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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닥 김훈 Dec 01. 2021

<절름발이 미옥씨> 단편

절름발이 미옥씨는 항상 복수를 생각했다. 

한 번이라도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죽이리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렇다할 일들은 생기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복수라는 것이 뭔지도 모를 지경이다. 


시간만 흘려버린 것이다. 

지겹게.. 지겹게... 아 지겨워.... 젠장.. 죽여야 하는ㄷ...


미옥씨는 어디부터 다시 하려는 걸까 


이상하게 흘러버렸다. 뭔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끊어졌다. 미옥씨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미옥씨의 기억이 사라졌다.


단지, 각인이 된 단어는 미옥씨가 "절름발이"였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여러 놀림을 받았다. 


‘미옥아 똑바로 걸어야지 왜 절뚝거려 똑바로 걸어’

‘미옥이는 바로 걸을 수 있으면서 그렇게 걸을까’

‘그래 그거야 그렇게... 히히’


풉~ 저 년은 지가 정말 똑바로 걷는 줄 아는 가봐, 나이도 어린게 푸흐... 완전 웃겨.. 걷는 거 하고는 멀쩡해 보이는게 병신이야..


미옥씨는 몰랐다. 자신이 바로 걷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다 그런 놀림이 쌓여 그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원례 이렇게 걷는다. 그게 절뚝거리 건, 바로 걷는 것이 건. 이게 내가 걷는 모습이다.

더 이상은 안해!


‘미옥아 똑바로 걸...었.... 으.... 미옥아.. 미.....’


‘그냥 죽어 그냥.. 난 원례 너처럼 걸을 수 없다는 거 너도 잘 알자나 그동안 니 비위 맞추며 사는 것도 지루했어, 너의 웃음소리 이제 그만 들을래’ 


‘그냥 죽어’


미옥은 서슴지 않고 남자의 가슴에 칼을 찔러 버렸다.

어차피 남자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없기에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남자에 대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죽여주면 더 이상 나한테 실망 안 해도 되고 좋지... 내가 고맙지 않아’


남자는 목에 칼날이 꽂히기 시작했다. 지겹던 계획이었다.


‘잘 죽어 나도 지겨웠고 당신도 지겨웠을거야 그래도 남자라고 난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아’

‘이제 그냥 내가 당신을 사랑해 줄게.. 이대로 가..  그러면 하늘에서는 내가 똑바로 걷는 걸 보게 될 거야 잘 가버려 지겨웠어... 망할 사랑’


미옥은 방년 27세에 향년 34세의 남자를 세상의 끝으로 보내버렸다.

남자는 10년전 길가에 절뚝거리며 있던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키워주었다. 지극 정성으로 말이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가 그러니까 미옥이가 20살이 되던 해 미옥이와 결혼을 해서 살았다. 결혼식이니 뭐니 그런 거 없이 단둘이 그냥 살기로 약속하고 둘은 그냥 결혼을 해버렸다.


그리고 남자는 미옥을 열심히 사랑하면서 사랑의 크기만큼 그녀를 패기 시작했다. 희열이었다. 남자는 병신인 여자를 패는데 즐거움을 큰 즐거움을 느꼈다. 열심히 패고 열심히 사랑하고 정말 열심히 미옥씨를 사랑하면서 죽도록 때리고 그랬다. 


신나는 세월이었다.


미옥씨는 이 동네에 절뚝거리며 배회하던 여자아이였다. 그냥 그렇고 그런 길거리 부랑아, 노숙자 그런 애였다. 그래서 동네에서 그냥 심심하면 맞고 다니고 어린아이들 노인들 등등 모두가 미옥이를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그렇게 하면서 먹을 걸 던져주는 그런 애였다.


동네의 신나는 몸빵녀였다.


그런 미옥이를 한 남자가 데리고 가서 보살폈다. 깨끗한 옷, 집, 음식 등등 미옥이는 정말 꿈도 못 꾼 그런 일들을 남자는 해주었다.


그의 부모가 그녀를 언제 버렸는지도 모를 시점부터 그녀는 길거리에서 부랑자였다. 노숙자의 먹잇감이었고 동네의 더러움이었다. 그런 그녀를 남자는 데리고 가서, 열심히 키워서 결혼을 하고 그 후부터는 열심히 사랑했다. 그러니까 열심히 때리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때리고...


그럼에도 미옥은 좋았다. 따뜻한 깨끗한 집이 좋았고 음식이 좋았고 옷이 좋았다.

뭐... 인생은 공짜가 없는 신나는 도레미파 아닌가....


그런데 스물다섯이 넘으면서 하나가 싫었다. 그녀의 절뚝거리는 모습을 비웃으며 즐기는 남자가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미옥은 거울을 보면서 느꼈다. 비록 퍼런 멍에 빨간 실핏줄이 항상 번져 있지만 얼굴은 이 정도면 이쁘다. 더러운 옷과 더러운 머리, 더러운 얼굴일 때는 몰랐지만 따뜻한 밥에 깨끗한 옷 그리고 하얀 얼굴을 한 자신이 이쁘다는 걸 미옥씨는 스물다섯에 알았다.


그런데 남자는 정말 열심히 팼고, 여러번 병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다리가 부러지고, 팔이 부러지고, 코가 함몰되고, 고막이 찢어지고, 머리가 찢겨지고, 머리카락이 불타고 발가락이 부러지고


병원은 안식처이자 단골이었다. VVIP가 따로 있을까...

열심히 맞다보면 어딘가 부러지고 피가나고

느끼게 되었다. 

병원을 가겠고 며칠을 쉴 수 있다. 이럴 때 손님 대접 지대로 받고.. 사는거지 뭐...!


남자는 개새끼였다. 동네의 개 양아치!

그런데 이 인간에게는 재주가 있었다. 사람을 정말 잘 팼다. 시비도 잘 걸고 돈도 잘 뺐고, 고등학교 때 여자를 강간하려다 잡혀가고, 다시 동네로 돌아와 개 양아치 짓을 하며 깡패로 잘 컸다. 순수한 깡패 새끼였다.


여자가 필요하면 술집으로, 윤락가로 전전긍긍 했다. 그러다 뭐가 꼬였는지 거지같은 동네 거렁뱅이 여자를 데려다 키워서 살았다.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고 패고 신났었다. 여자의 비명소리에 어느 누구도 말 걸지 않았다. 한번은 여자가 도망을 치길래 동네 밖까지 나가서 슈퍼에 숨은 년을 찾아다가 죽도록 팼다. 내 여자니까 아무도 못 건드리더라... 신나게 패고 강간하고.. 


공짜다.


이런 즐거운 일을 왜 내가 몰랐는지 좀더 알았으면 더 재밌게 살았을 텐데, 근데 여자가 조금씩 나이가 먹으면서 힘도 생기고 이뻐지기도 했다. 신기한게 여자는 병원을 다녀오면 더 이뻐졌다.


개 같은 년 죽도록 패보자. 절세의 미인이 될지...

한 번은 일주일 내내 때려봤다. 웃긴 게 그 와중에도 밥 차리 라면 밥 차리고, 옷 벗으라면 옷도 벗고 시키는 건 다한다.


내 돈 맛을 느낀건가..

그래도 내가 개짓해서 돈은 좀 모았다. 이제는 개짓을 안 해도 될 정도는 되었으니, 나도 참 열심히 살았다. 나름 성실해...... 개짓 15년에 이제 개짓을 안해도 될 만큼 돈도 모았고... 확실히 성실한 것 같다.


근데 이 년은 병신인 게 좀 그래 어디 다리를 더 부러뜨리면 다리도 고쳐져 오는 게 아닐까..  어디.. 더 패보자 열심히 신나게 그리고 또 열심히 사랑하자.. 사랑.. 크흐.. 이 맛이지... 패면서 하는 맛 말이야..


다른 인간들이 이 맛을 알 리가 있나... 흐흐


그런데..

젠장.. 그런데 이년이..


내 가슴에 칼을 꽂고, 내 목에도 칼을 꽂아..... 개.. 같은..


죽어줘... 10년 이상을 너한테 몸 바쳤으니 널 죽여도 되잖아.. 그 정도 맞았으면 너 하나 죽인다 해도 흠 될 것 없어.. 그래 난 너한테 10년간 몸을 던졌어.. 이제 고만.. 여기서.. 화려한 쫑을 치자.. 응..  


제발 죽어줘.... 내가 너 그냥  좋게 묻어줄게 죽어줘.. 부탁이야... 죽어. 죽어

정말 너 답지 않고, 나 같은 이쁘고 멋진 관에 넣어서, 불살라 줄게... 빨리 죽어.. 죽어..


여러 번 칼이 남자의 살을 갈랐다. 여자는 남자를 죽이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수면제도 사서 물에 타 먹였고.. 쥐약도 물에 섞었다. 니가 죽을 수 있다면 뭐든지 가능할 만한 것은 다 탄걸, 너한테 주고 너한테 또 열심히 맞아주면서 니 개짓을 받아준 거야 그러니까 내 정성을 봐서 이 정도에서 죽어줘..


이 정도면 나도 널 죽일만한 자격 정도는 있는 거 아닐까..

그리고 이 동네에서도 너 죽는다고 뭐라 안 할 거야...

내가 그렇게 살려달라고 외쳐도 조용했던 곳인데, 너 죽는다고 요란할 그런 곳은 아니야..

그냥 편안하게 죽어..

니가 별소리를 처도 별일 없어.. 여기는..


잘 가 그래도 날 이 정도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최소한 니가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건 맞아

고마워 그래서 내가 내 몸을 바친 거야..

잘 죽어 


개자식아..


남자는 드디어 바닥에 널부러 졌다. 여자의 최선을 다한 칼질이 남자의 얼굴과 목, 가슴을 걸레로 만들고 거의 흔적도 없어 보일 정도로 제대로 된 걸레가 되었다.


축 사망.

불행 끝 행복 시작

개자식은 죽었다.

피가 사방팔방 

아.... 살인 초보라 피는 사방팔방 많이도 펴졌다.

어쩌지..


에이 몰라... 청소하고 락스로 닦지 뭐...


여자는 막상 개 한 마리를 잡고 나니 힘이 주욱 빠졌다. 그리고 생각이 멍해지고 시간과 함께 멈췄다.


뭐할까.. 이제 더 이상 맞을 일도 없을 거야.. 더 이상 노예 짓도 안 해도 되고 밥도 편하게 먹을 수 있겠지.. 아 돈.. 그래 이 새끼 돈은 이제 다 내 거군. 


남자의 착실한 돈벌이는 방안 가득 담겨있었다. 동네 사람들의 꼬깃꼬깃한 돈을 그대로 빼앗아 방에 쌓아 두었다. 현찰 가득한 방이 하나 있다. 이제 여자의 것이 되었다.


그래도 난 아직 절름발이 미옥씨지...

어디서부터 할까... 일단 잘까.. 기운이 없다.


자자... 어찌하건 좋은 하루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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