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07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어떡할지 10분쯤 고민하다가 침대를 빠져나오려니 남편이 뒤척였다. 더 자도 된다는 뜻으로 몇 번 다독이고 내가 난 자리의 이불을 잘 여미었다.
항상 방문을 열어놓고 자는 아이가 깰세라 까치발로 걸어가 살며시 방문을 닫아주고, 거실 창문의 커튼도 최대한 살살 젖혔다. 건너편 아파트 너머의 산 위로 하늘이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며칠 동안의 일들을 생각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꿈인가? 희수와의 대화창을 열어보면 그저 평소와 같은 일상 얘기들만 나열되어 있을 것만 같다. 근데 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섹스리스 부부를 바꿔보겠다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지, 혹시 일이 잘못돼서 희수와 내 사이가 틀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까지 슬며시 피어올랐다. 더 늦게 전에 발을 빼야 하나.
커피를 마시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준서에게 아침을 챙겨 먹이고 학교에 보내면서도, 밤새 아이 방에 두었던 화분을 거실의 창가로 옮기면서도 나는 몇 번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이를 닦으면서도 세면대에 올려 둔 전화기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데 알림이 왔다.
“언니! 나 드디어 미션 성공!!! 난생처음 여성 상위하다가 중간에 빨다가 다시 상위 또 하구. 오빠한테 바이브레이터 쥐여 주고, 나한테 넣어보라고 했는데 이건 아파서 실패했어. 그리고 거의 임박했을 때 오늘 삼킬 거라고 말하고 삼켰어. 그리고 사정할 때도 사정이 끝났을 때도 쉬지 않고 계속 빨았어. 오빠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씻으러 화장실 가서 헛구역질을 몇 번이나 했어. 어쨌든 처음으로 삼켜봤고, 끝까지 잘 참음!”
나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입을 대충 헹구고 컴퓨터를 켜면서도 또다시 숨 가쁘게 읽었다. 이건 해본 자의 글이 틀림없었다. 필시 이대로 해낸 것이다.
“희수야, 이게 뭔 일이냐! 정말이야? 너 진짜 대단하다! 존경해!!!”
나는 신이 나서 미소를 지은 채로 키보드를 크게 타닥타닥 두드렸다.
“근데 언니, 생각보다 오빠가 죽어 나가지 않는 거야. 나는 진짜 기대했거든.”
“그래? 네 앞에서 차마 맘 놓고 좋아할 수 없었던 거 아닐까?”
나조차 서운한 맘이 들었지만, 희수 남편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마냥 좋아하기는 힘든 상황이었을 게다.
“이 인간이 가만히 느끼기나 하지 자꾸 말을 하는 거야. 왜 해주는 거냐고 몇 번이나 묻잖아. 자기가 불쌍해 보였냬. 난 위에서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그런 말을 하고 있어. 얼마나 맥이 끊기던지 말이야.”
“어머, 웬일이야! 섹스하는 와중에 그런 소리를 다 했다고? 네 남편 너무 안됐잖아. 너 왜 그렇게 젖 달라는 아기를 계속 굶긴 거야?”
섹스하겠다고 마음먹고 올라탄 부인에게 계속 확인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라니!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장면 아닌가. 실제로 코가 시큰해지기까지 했다.
“하하 언니. 이게 무슨 찰떡같은 비유야?”
“오죽하면 네가 위에서 그러고 있는데 저런 말을 다 하겠어? 이렇게 슬픈 섹스 장면은 들어본 적도 없어.”
“난 오빠가 쾌락에 몸부림치는 걸 보고 싶었는데 은성이가 깰까 봐 좀 숨죽이는 분위기이긴 했어. 그리고 씻고 왔길래 또 빨아보려고 팬티를 내리니까 지금 빨면 자기 죽는다면서 막더라구. 그래서 더는 못했어.”
희수는 희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구나. 희수도 남편도 모두 짠해 죽겠다.
“에이, 죽는다고 할 때 악착같이 했어야지.”
“아, 그런 거야? 그때 더 밀어붙일걸!”
“근데 씻고 온 후는 이미 좀 감이 떨어져. 바로 빨아야 못 견디는 거고.”
“사정하고도 계속 빨아줬다구. 근데 너무 멀쩡한 거야. 소리조차 안 냈어.”
“너무 생각이 많았던 거네. 이 애가 왜 이러는 거지? 날 죽이고 새로 시집가려는 건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거지. 근데 삼킨다고 하니까 뭐래?”
“내가 선언했는데도 아무 말이 없는 거야. 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뭐든 상관이 없다는 건지. 그러다가 거의 임박하니까 먹지 말라더라? 나도 대답 안 하고 계속했지. 끝나고도 계속 빨고 있었더니 이제 그만하고 가서 뱉으래. 그래서 삼켰다고 했다? 근데도 아무 말을 안 하는 거야, 기운 빠지게.”
“속으로 울고 있던 거 아닐까? 솔직히 네가 처음 그랬다고 감동해서 몇 년의 울분을 전부 날려버리고 애절하게 사랑의 말을 하긴 힘든 거잖아. 그걸 바라는 건 무리야. 하지만 오늘 네 남편, 회사에서 기분 째질 건 확실해.”
희수 남편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니 실망스러웠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지금 같은 반응이 더 자연스럽다. 희수 남편은 희수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스러울 것이다.
“그럼 남편은 계속 누워있고, 너 혼자 위에서 하다가 블로우잡 하다가 계속 그것만 한 거야? 남편이 올라타지는 않고?”
“응. 오빠한테 바이브레이터 한번 넣어보라니까 그때는 일어났지. 그런데도 안 하더라구. 나는 봉사만 한 거지. 근데 다들 여성 상위 때 오르가슴이 잘만 온다더니, 난 아무 느낌이 없더라? 허벅지만 끊어질 것 같고.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쉬려고 빨았더니 그때 오빠가 화들짝 놀라는 거 같긴 했어. 그게 허를 찌르는 공격이었던지. 참, 씻고 들어오는데 오빠가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은성이 동생을 먹었어.’ 그러는 거야. 내가 아주 기절하겠어. 저런 유치한 말을 했다는 게 믿어져?”
“하하하! 그게 뭐야. 근데 남편은 아직도 둘째를 원하는 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은성이가 벌써 유치원생인데 무슨 둘째야. 게다가 하지도 않는데. 근데 오빠는 결혼 전부터 계속 애 둘을 원하기는 했어.”
“그럼 회피하지 말고 대화해서 결론을 내야지. 계속 나이만 들어가는데. 둘째 생각이 없으면 너도 확실하게 얘기를 해. 그리고 결론 나면 빨리 정관수술 받으라고 하고.”
“정관수술? 아…. 오빠는 절대 할 리가 없다.”
“수술하면 임신 걱정도 없고 콘돔도 안 써도 되니까 너무 좋아. 그리고 그건 수술도 아니야.”
준서를 낳고 1년쯤 지나 우리는 하나만 잘 키우자는 합의를 했고, 그 길로 남편은 바로 수술을 하러 갔다. 수술은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술이라기보다는 당일만 목욕을 삼가면 되는 아주 간단한 시술이었다.
“오빠가 날 설득하려고 난리 칠 것이 너무 두려워서 말을 못 꺼내겠어. 언제나 날 설득시켜야만 얘기가 끝나거든. 모든 일에서 다 그래.”
“근데 둘째 얘기는 싫든 좋든 결론을 내야 하는 일이잖아.”
“맞다, 언니. 오늘 아침에 엄청난 일이 있었어. 항상 내가 먼저 일어나잖아. 은성이 깨워서 조용히 나가는데 오빠가 덥다면서 창문 좀 열어달라는 말을 세상에, 존댓말로 하는 거야!”
“존댓말로? 은성 아빠가?”
“그렇다니까. ‘창문 조금만 열어주세요.’ 그러는 거야. 너무 단순한 거 아니야? 어떻게 바로 존댓말로 바뀌냐구?”
“존댓말이 처음 있는 일이야?”
“처음이야 처음. 이게 바로 권력의 참맛이구나 했어 내가.”
“와, 지치지 않는 너의 권력 타령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냥 사랑 좀 하면 안 되겠니?”
“언니, 그동안 집에서 내 인권이 너무 낮았어.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언니는 감당 못 할 얘기가 많다구. 근데 나도 참 단순하지, 오늘 아침에 처음으로 존댓말을 듣고 나니까 자존감이 확 높아지는 거 있지. 진짜 신기해서 나도 어리둥절했다니까? 나한테는 이게 정말 대단한 거야. 내가 언니한테 내 상황을 진작 말했어야 해. 섹스 안 한다고 벌써 말을 해야 했다구. 오늘도 내가 블로우잡을 해야겠어.”
“이젠 그냥 섹스해. 블로우잡은 시작할 때 잠깐만 하는 거지. 같이 껴안고 섹스하면 훨씬 더 친밀해지니까.”
“근데 언니, 할 때마다 삼킬까? 근데 매일 그러면 아무래도 약발이 떨어질 거 아냐. 난 지금 그 생각뿐이야.”
희수는 선거를 앞둔 정치인처럼 오직 권력에 눈이 멀었는지, 그것을 위해서라면 날마다라도 삼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미쳤어? 그걸 어떻게 매번 삼키니? 나는 20년 세월을 숱하게 하면서도 삼키기까지 한 건 세 번이나 될까? 그건 매우 드문 일이야. 네가 한 번도 안 삼켜봤다니까 말해봤던 거지. 네 남편한테 강력한 신호탄이 될까 해서. 난 입으로 받는 것도 연례행사나 다름없이 아주아주 가끔이야. 물론 블로우잡은 섹스와 상관없이 자주 하지만 그걸로 끝까지 가는 일은 아주 드물다고. 그건 섹스 전에 잠시만 하는 거잖아. 근데 이제부터는 은성 아빠가 위에서 하려고 하겠지. 남자들 그런 욕구 있잖아.”
“사실 난 일반적인 섹스보다 핸드잡을 더 많이 해봤어. 오빠가 그걸 되게 원했어. 오럴과 핸드잡.”
“뭐? 그걸 더 많이 해봤다고? 네 남편이 그걸 원해서?”
“응.”
이건 또 다른 국면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주로 핸드잡만 원했다니,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희수가 다시 말했다.
“맞다 언니. 엄청난 게 또 있어. 내가 뭐 하나만 사도 오빠가 일일이 가격을 물어보고 확인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안 물어봤어. 섹스토이 말이야. 얼마냐고 안 물어봤다고. 이게 진짜 엄청난 일이라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희수네 부부는 섹스 말고 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