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린닥 김훈 Nov 30. 2021

<암스테르담#7#8> 역시 최악인가?

#7

칼이 가슴을 향해 돌진했었다.

칼의 동작은 내 의지와는 무관했다. 그리 날카로울 것이 없는 과도는 사과 자르기에도 부족했는데 믿기지 않는 힘으로 왼쪽 가슴 바로 밑을 누르면서 들어갔다. 


나는... 나.. 는..


맙소사 이건 아냐.. 제발 이러지 마!.. 이건 아니야.. 이건..

제발.. 으으...~..


하지만 이미 그녀의 손과 내손은 그녀의 왼쪽 가슴 밑으로 과도의 손잡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넣어버렸다.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에도 칼끝을 그대로 유지한 체 그녀의 손은 내 손과 칼을 놔주지 않았다.


제발 제발.. 이러지 마.. 제발..


계속해서 그녀의 몸은 경련을 일으켰다. 부르르 떨면서 입가에는 숨 없는 소음이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체 서서히 침묵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조금씩 턱은 왼쪽으로 구부러지면서 침묵과 눈의 모습은 조금씩 조금씩 움츠려 들었다. 그리고 경련들은 계속해서 흔들렸으며, 발은 사타구니 쪽으로 오므라들더니 무릎과 무릎이 겹치면서 발가락이 열 방향으로 쭉 펴졌다.


이윽고 그녀는 외마디의 숨을 던지더니 더 이상 움츠림을 멈춘 체 팔의 힘을 빼버렸다.

피가 흘렀다.


흰색 블라우스는 조금씩 그리고 빨리 붉은색으로 면적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방바닥은 한 방울 한 방울 붉은색의 물방울이 떨어지더니 물줄기처럼 자욱이 생기고, 피처럼 보이는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내 손은 빨개져갔다. 아무리 가슴을 막아도 피는 계속 번졌다. 손에서 팔로 그리고 내 온몸으로 번지며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제발.. 제발 이건 아니야.. 제발


그녀의 머리카락은 서서히 바닥의 피로 흡수했다. 조금씩 그러면서 역시 빠르게 

피가 머리를 덮어가면서 검은색의 머리는 검붉은 색의 적막함으로 쌓여가고, 하얀 피부는 핏물로 절여지면서 홍조가 만들어져 갔다. 이제는 온몸을 감쌀 수 있을 만큼의 피가 방바닥을 장악했다. 


나 역시 그 피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어야 했다.


죽었다.

살인..  

자.. 살..


과도가.. 

사과하나 자르기 불편했던 과도가 부드러운 살결을 그녀의 왼쪽 가슴 바로 밑을 파고 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슴은 숨결이 닿으면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매끄난 그런 욕정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그런 곳을 무뚝둑한 과도가 내손과 그녀의 손, 네 개의 손이 힘을 모아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어 그녀의 피를, 그녀의 영혼을, 그녀의 체온을 그리고 추억을 방바닥에 토해내게 하면서 식어가게 하고 있었다. 


당신은 최악이었어..


난 아무것도 소통할 수 없었다. 내 손을 소통할 수 없었으며, 사랑하는 아내인 그녀의 손을 소통할 수 없었으며, 믿었던 추억을 소통할 수 없었다.


그녀의 그러니까 아내의 피가 방바닥에서 나의 멈춘 몸뚱이를 감쌀 뿐 정신은 공간을 포기하고 정적이 되었다. 자멸했다. 난


당신은 최악이었어..

꿈이다.. 이건 꿈이다. 그래.. 꿈이다..


나는 피로 물든 내 손을 들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몸은 무언가 아직 할 말이 있다는 듯 한 번 더 경련을 보이며 움직였지만, 소리는 없었다. 다만 경련만이 공간을 체우며 피의 물결을 사방으로 흩어주었다. 기억이 사라지고 피는 벽을 천장을 그리고 더 먼 공간을 향해 노후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사망해가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다. 그녀의 손과 내 손이 함께 그녀의 심장을 파 들어가다니.

믿을 수 없다.. 도저히..


당신은 최악이었어..


시간은 의식 없이 미쳐 버렸다. 그리고 핏방울은 조금씩 응고되면서 딱딱한 그 무엇이 되어갔다. 커다란 자국들이 서서히 고체가 되면서 그 얇던 모습을 시각화시키며 단단해져 갔다. 그녀의 몸도, 옷도 더 이상 빨게 지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졌다.


석화되었다. 붉은 석화.


햇빛이 유리창을 서서히 기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먼지들이 날개를 펴며 유형했다. 소리도 없었다. 아침을 준비하던 아내의 소리는 침묵되었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내 모습도 사라졌다. 오디오에서 나오던 아침인사와 노래들 더불어 항상 발랄한 모습으로 희망을 던져주는 것 같은 소리들도 모두 침묵되었다. 


그저 지금은 사진처럼 정지된 그녀의 몸과 붉은 방바닥 그리고 내 몸에 있는 그녀의 피들...


태양은 창문 틈을 더욱 비 짚고 들어와 공간을 더 차지하며 나를 주지했다.


그래 마네킹... 

난.. 그래 나와 그녀는 피가 묻은 마네킹일 뿐이다. 이제 쇼윈도에 햇빛이 들면서 새로운 옷을 입을 거야. 주인이 그러니까 우리의 주인이 오늘 밤을 즐길 새 옷을 입혀줄 거야 붉은색의 이런 옷은 유행이 지났어.. 피부도 흰색이 더 좋아.. 붉은 얼룩은 옷을 전시하기에 좋지 않아..


도마 위의 칼이 사각사각 조금씩 손톱부터 잘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가락 손등 손목 팔.. 모두들 다 잘라버렸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왼손이 없어졌다. 그래서 난 오른손을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왼손이 없기에 오른손은 존재할 수 있었다.


젠장.


왼손도 최악이었나? 



#8

아내는 왜 죽었을까? 여전히 난 사랑하고 있었는데 별 변화된 일상이 없었던 감성은 언제나 그랬는데

회색이 짙다고 해서 검은색이 될 수없듯이 나는 항상 그랬는데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였던가?


"최악이야"


아내의 손과 내 손 중 어느 손의 힘이 더 들어 갔을까 아니면 혹 나도 힘을 보태면서 그러고 있었던 게 아닌가 내 감정 없는 일상의 파동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었다. 


나는 별거 없는 일상을 국민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살았다. 작았으므로 그냥 더 큰 사람들에게 적당히 맞으면서 그렇게 살았다. 힘도 없었고 더불어 난 반항하지 못했다...아니 그냥 그래 반항하지 않았다 그들의 폭력에 호응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무관심했다..


일종에 구토만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 뿐 소리도 표정도 없이 나는 폭력을 대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중학교 시절로 종언했다. 폭력도 기복이 없어지면 무감했는지 아니면 조금씩 생기던 내 자아가 지겨워 보였는지도 모른다.


'미친 새끼'


그가 나에게 남긴말이다. 아니 그 어린 중학생이 나에게 그러니까 어린 시절 중학생인 나에게 남긴 말이다. 그는 그 후로 학교에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폭력을 4년 가까이 무관심했다. 그가 강해질수록 나는 더 무관심해졌고 폭력은 중학생이 되면서 혁격히 줄어들었다. 작던 몸도 조금 커지기는 했지만 폭력을 막거나 회피하지는 않았다. 


그의 폭력은 나를 다른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기도 했다. 그의 폭력에 다른 폭력이 들어올 틈이 없었고 폭력의 수는 줄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강도는 더더욱 강해졌다. 그러니까 어린 중학생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내가 당하는 폭력은 자학의 선을 넘어있었다. 폭력자는 주먹, 발 등의 신체적 행동에서 다양한 도구를 들고 왔다. 그리고 정점이 그를 사라지게 했다. 



그때도 칼이었었군.


휴우~  칼


폭력자는 국민학교 시절 아무 반항 없이 폭력 당하면서도 자신의 명령을 하나도 수행하지 않던 아이가 싫증이 났다. 그래도 휘두를 수 있는 대상이 있기에 다른 대상들을 협박하기는 좋았다. 하지만 폭력자는 폭력의 차원이 없어져 가는 아이의 표정에 흥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폭력의 횟수는 줄어버렸다.


중학생이 되고 덩치가 비슷해져 갔으나 아이는 여전히 맞았다. 그냥 비 오는 날 우산 없는 아이처럼 그냥 빗속을 걷는 그런 아이인 것이다. 아무 표정 없는 아이.. 하지만 폭력자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명령에 복종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니 나에게 단 한 번도 말을 걸어온 적도 없었다. 아무런 단어가 나에게는 그 아이에게서 오지 않았다. 그 흔한 비명소리도 없어 아이는 묵묵히 폭력에 무방비했다.


'미친놈'

'넌 나한테 할 말이 그렇게 없어' '이제 4년이야.. 4년!'


..


폭력에 무반응하면 가학적으로 변하는 것은 쉬운 변화였다. 작은 칼날이 옆구리에 달려들었다.


'말을 해.. 말을.. 이 개자식아 말을.. 해'


아무 소리 없는 아이는 칼을 잡은 손을 눌렀다. 자신의 옆구리 쪽으로 힘껏 눌렀다. 그리고 아이는 아득해졌다.


'미친 새끼'


그리고 그 폭력은 종언했다. 그 폭력자도 사라져 버렸다. 다시는 학교로 폭력자는 돌아오지 못했다. 폭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무표정한 아이에게 그것은 그저 과정이었던 것이다. 종언을 위한 그리고 자유로워지기 위한 과정 그런 것이었다.


한 달 후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아이들과의 거리는 그 폭력자와의 거리만큼 멀어져 버렸고 대화는 단절되었다. 돌아오지 않는 폭력자의 부모가 찾아왔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 숙인 모습을 바라보며 떠난 아이 얼굴이 생각이 났다.


난 어쩜 그 아이에게도 최악이었을지 모른다.


옆구리의 흔적은 이제 희미하지만 그 아이의 모습은 기억이 난다. 아내의 눈에서 그 아이의 눈을 나는 다시 봐 버렸다.


'젠장'

'그땐 난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고.. 하지만.. 지금 당신은 아닌데'

'젠장’


폭력자의 그날 쥔 손에 느낌과 아내의 손에서 느낀 그것은 이상스리 비슷했다. 

그럼.. 난.. 아내를 죽인 것인가?


역시 최악인가


*총총

작가의 이전글 <암스테르담#5~#6> 방년 이십일세의 여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