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린닥 김훈 Dec 14. 2021

<고양이 부인과의 대화 1> 단편일까?

결혼을 했다. 

뭐... 불타는 사랑을 했다기보다는 같이 있었으면 해서 결혼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많은 말이 없는 부인이다. 


부인, 자기야... 나 출근해..


부인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알았다는 듯 “응” 한마디와 미소를 보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 부인도 출근을 해야 해서일 것이다. 


부인도 직업이 있다. 문제는 내가 그녀의 직업이 정확히 뭔지를 모른다는 것뿐...


부인과 나는 오다가다 만나고 그렇게 정이 들어버린 사이다. 연애 감성이라고는 1도 없는 나였다. 아니 나다... 지금도 연애라는 것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내가 부인을 만나게 된 건 백수 시절이다.


도서관.... 백수들의 안식처...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잘 기다려왔다. 뭔진 모르지만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야 했다고나 할까..


중1 시절 서울에 올라와 학교에 입학하고 제일 먼저 한일은 교무실에서 반 배정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 어쩌나...  응균이는 입학생이기는 하지만 좀 늦게 전학을 온 상황이라... 반 배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잠시 거기 앉아있어.."


서울 중학교 1학년 시작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열심히 다니다 부모님이 서울로 오게 되어 나도 서울에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뭐 그냥 그랬다. 


그리고는 중1... 다만 문제는 그게 3월 20일이라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낙천적인 아버지와 또 그냥 느린 게 천성인 어머니 덕에 나는 무려 20일 가까이를 중학교 입학을 못하고 집에 있다가.. 서울로 와서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을 해야 했다.


엄마 너무 늦은 거 아냐? 개학은 보통 3월 2일인데.. 20일에 입학을 하라고 하는 이유가 뭐야?


^^*.. 그냥 놀아.. 어차피 계속 다녀야 하는 학교인데.. 좀 쉬어...


엄마. 나 그렇게 공부 잘하는 학생 아닌 거 알지.... 그런데 이렇게 놀면 다른 애들이랑 진도도 안 맞고 등수도 밀릴 텐데..


시골에서도 그냥 그랬는데.. 서울에서.. 엄마는 그냥 네가 편하게 살기를 바란다.


너무 하나뿐인 아들에게 기대가 없는 거 아냐...


얘!  애가 중학생 된다고 뭐 그런 말을 하니... 내가 어떻게 우리 아들에게 기대가 없겠니.. 그냥 엄마는 네가 편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야..


그 덕에 나는 중학교를 남들보다 좀 늦게 들어왔고.. 반배정을 처음에 받을 수 없어 교무실에 앉아 멍하게 있어야 했다.


멍하니... 교무실 창밖을 바라보며.. 도시는 참 크다는 생각을 했다. 이 큰 중학교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서울애들한테 엄청 밀리며 사는 건 아닐까.. 무념한 부모를 둔 입장에서 시작이 피곤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 갈게  아들... 오늘부터 중학생이야 축하해!


엄마는 두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이럴 때.. 용돈이라도 좀 주고 가면 좋을 텐데.. 저 태연한 얼굴로 엄마는 총총하며 역시 사라졌다.


어.. 응균이..... 응균아.. 나랑 일단 선생님 수업 들어갈 반에 같이 갈레..


네???


아.. 이상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음. 

그럼 잠깐만 여기 기다려라... 나 수업 좀 다녀와야 해서..


그렇게 8시 30분부터...... 점심까지 흘러가야 했다......  물론, 내가 그날 중학생이 될 수는 있었다. 어차피 되는 것은 되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반배정은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에 받았고.. 그렇게 서울 중학교 시절을 시작했다.


그날 멍하게 학교 밖을 바라봐야 했고...


어. 저거 뭐지.... 응... 뭐지..

열심히 교무실 창밖을 주시했다. 


그랬더니....


까만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가 교무실 앞 화단 쪽을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 타이거... 

말을 할 뻔했지만.. 입을 닫고 텔레파시로 불렀다... 타이거 너도 전학 왔니.... 나 오늘부터 이곳 중학생인데... 어이 타이거..


고양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한번 봤다. 


일초 이초 삼초.. 잠시 멈칫하며 나를 주시하더니... 고개를 돌려 얼굴을 치켜세우더니.. 

그냥 걷던 길을 걸어갔다..

뭐랄까... 시골 촌 것에 대한 무관심이랄까..

한마디로 그냥.. 저건 뭐야... 라는 느낌으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움직였다. 


쳇... 고양이가 날 무시하나.


하여간 나의 기다림은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글쎄.... 음.. 그냥 그 고양이가 


음....


하여간 이런 익숙한 혹은 익숙해져 버린 기다림 덕에 적절한 기다림 장소를 나는 찾게 되었고 그곳이 도서관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인을 만났다.


**

작가의 이전글 <절름발이 미옥씨> 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