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의 물레방아는 언제 멈춰요?
작년 8월 26일에 출간 계약 직후에 올린 글이 있는데요.
글쓰기와 원고 투고, 계약까지 이루어진 과정에 대한 글로, 브런치에서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습니다.
https://brunch.co.kr/@zoo430/122
그로부터 (무려) 8개월이 지났습니다.
출간 계약 후 4개월~6개월이면 책이 만들어져 세상에 나오는 일이 많지만, 저는 최근까지도 퇴고만 하였습니다.
완성 원고로 투고를 한 것인데도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출판사의 출간이 밀려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저는 지난 8개월 동안 계속 퇴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부단히 퇴고를 하다가 다시 약속한 마감인 4월 22일에 원고를 넘겼습니다.
앞으로 다시 퇴고의 물레방아를 돌리기까지 몇 주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퇴고에 관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매거진에 있는 글 몇 가지를 보고 퇴고를 그렇게 많이 하느냐는 글을 여럿 받았습니다.
저의 퇴고 횟수가 절대 '많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텐데요.
다른 분들의 퇴고 횟수를 전혀 모르고, 저는 저의 역량 내에서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그래서 퇴고에 끝은 어디냐...
어디선가(아마 하루키 작가) 지웠던 쉼표를 다시 넣을 때가 퇴고를 그만해야 할 시점이라는 글을 읽었는데요. 제 생각으로는 퇴고의 끝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감이 있는 것이겠지요.
마감이 없다면 퇴고의 물레방아가 과연 멈출 수 있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퇴고를 하면 할수록 글이 좋아지기 때문에 멈출 수 없습니다. ㅠㅠ
13번 퇴고 후 투고했던 지난번 장편소설의 경우 공식적인 퇴고 횟수는 19번이었는데요. (여기서 공식적이라 함은 여러 번 보고 결국 다른 이름으로 저장해야 1번의 퇴고가 되기 때문에 사이사이에 비공식적인 수많은 퇴고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이제 그만하라고 해서 강제 종료가 되었을 뿐이지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몇 번 더 보면 좋겠다'의 갈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역시 부족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작업하는 원고는 에세이입니다.
소설에 비해서 분량도 훨씬 적은 데다가 산문이니까 비교적 작업의 강도가 수월할 줄 알았는데요. 어쩐 일인지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난번 장편소설 때 퇴고 근력이 붙어서인 것도 같고, 저도 조금 더 성장하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2021년 5월 17일에 처음 쓰기 시작한 이번 원고는 한 달 열흘 만인 6월 27일에 초고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의 퇴고를 한 이후 8월 중반에 원고 투고를 하였고요. 곧 계약이 되었습니다.
계약 이후 8월 말부터 다시 저는 부단히 퇴고의 물레방아를 돌려야 했어요.
출판사가 워낙 바빠서 원고 인도일은 넉 달 이후로 넉넉하게 설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작년 12월 6일까지 다시 홀로 여섯 번의 퇴고를 하고(총 10회 퇴고) 원고를 보냈습니다.
계약서 상의 원고 인도일에 맞추어 보냈으나 출판사에서 아직 제 원고를 본격적으로 볼 여력이 없는 상태라, 올해 2월까지 전체적으로 뭉뚱그린 피드백을 몇 번 주고받고 추가 꼭지 의논을 하고 목차를 정하는 정도의 일들을 했어요.
그리고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추가 꼭지를 썼어요.
여기서 추가로 쓴 꼭지가 문제입니다. 그 꼭지는 이제 시작한 글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꼭지의 퇴고 횟수와 맞추기 위해서 일 시작 전에는 항상 새 마음으로 새로 쓴 꼭지들의 퇴고를 먼저 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약간 강박 같은 것이지만, 횟수만큼 글이 바뀌기 때문에 어느 한 꼭지의 퇴고 횟수가 다른 것보다 처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퇴고만 반복하면 지치기 때문에 한번 꼼꼼히 퇴고를 하면 다시 1~2주는 책을 읽으면서 쉽니다.
말로는 쉰다지만, 계속 내용을 생각하고 책을 읽다가 단어를 줍기도 하고 전혀 다른 책 내용에서 엉뚱하게도 요긴한 생각이 떠오르는 일도 잦아서요, 그럴 때는 메모도 해둡니다.
퇴고의 과정은 얼마나 더 문장을 매만지느냐가 최우선 과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글의 흐름에 오류가 없고 논리적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물론 비문을 고치고 문장 쪼개기도 하고 단어도 바꾸는 등의 작업은 기본이지요.
단락과 단락의 매끄러운 전개, 그 사이에 뜬금없이 들어간 내용이 없는지, 이야기의 흐름에 걸리는 부분이 없는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앞 뒤가 맞는가 같은 것들을 주의 깊게 봅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합니다.
'이게 말이 되냐.'
'아까는 약간 다른 기조였던 거 같은데.'
'이건 논리가 부족하지 않냐.'
'니가 진짜 이렇게 생각했었던 거 맞냐'
이런 식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내 글을 봐야 합니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내가 쓴 글이기 때문에 굉장히 비판적인 시선이 없으면 다 말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내 글을 읽고 질문을 던지고 오류를 바로잡기란 꽤 힘들어요.
그래서 편집자들이 처음에 하는 역할이 그것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작가님들이 꽤 기분이 상한다고 들었습니다. ㅋㅋㅋ)
저는 항상 원고를 넘길 때마다 편집자님께 말합니다.
대차게 까셔도 전혀 상처받지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달라고요.
편집자의 역할이 그런 것이고, 어떻게 하면 내 글이 더 괜찮아질지 고민하면서 읽어주는 첫 번째 독자이기 때문에 까이면 까일수록 좋은 것입니다.
편집자의 질문에 고민해보는 시간은 고스란히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에요.
내가 내 글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몇 달 묵혔다 보라는 말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 본들 어차피 내가 쓴 글이라서 그 사이에 생략된 내용을 내가 알기 때문에 말이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정말 오래 보면 그런 부분이 보입니다.
헉!! 하는 대목들이 있고, 그게 열여섯 번째 퇴고 때도 나옵니다.
와, 이걸 말이 된다고 써놓고 여태 못 봤네... 하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치는 거죠.
작년 6월 17일에 완성한 초고의 꼭지 수는 스무 개입니다.
이게 한글 파일로는 107쪽, 원고지로는 763장의 분량이었어요.
올해 4월 21일에 16번 퇴고한 원고의 꼭지 수는 스물여섯 개입니다. 여섯 꼭지를 더 썼어요.
이게 한글 파일로는 104쪽, 원고지 747장 분량입니다.
꼭지를 여섯 개나 늘렸는데 오히려 분량은 줄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삭제를 했어요.
한 꼭지에는 한 가지 주제가 되어야 하는데 곁다리로 들어간 내용이 있으면 삭제.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삭제.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도 삭제.
구구절절하다 싶으면 삭제.
도저히 문장이 좋게 안 고쳐져도 삭제.
삭제 삭제 삭제입니다.
그래서 초고를 우아악~ 하고 많이 써놓는 것이 좋습니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고부터 16번째 퇴고까지 모든 파일이 다 남아있어서 단락 비교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몇 개의 단락을 가져와서 비교하자니 내용이 노출되어서 그건 출간 이후로 미루어야 겠어요.
항상 삭제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12번째 퇴고 까지도 분량이 줄지 않았어요.
심혈을 기울여서 쓴 글들을 삭제하는 게 심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꼭 삭제하려는 문단의 문장들은 꽤 괜찮은 거 같단 말이에요.
삭제는 하더라도 최소한 여기 있는 문장 몇 개는 다른 데 가져다 붙여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따로 삭제한 것 중에서 문장을 골라 골라서 기록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 부질없다!
결국 그것은 영원히 버려집니다.
나중에는 너무 고민 없이 삭제하는 건가 싶어서 일부러 조금 고민도 해보지만요, 고민스러운 부분은 결국 삭제가 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민이 되는 문장은 거기 붙어있으면 안 되는 문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쓴 문장을 내 손으로 블록을 지정하고 델리트 키를 누르는 건 조금 아쉬워도, 최대한 내 글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합니다.
한 번의 퇴고가 한 번 읽고 지나가며 고치는 게 아닙니다.
같은 문장을 열 번, 스무 번 정도 읽어봅니다. 고작 5줄의 한 문단을 1시간 동안 매만질 때도 있어요.
계속 똑같은 문장을 읽어보고, 앞뒤 문단을 다시 보면서 질문하고 고민하는 것이니, 얼마나 많은 나의 문장을 읽게 되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결과물을 읽는 사람은 간단히 읽고 지나가는 쉬운 문장이겠지만, 그 문장은 수도 없이 읽고 고쳐진 문장이지요.
그걸 알기에 저는 책을 천천히 읽습니다.
이 문장을 얼마나 두드리며 다듬고 고쳤을지 조금은 알기 때문에 빠뜨리지 않고 제대로 읽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습니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식으로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출판사의 피드백이 오가며 다시 치열한 퇴고를 할 것입니다.
몇 번 더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마감하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왜냐면 퇴고의 끝은 없고, 끝내야 하는 시점만 있으니까요.
그래도 퇴고의 과정이 즐겁고 달콤한 것은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게임할 때처럼 레벨 업의 느낌이 있습니다.
퇴고할 때마다 지난번에 왜 여기를 고치지 않았지? 하는 것이 계속 나와서 항상 기가 막히는데요.
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새 내가 발전하여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요.
모두 즐거운 글쓰기와 고쳐쓰기 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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