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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Dec 30. 2020

2. 장편소설 퇴고의 기나긴 과정

1년이 넘는 수정 기간

1. 장편소설 초고를 쓰기까지


두 달 만에 써낸 초고는 A4지로 192 페이지나 되었습니다.

그 내용과 문장이 어떻든 간에 그만큼이나 써냈다는 만족감은 있었습니다.

이것 다음에 요런 내용을 쓰면 좋겠다는 계획 같은 것도 없이 그냥 써 내려갔습니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나왔습니다.


단편은커녕 간단한 습작조차도 단 한 장이 없는 인간이 거미가 거미줄을 뽑듯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써냈다는 건 좀체 믿기 힘든 얘기입니다. 제가 썼지만 제가 쓴 것 같지 않았어요. (단지 '양'만 말하는 것입니다. 문장을 보면 바로 현실 자각이 되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9세의 어느 날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다가 문득 '소설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다는 걸, 어디선가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쓴 소설로 군조 신인상을 받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야구를 관람하다가 느닷없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소설을 쓰고, 문학상을 받았다는 글을 읽었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소설 쓰네.'


하지만 그 이후에 하루키 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국어교사이셨고, 그 영향으로 대단한 독서가로 자랐다는 것과 (본인도 무지하게 책을 읽었다는 것을 많이 어필했습니다.) 와세다 대학의 문학부에 입학했다는 이력을 본 순간 너무나 납득이 갔죠.

'아~~ 그럼 그렇지. 바탕이 있었구먼.' 이런 느낌이랄까요.

시나리오 집필도 했었다 하고, 문학부라니 체계적으로 배우고 익혔겠고 (그가 대학교육이 쓸데없었다고 쓴 것을 보긴 했지만) 습작도 많았으리라 짐작합니다.

(참고로 저는 하루키 님의 장편소설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하며 몇 번씩 읽었습니다.)


갑자기 제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걸 이야기하려다 보니 하루키 님의 야구장이 생각나서 썼습니다.

물론 감히 비교할 생각으로 쓴 건 아니니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다만 제가 갑자기 써볼까? 하고 썼다는 것에 어이없다 하실 누군가가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고로 저는 경제학 전공입니다.)


어쨌든 바탕도 없는 제가 느닷없이 쓴 장편의 초고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다시 읽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할 정도였는데, 남편이나 친구한테라도 보여줄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수정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9년 10월부터 지루하고 끝도 없는 퇴고에 들어갑니다.

내 생각을 담은 몇 줄의 짧은 글을 쓰려해도 서너 번의 수정이 필요한데, 이건 서너 번으로 될 것도 아니거니와 한 바퀴를 도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글이 너무 많았습니다.


초반 수정은 문장보다는 내용을 넣고 빼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계속 읽다 보니 이런 내용은 앞에 나오지 않나? 굉장히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소리를 또 하고 또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기 시작한 것도 수차례였습니다. 왜 이런 내용을 넣었지? 하고 빼버리기도 하고, 이런 에피소드를 넣어야 해!! 하면서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빼는 것에는 소심하고 추가해야 할 내용은 계속 늘어나서 2019년 11월 18일, 4차 수정을 마친 원고는 232페이지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어 아이는 초등의 마지막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종일 집에 있는 아이가 심심해하면 게임을 하도록 컴퓨터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종종 남편도 컴퓨터를 써야 했기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아이의 공부를 봐주어야 했고, 함께 영화도 봐야 했고, 티브이도 봐야 했고요. 식사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하지만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소설로 무얼 할 것도 아니기에 저는 맘이 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을 내서 했다기보다, 시간이 나면 파일을 열어서 수정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MS워드에서 작업을 하다가 한글로 작업했습니다.


남편은 계속 컴퓨터를 돌려 쓰느라 집중하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하면서 몇 번이나 노트북 얘기를 꺼냈습니다. 노트북을 하나 사자고, 명색이 작가인데 개인 노트북 하나 없는 것이 말이 되냐고 했고, 저는 '작가는 무슨!' 이라고 하면서 굳이 노트북까지 필요 없으니 괜한데 돈 쓰지 말자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노트북까지 사놓으면 영락없이 글을 계속 써야 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좀 있었습니다.

'남편은 내가 계속 글을 쓰면서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괜히 장편소설을 썼나?'

저는 비싼 걸 사놓고 노트북으로 인터넷만 하고 있는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며칠을 우기더니 노트북을 주문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자리는 식탁이 되었습니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저는 저 식탁 자리에 있습니다.

저기서 블로그도 하고, 서핑도 하고, 쇼핑도 하고, 온라인 인맥과 소통도 하며 글도 쓰고 밥도 먹습니다.


제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식탁입니다. 원목 의자가 무거워서 최근에 책상 의자로 바꾸었습니다. 저는 저 의자에서 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글도 씁니다.


사실 식탁은 늘 이런 상태입니다. 윗 사진은 대대적인 정리를 한 후에 찍었어요. 식사 때마다 노트북은 오븐 옆으로 바짝 미뤄놓고 식탁의 절반 정도에서 세 식구가 식사를 합니다.


확실히 저만 사용하는 컴퓨터가 있으니까 편해졌습니다.

작업실이 따로 없어서 누군가가 티브이를 틀거나 대화를 하면 저도 동참해야 하고, 식사 준비를 할 때마다 노트북을 덮고, 밥을 먹을 때마다 노트북을 치워야 했지만 그래도 내 전용 컴퓨터가 생겨서 확실히 편해졌고, 남편의 예언대로 글 쓸 맛이 나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장비'라는 말이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 자리에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티브이 아래로 제가 작업하던 우리 집의 메인 컴퓨터가 보입니다.


2월부터는 제 노트북에서 수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게 되면서 작업 시간 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일곱 번째 수정 작업부터는 노트북에서 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수정할 것들은 많아졌고, 삭제도 제법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분량을 많이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문장을 아까워하지 않고 삭제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볼 때마다 '이 문장을 지난번에 왜 수정하지 않았지?' 하는 것들이 생겨서 기가 막혔습니다. 분명히 지난번에도 봤을 텐데 이런 문장을 그냥 넘겼다니 믿어지지 않았고, 이런 식이라면 끝도 없이 수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암담해졌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복병이 있었습니다. 코로나였습니다.

3월 2일에 중학교에 입학해야 할 아이가 학교에 가질 못하고, 입학은 한없이 미루어졌습니다. 뭔가 붕붕 뜬 채로 맘을 잡지 못하고 학교의 연락과 담임선생님의 카톡을 기다리고,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봄부터는 집중적으로 작업해서 일 년이 되기 전에 남에게 보여줄 만한 글이 되길 바랐는데, 매일 아이와 산으로 다니면서 쑥을 뜯어와 다듬고, 말리고, 떡을 해 먹으면서 봄을 보냈습니다.


4월 16일부터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어 아이 방에도 컴퓨터가 생겼습니다. 초반에는 아이와 함께 온라인 학습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꽤 시간을 할애했어요.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은 방학 때와 똑같았지만,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일은 훨씬 더 늘어났습니다.


화상수업을 하는 시간이면 제 노트북을 아이 방에 날라다 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화상 수업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아이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제 노트북으로는 무얼 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안 사고 버티던 웹캠을 여름방학이 지나 사주었습니다. 끝날 듯하던 코로나가 광복절을 기점으로 다시 폭증하는 걸 보고 포기했어요.


아이의 수업이 끝나면, 또 아이가 잠든 밤이면 이제는 외울 것만 같은 원고를 다시 읽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고, 지겨운 내용은 삭제하고, 문장을 더 간결하게 고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말이 일 년이지, 일 년 동안 이제는 새로울 것이 없는 저의 문장들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은 퍽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남편은 이제 그만 하면 되지 않냐고 했지만, 저는 할 때마다 수정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매번 놀라는 중이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어요.


6월쯤 되어 열 번째 퇴고를 끝내고 저도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무리는 원고 투고였습니다.

아직 남에게 보이기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여정을 끝내는 길이었습니다.  

또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에 대한 의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출판 기획서를 썼습니다. 이걸 쓰는 데도 6일이나 걸렸습니다.


사실 거듭 퇴고를 하면서 딱 10번의 수정을 한 후에 투고를 하고 이 소설을 서랍 속에 넣어두자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여섯 번째 퇴고를 끝내면서 이건 끝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딱 10번만 퇴고하고 끝내자고 결심했었습니다.


사실 한 번의 퇴고 과정을 거치는 게, 그냥 쭉 읽어나가면서 고치는 것이 아니고 맘에 들지 않는 문장을 만나면 스무 번, 서른 번을 읽으면서 고치기 때문에 굉장한 피로가 있습니다. 조사 하나를 바꿨다가 되돌렸다가, 쉼표 하나를 넣었다가 뺐다가. 생각했다를 생각했었다로 고쳤다가 되돌렸다가를 무수히 반복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 퇴고 때 그 문장에서 똑같은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출판 기획서까지 썼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저는 열한 번째 수정을 합니다.

생각보다 어려웠던 소설 투고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쓰겠습니다.


3. 장편소설 투고와 출간 계약까지

4. 계약에서 출간까지의 기간

5. 장편소설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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