만한 정도였다. 몇 달에 한 번쯤 됐으려나? 사실 정확히 어느 정도 주기였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대중이 없었다. 신체 건강을 위한다기보다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는 의미가 강했다. 당연히 변변한 러닝화도, 운동복도 준비되지 않았다. 장비를 갖춰 봐야 계절이 바뀔 텐데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달리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흐지부지됐다면 어땠을까? 평소대로라면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지 않은 데는 애플워치에 월별 기록을 박아 놓은 게 꽤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아니었다면 여전히 전처럼 뛰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 때만 설렁설렁 뛰러 나갔을 거다. 달리는 능력도 제자리걸음이었을 거고.
사실 달리기보다 자주 하는 운동은 걷기다. 운동 강도가 달리기에 비할 바는 아니라서, 이걸 ‘운동’으로 치는 게 좀 민망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사실 일상에서 지속한다는 측면으로 보면 걷기에 비할 만한 게 없다.
나는 자주 걷는다.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어도, 목적지가 3~4km 안쪽으로 떨어져 있다면 일단 걸어갈 생각부터 한다. 시간이 촉박하면? 뛴다(...). 걷거나 뛰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약속 시간을 못 지키겠다 싶을 때나, 날씨든 컨디션이든 너무 안 좋을 때만 뭘 탈 생각을 하는 편이다. 이유랄 건 딱히 없고, 그냥 걷는 걸 좋아한다. 걸으면 기분이 좋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좋다 — 물론 계절에 맞게 옷을 입었을 때의 이야기기는 하다.
애플워치를 착용한 후로는 아예 걷기 루틴이 생겼다. 평일에는 주로 점심시간과 퇴근길을 이용해 걷는다. 점심 코스는 회사 근처의 높이 120m 안팎인 산에 다녀오는 거다. 산 입구까지 가는 데 1km, 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 1km, 정상에서 회사 근처 편의점까지 1km, 총 3km 거리다. 35~40분 정도 걸린다.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샌드위치랑 계란, 두유 따위를 사 먹으면 점심시간이 거의 꽉 차는 루틴이다. 퇴근길 코스는 지하철 역 두 개, 혹은 세 개를 걸은 후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경로다. 걷는 거리는 점심시간과 마찬가지로 3km쯤 된다. 이렇게 해서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점심과 퇴근길에 모두 걷는다. 점심시간에 그냥 사람들이랑 노닥거리고 싶거나, 퇴근길에 아 몰라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하면 하나쯤 생략하는 정도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아직 지속 중이다.
이 루틴은 만든 것이라기보다 발견된 것에 가깝다. 나는 언제나처럼 걸어다녔고, 손목에서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님 지금 걸음?” 애플워치의 기본 운동 앱이었다. 나는 걷기 운동을 기록하는 데 만보기나 걷기 전용 앱을 따로 쓰지 않는다. 자동 기록이 되는 기본 앱의 편의성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걷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앱을 먼저 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체감상 800m 전후에 이르면 애플워치가 “지금 걷는 거 같은데, 실외 걷기 운동으로 기록할래?” 하고 먼저 묻는다. 이렇게 하면 전체 기록 중 50m쯤은 날아가는 거 같지만 크게 아깝지는 않다. 그보다는 얘가 알아서 물어보고 기록해 주니 편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나로서는 구형 미밴드를 쓰던 때랑 가장 다른 게 이 부분이다(미밴드6에는 이 기능이 있다고 한다). 내가 먼저 기록하려고 앱을 찾아 켜지 않아도 된다는 거. 이건 달리기 기록에 나이키런을 쓸 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운동하면서 음악을 듣는 경험도 매끄럽다. 나이키런이든 기본 운동 앱이든 애플워치의 화면을 오른쪽으로 한번 넘기면 바로 음악 플레이어가 나온다. 처음 이걸 경험했을 때 막 감격하고 그랬다. 왜냐, 미밴드5 때는 이게 안 됐거든. 운동 기록 중에는 밴드로 음악에 관여할 수 없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멀티태스킹 자체가 안 됐다. 볼륨을 조절하려면 운동 기록을 멈추거나 휴대폰을 꺼내야 했던 것. 당연히 전자는 말도 안 되고, 후자는 너무 번거로우니까 그냥 안 하고 말았다.
경험을 매끄럽게 만드는 것, 이 활동과 저 기능을 연속된 하나로 묶는 것, 이게 애플워치를 사용할 때마다 느끼는 감각이다. 운동 기록이라는 영역에서는 이게 조금 더 두드러진다. 운동과 기록이 원래부터 하나인 것 같고, 달리면서 음악 환경을 조작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다. 이게 안 되던 시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좀 과하게 감동하는 건가 싶긴 한데, 아무튼 그렇다.
지금까지 적은 것 외에도 자잘한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 루틴을 병행하고 있다. 또한 물 마시는 습관 들이기와 수면 패턴 설정 등 건강 전반에 걸쳐 애플워치를 활용한다. 다만 이미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추후에 기회를 봐서 따로 풀어야겠다.
아무튼 작고 귀엽게나마 이런 운동 패턴을 유지하는 스스로가 종종 신기하다. 내가 운동을 해? 뭐라고 뛴다고? 오래 사니 별 걸 다 보네(…) 이런 맘. 몇 년 전에 비하면 체력도 꽤 붙은 것 같다. 적어도 나이를 먹으면서 약해지는 걸 그나마 상쇄할 만한 효과 정도는 있었다. 그리고 애플워치를 사용하면서 얻는 즐거움과 동기부여가 꽤 도움이 됐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성실하게 스스로를 돌봐 왔다. 참 이상하지. 나는 내가 드럽게 게으르고,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맨날 생각만 허공에 둥둥 띄우고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았다. 세상 어딘가에 성실의 화신이 있다면 딱 그 반대편에 있을 사람 같았다. 근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고. “성실한 것도, 지속하는 것도 재능”이라며 한탄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재능이 나한테도 조금 생겼다는 걸 알겠다. 타고 난 건 아니지만 조금씩 체득한 것. 여기에 반년간 내 엉덩이를 걷어차며 “지금 운동하고 있어? 아니면 할 거야? 너 이번 달에 몇 km 뛰었어."라고 재잘댄 애플워치의 공을 빼먹을 수는 없다.
계속한다, 유지한다, 지속한다, 같은 말들은 내가 삶에서 늘 아쉬워하던 어떤 부분을 쿡 누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나는 왜 한 가지를 끝까지 다하지 못할 때가 훨씬 많을까? 왜 매번 이리 기웃대고 저리 쏘다니며 허공에 시간을 뿌리는 걸까? 많은 관심사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가 그 시간 속에서 흐지부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여러 가지를 시작하지만 어느 분야에도 깊이가 없는 사람, 가능성은 있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문제인 사람, 잠재력을 써먹을 줄 모르는 사람, 취미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굶어 죽기 좋을 사람. 때로는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기에 질식해 죽을 것 같기도 했다. 다행히 그 언저리를 오가다 지금은 여기에 있다. 아직 굶어 죽지도, 질식하지도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기를 멈추고 움직인다. 그리고 내 바깥의 존재들이 보기에 내가 어떻게,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오래도록 간과해 온 한 질문이 들려온다. “어쩌면 나는 나를 기만해 온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몰라. 나를 가장 잘 아는 게 나라고 해도, 그게 항상 옳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이해한 나와 다른 이가 인식하는 나는 대체로 어긋난다. 그러니 나에 대해 골몰하는 것만으로는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거였다. 때로는 나를 다른 존재들에게 물어야 한다. 친구든, 동료든, 신이든, 뭐 좀 웃기긴 하지만 애플워치든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