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리다 Feb 06. 2022

애플워치와 정돈된 삶

애플워치 SE 6개월 사용기 (1)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애플워치(SE, 실버 컬러, 44mm 사이즈)를 사용한 지 얼추 6개월이 됐다. 사실 반년 전에만 해도 이걸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원래 손목시계를 귀찮아하는 편이었고, 당시에 운동 기록용으로 쓰던 어메이즈핏빗이나 미밴드5에 딱히 불만도 없었기 때문. 게다가 한 번 충전하면 20일 넘게 작동하는 어메이즈핏빗이나, 일주일 가까이 버티는 미밴드5에 비해, 애플워치는 거의 매일 충전해야 한다. “아니 어떻게 충전을 맨날 하냐. 귀찮아 죽을 듯 ㅋㅋ.” 이게 내 확고한 스탠스였다.

  하지만 그때쯤 미밴드5가 내 달리기 기록 몇 개를 연달아, 심지어 그때 처음으로 10km를 찍은 기록까지 날려먹기 시작했고 — 아, 지금 생각해도 열받네 — 아내님이 애플워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요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결제가 끝난 뒤였다(…).

  아무튼 이렇게 뻔하다면 뻔한 계기로 애플워치를 내 손목에 채웠다. 처음 박스를 뜯고 손목에 감을 때만 한 즐거움을 이제는 주지 못하지만, 얘가 여전히 유용하고 매력 있는 친구인 건 분명하다. 애플워치 덕분에 내가 좀 더 부지런하고 이것저것 꾸준히 하는 인간이 된 것 역시 사실이고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데, 나는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만큼 게으르고 잠 많고 산만하며 생산성 떨어지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럼에도 지난 반년간 일상의 많은 영역에서 애플워치의 도움을 받았고, 그 덕에 조금 덜 늘어진 채로 살 수 있었다.

  이제 애플워치가 가져다 준 즐거움과 공허에 대해 남겨 두고 싶다. 아마 애플워치뿐만 아니라 스마트워치 전반에 해당할 이야기, 그리고 약간의 넋두리가 될 듯하다.


시끄럽긴 한데 그게 또 나쁘진 않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애플워치는 진짜 수다스럽다. 알림과 활동 추적이라는 면에서 특히 그런 편인데, 얘는 일단 사용자를 가만히 두려고 하지 않는다. 사용자인 내가 지금부터 이런 활동을 할 거니까 애플워치를 켜서 기록해야지, 라는 관점에서 작동하는 게 아니다. 지(?)가 먼저 매일 내 손목을 톡톡 건드리며 일어나라 채근하고, 출근 준비하라고 닥달하고, 손을 씻을 거면 20초는 계속해야 효과가 있는 법이라며 숫자를 세고, 지금 1km쯤 걸은 것 같은데 운동 중인 게 맞냐고 묻고, 메시지가 왔다며 일일이 알리고... 정말이지 지치지도 않으며 내 한 발 앞에서 재잘댄다. 그러면서도 진동 피드백이 아주 부드럽고 적절해서, 휴대폰이 책상에서 연달아 드르륵 댈 때처럼 불쾌하지도 않다. 농담을 좀 보태서, 나는 나 자신이나 아내 정도를 제외하면 얘만큼 나한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존재가 세상에 결코 없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 정도로 수다스러운 존재가 근처에 있으면 정신이 막 아득해지고 남들보다 오만 배의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단 내가 그렇다. 나는 내추럴 본 내향인이고, 게다가 옆에서 쉼 없이 재잘대는 사람을 수용하는 능력이 현저히 낮다. 웬만큼 위트 있고, 나한테 유익한 자극을 주는 사람이 아닌데 옆에서 계속 떠들면... 나는 보통 그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그 사람과 천천히 거리를 둔다.

  그렇다면 내 손목에 붙어서 부지런히 조잘대는 이 애플워치란 놈은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얘는 허튼소리로 내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건 적절한 방음벽이고, 유능한 비서다. 본래 나한테 쏟아질 온갖 소음을 한번 거르고, 필요한 것만 걸러서 전달하는 일을빠르고 훌륭하게 해 낸다.


알림 선별

운동 기록이나 활동 추적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알림 이야기부터 해 보자. 일단 애플워치 류의 스마트워치나 밴드를 손목에 채운 순간 휴대폰의 각종 푸시 알림을 웬만해서는 놓치지 않게 된다. 시계가 손목에 다이렉트로 진동을 쏘니 당연한 말일 거다. 근데 그게 스마트워치의 특장점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 아니라고 대답할 거다. 나한테 있어서 대부분의 알림은 소음, 피로를 유발하는 요소에 가깝다. 그러니 애플워치라는 디바이스를 사용할 때 얻는 가장 큰 유익이 정말로 ‘모든 알림을 놓치지 않는’ 거라면, 난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을 거다.

  나는 알림을 놓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애플워치를 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업무 중 불필요하게 울리는 휴대폰 알림을 물리적으로 한번 거르려고 사용한다. 애플워치 내에서 생성된 알림을 제외하면 전화, 메시지, 업무용 메신저, 이메일, 캘린더 앱만 내 손목에 푸시 알림을 넣도록 해 뒀다. 나머지는 모두 아이폰 집중모드의 인솔하에 얌전히 잠들어 있는다. 나중에 내 여유와 필요에 따라 이것들을 볼지 말지를 내가 결정한다. 알림을 놓치지 않지만, 중요한 것에만 귀를 기울여도 된다는 것. 나로서는 이 점이 애플워치에서 가장 만족스럽다. 그리고 이건 애플워치용 알림 설정을 따로 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휴대폰에 설치된 각종 앱은 주중에 온갖 프로모션 알림을 날린다. 한두 시간만 지나면 잠금화면을 손가락으로 한참 쓸어내려야 할 만큼 많이 쌓인다. 게다가 나는 제법 많은 앱의 알림들을 끄지 않았다. 일종의 리서치 차원에서 이렇게 했는데, 그게 나름의 정보를 얻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누가 내 인X타에 좋아요를 눌렀는지나, 토X에서 정리한 기업 분석 같은 흥미로운 소식, 배X의민족 이벤트 일정 같은 것들 말이다. 근데 솔직히 일할 때는 이런 종류의 알람까지 실시간으로 받을 필요가 없다. 방해거리일 뿐이지. 내가 켜 둔 것이어도, 당면한 일에 필요하지 않은 알림은 소음이다. 그래서 업무 중에는 휴대폰을 집중모드로 설정해 재우고, 애플워치로는 중요한 알림만 받는다. 프로모션 및 여타 알림은 짬짬이 휴대폰을 열었을 때 따로 슥 훑어보기만 한다.  

  물론 미밴드5를 쓸 때도 이런 식으로 알림을 거를 수는 있었다. 다만 그때는 지금만큼 유용하지 않았고 경험의 성격도 달랐다. “아, 지금 무슨 앱에서 알림이 왔구나.” 하고 인식하는 데 만족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미밴드5의 작은 액정으로는 알림의 세부 내용을 단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때문에 경험 자체가 ‘알림을 놓치지 않는’ 데 더 특화돼 있었다(그리고 그게 너무 싫었지). 하지만 애플워치의 액정은 미밴드의 딱 두 배쯤 되고, 그건 웬만한 메시지를 상세하게 파악하는 데 충분하다. 이런 액정이라면 알림 여부를 진동으로 파악하는 데서 만족할 필요가 전혀 없다. 즉, 애플워치만으로 알림의 성격과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거다. 그러면 어떤 작업이 필요없어질까? 휴대폰을 열어서, 이게 중요한 알림인지를 다시 파악하려고 읽는 일이다.


알림으로부터 한 칸 떨어지기

이로써 애플워치는 푸시알림으로 가득 찬 휴대폰에게서 나를 한 칸 떼어 놓는다. 그건 내가 즉각 대응해야 할 알림과, 조금 늦게 확인해도 되는 알림을 일일이 구별하는 수고를 덜어 준다는 뜻이다. 나로서는 이런 단순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첫째, 애플워치에서 울리는 알림에는 관심을 가져도 좋다 — 스팸성 연락이 치고 들어오는 건 논외로 하자. 둘째, 휴대폰에 남은 알림들은 내 여유와 흥미에 따라 취사 선택해 확인하면 된다. 셋째, 이때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손목으로 구분하므로 시선을 빼앗길 필요는 없다.

  이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바쁠 때는 꽤 크게 작용한다. 특히 일이나 작업에 힘을 와악 주고 있던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가뜩이나 정신없는 와중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푸시알림에 눈길을 뺏기면 없던 짜증도 솟구치는 법이다. 간신히 모은 한 떨기 집중력은 날아가 버리고, 재수 없으면 잘되던 일마저 어그러지기도 한다. 지나친 비약인가 싶지만, 대체로 현실에서는 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러니 줄일 수 있는 소음은 줄여야 한다. 일상이 덜 번잡스럽도록.

  이 정도가 애플워치로 알림을 관리하면서 느낀 유익이다. 보통 누가 “애플워치 뭐에 써?”라고 물으면 “이걸로 알림 받아.”라고 대충 대답하는 걸 최대한 풀어서 쓴 거다. 드럽게 길게 썼네. 아무튼, 다음 글에서는 운동 기록과 추적 기능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정돈된 삶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넋두리다. 어릴 적부터 시간표를 짜는 게 고역이었다. 일정을 척척 가늠하고 동선을 짜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못해 기이했다. 계획? 뭐가 어떻게 될 줄 알고 표까지 그려. 프로세스는 고사하고 하루가, 매일이, 입시가, 취업이, 업무가 닥쳐올 때마다 허둥지둥하는 나로서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눈앞에 흥미로운 게 보이면 홀려서 따라가기 일쑤. 그렇다고 한길로 우직하게 가는 건 아니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참, 거 참, 미련하게 살았다(...). 대체 어떻게 여지껏 큰 사기는 안 당했는지, 그래도 먹고 살기는 하는지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근데 이제는 기력이 없다. 엄살 피우는 게 아니라 진짜로, 먹고사는 데 당장 필요하지 않은 아이디어는 잠깐 떠올리기도 힘들다.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이젠 할 능력이 없는 게 문제인 정도가 아니다.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를 만큼 매일 피곤하다. 삶이 좀 바쁘고 빡세야 말이지. 대단한 업적을 쌓은 게 아닌데도 그렇다. 언제까지 임기응변만 하려 들다가는 남은 인생 하나도 잘 견디지 못한다는 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맨날 알아 간다.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시끄러운 소리는 줄이고, 중요한 게 뭔지 잘 찾아내고 싶다.

  삶이 내 통제 밖에 있는, 나보다 더 큰 무엇이라는 건 알겠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많고, 내 시선과 돈을 빼앗아 갈 만큼 머리 좋은 사람으로 가득하다는 것도 짐작은 한다. 그래도 단정하고 정돈된 모습으로 살고 싶다. 일상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한치 앞도 못 보다가 끝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



2편, “애플워치와 지속”으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zolidago/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