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의 랜드마크하면 무엇일까 물론, 앞에서 말한 루터파교회가 일번이다. 하지만 시내를 돌아본다면 키아즈마 미술관이 단연 도시의 중심에 있다. 가장 번화한 느낌의 중심에 이 미술관은 자리를 한다.
이 미술관 주변은 차길의 중심이자 트램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 블럭 옆에는 중앙역이 자리를 하면서 헬싱키와 다른 도시들을 이어주고 있다. 키아즈마는 스티븐홀이라는 미국태생 건축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 건축물은 여러가지 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그중 하나는 보이는 면마다 다른 구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금 사진의 모습은 직사각형을 기준으로 보이지만 또다른 면은 생각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루한 느낌이 없는 그런 건물이다.
이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미술관이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의 역할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미술관의 어떤 성격의 연속성 그러니까 기획된 문화전시나 활동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만나고 놀고 그런 공간으로써 역할을 보여준다. 그것도 상당히 자연스럽게 말이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특정한 풍토 속에 어떤 문화적 공간이 만들어지는 유럽의 공간창출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화쪽을 탐구하는 사람으로써 이 부분은 부럽다. 물론, 우리 한국도 이런 공간이 많았다. 다만, 근현대사를 건너오면서 우리에게는 건물이 만들어지고 주변이 기획되는 형태로 변해있다. 따라서 자연스러움을 만들어가는데 시간이 필요해져 버린 것이다.
우리는 특정공간을 만들며 그 공간의 연속선상에서 주변을 이해하려는 의도된 면이 많다. 미술관 옆에는 관련 된 것이 있어야 폼이 난다는 생각 물론, 맞는 말일수있다. 다만, 그것이 의도적이라면 결국은 거리감있는 공간으로 남는다는 것이며 건물이 권위가 인위적으로 생겨 사람과 멀게 만들 수 있다.
차를 한잔했다. 다방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이곳에서 이것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다만, 컵에 써져 있는 문구가 재미있다. 가져가면 티나는 글씨가 잔에 문양으로 있다. 그리고 또하나 정식으로 파는 컵에도 이 문구가 들어있다. 결국은 사서가나 몰래가져 가나 의심은 비슷하게 받을 수도 있다..
미술관 입구다. 현대미술을 표방하는 곳인만큼 현대적인 감이 크다. 다만, 역시 과하지 않다는 그냥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공간으로 되어있다. 조심하거나 주의를 할 필요는 없다. 좀 단정적인 표현이지만 우리는 문화공간을 만들면 좀 떠받드는 태도가 있다. 시설을 보호하고 아끼는 형태가 강하다. 그러나 이곳은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설이 얼마나 보다더 많은 사람들에게 활용되느냐에 고민을 한다. 물론, 우리도 이제는 조금씩 바뀌고는 있다. 사실 시설이란 활용을 위해 만든 것이지 무슨 기념탑 쌓는 것은 아니다.
이 곳 미술관의 묘미는 이 통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전시 공간과 공간을 걸으면서 층을 올라가고 그 시선이 담백하다. 사실 서양 건축에서 담백이나 단아하다는 표현을 쓰기는 쉽지 않다. 그들은 특유의 꼬블랑이 과하다. 하지만 왕조가 없던 핀란드는 서민적이면서 단아한 정서가 있다. 특히 현대로 넘어오면서 보여주는 건축은 기후와 환경 등의 영향으로 화려함보다는 단순하면서 실용적이다. 이곳 핀란드는 추운기간이 아주 길다. 북구라서...
이 현대 미술관은 주변을 조망하는 태도가 좋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공간들은 핀란드의 정서와 사람들을 보게 만들었다. 마치 우리나라 건축에서 처마 아래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정서가 담겨있다. 저 건물 역시 헬싱키의 주요 건물 중 하나다. 다만, 명칭이 생각이 안난다. 하여간 자연의 변화와 함께 저 건물을 바라보면 나름의 풍경이 회화 한 작품을 보는 듯하다.
역시 또다른 유리 너머에 보이는 풍경이다. 미술관옆 잔디밭에는 상당히 많은 핀란드 젊은이들이 논다. 모습은 좀 격한 복장의 친구들과 수많은 피어싱의 얼굴이 종종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싸우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대체로 모여서 논다. 술도 마시고 껄껄거리기도 하고 미술관의 맥락은 전혀 없는 형태로 미술관옆 공간의 하나의 광장 역할을 하면서 노는 것이다. 쓰레기도 있고 이쁜 모습이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형태는 사람의 공간으로 자연스러워 좋다. 개발경제에 자유로움을 배우지 못한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상상하기가 불편한 모습이다. 미술관 옆에서 애들이 때지어 술마시고 격한 모습으로 노는 모습...아마 경비하시는 분들이 나타나 어떤 제약을 내렸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하는 분위기에 우리는 살고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 본 적이 없어 자유로운 모습을 보면 겁을 낸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이곳 키아즈마에서 전시된 사진전의 메인 사진이다. 핀란드에 걸쳐있는 동양적 정서의 흐름이 확 느껴졌던 사진이다. 원래 서양은 주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눈을 가려버리는 사진이 중심에 있는 것은 핀란드만의 정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북유럽쪽 정서는 좀 동양적인 흐름이 유행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몇년전부터 암스테르담에 한 2년 살고 싶어졌다. 물론, 아직 가지 못하고 있고 당분간 못 갈 것이다. 하지만, 나의 행운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주고 있기에 꿈꾸는 한 결국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 영화 '토마토'를 본 사람이라면 꿈을 꾼다는 것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이 미술관의 뒷편이다. 1/4면의 원형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약간이 각의 뒤틀림을 가지고 있다. 이 키아즈마의 특징인 다면성의 한 부분이다. 이 미술관은 4면으로 생각한다면 4면 모두가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대단히 특이하거나 화재가 될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크기(크기에 대한 강박이 없다. 일본은 아마도 크기에 강박에 대해서 가장 큰 나라일 것이다. 최근 현대사의 한국 역시 크기에 대한 강박을 병처럼 앓고 있다)와 과감성이다. 직선, 곡선, 사각형, 원 등등 변화의 다양성을 과감하게 적용시켰으며 그 부분을 일상화시켰다. 건물주변을 사람에서 격리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국립미술관들과는 다른 선택을 보여준다.
핀란드 헬싱키는 다른 유럽과는 느낄수 없는 동양에 근접한 정서를 많이 보여준다. 특히, 우리 현대사에 분란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정서를 생각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이상이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다. 누누히 말하지만 거대한 것을 원한다면 핀란드는 갈 만한 곳이 못된다. 하지만 소담한 또다른 유럽을 보고 싶다면 여기는 매력이 있다.
역시 다음은 다음에 이야기 해야한다.
*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