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주 Aug 14. 2020

#08 “괜히 두통약 먹을 때가 있잖아요?”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08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08


아이가 일찍 잠든 저녁, 우리도 늦지 않게 침대에 누웠다. 섹스 후의 나른함을 즐기고 있는 남편의 옆구리에 찰싹 붙어 누워서 남편의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조금 전까지 펄떡이던 성기는 새끼 고양이처럼 얌전하게 잠자고 있다. 말랑말랑한 성기를 조물거리다 한껏 늘어져 서늘해진 불알을 콩주머니 만지듯 손으로 굴리면서 말했다.


“희수 남편은 희수의 씀씀이를 하나하나 전부 다 감시하고 있는 건가? 근데 나 만났을 때 희수가 밥을 살 때도 많고 은성이 장난감이랑 책도 척척 잘 사던데.”


눈을 감고 있던 남편은 내 다리 한쪽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입을 열었다.


“그냥 그 사람의 성격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까? 감시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꼼꼼한 사람이라고 말이야. 우리 집도 봐. 너는 돈에 신경을 안 쓰니까 대부분 관리를 다 내가 하잖아. 하다못해 휴지나 치약 같은 것도 내가 알아서 다 주문해서 채워 넣고, 장 볼 때도 하나하나 가격 비교해보고 사는 건 나잖아. 희수 씨 남편은 부인이랑 계속 같이 있지 못하니까 뭘 사면 이건 얼마냐고 당연히 물어볼 수 있지. 그게 이상해? 그럼 가격을 물어보고 나서 이거 왜 샀냐고, 비싸다고 뭐라고 한대?”


“그런 얘기까지는 안 했어. 설마 그러겠어? 근데 뭐든 꼬치꼬치 물어보다가 딱 그것만 가격 안 물어보니까.”


“아니지. 그것까지 가격을 물어보기엔 희수 씨가 그런 것까지 사서 자기한테 다가왔는데, 찬물 끼얹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 생각 없는 사람이라 봐. 끝나고라도 근데 이거 얼마냐고 물어보겠지? 그러면 희수 씨가 얼마나 어이가 없겠어? 몇 년 만에 섹스했는데 고작 그게 궁금한가 하고 맘 상할 수 있잖아.”


“오빤 희수 남편 편들기로 작정을 한 거야? 이미 노선을 그쪽으로 정해 놓은 것 같은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아니야. 나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하는 거야. 남편이 감시한다고 이미 생각을 정해 놓고 모든 행동을 그렇게 보고 있는 건 희수 씨랑 너야. 그런 생각 좀 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남편 고추 좀 살살 빨아주라고 해.”


나는 만지고 있던 남편의 불알을 콱 움켜쥐었다.


“살살 빨아주라고? 살살? 왜 꼭 살살 빨아야 해? 막 세게 빨고 물고 그러라고 할래. 이때다 하고 확 물어버리라고.”


말하면서 나는 남편의 성기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어? 섰어? 뭐야. 세게 물고 빠는 얘기 하니까 섰네? 오빠 사실은 막 거친 거 좋아하는구나?”


나는 팬티를 잡아 내리고 다시 단단해진 성기를 거칠게 빨다가 질끈 물었다.


“으윽. 아파. 아파. 그러면 아프다고.”


아파서 그런지 성기가 다소 줄어들었다.


“난, 이 정도 크기가 딱 좋아. 적당히 커졌는데 겉은 말랑한 거.”


입에 넣고 살살 빨다가 다시 단단해지자 멈추고 말했다.


“커지면 안 돼! 아까 정도를 유지해. 그게 아주 알맞다고.”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커지면 또 깨물 거야.”


남편은 이따금 신음을 냈다.


“어허~ 못 견디겠다는 소리 내지 마. 오빠 그러면 나 미치니까!”


“그래? 그럼 한번 볼까?”


남편은 내 팬티에 손을 넣어 만져보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너는 아까 만족을 못 한 거야? 이게 뭐야. 날 말려 죽일 작정이구나?”


남편은 재빨리 일어나더니 다리에 걸쳐 있던 팬티를 벗어 침대 위로 내던지고 내 팬티도 벗겨 내던졌다.


“이 나이에 내가 하루에 두세 번씩 이런다고 하면 내 친구들은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다 허풍 떤다고 생각하겠지.”


“오빠는 그런 걸로 허풍 떠는 사람 아니잖아. 그리고 부인하고의 섹스는 언급 금지 아니야?”


“다른 사람하고는 안 하는데 그럼 난 애들이 섹스 얘기할 때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또 싸지 마.”


“알았어. 그냥 넣어 놓기만 할게. 난 이게 너무 좋아. 네 안에 있는 거.”


내 안에 들어온 채로 아기처럼 꼭 안겨서 가만히 있는 남편의 등을 쓸어주면서 옛날 생각을 했다. 남편이 사정하지 않겠다고 하면 짜증을 내고, 그렇게 끝낼 생각은 말라고 엄포를 놓던 그때를.    

 

우리는 애틋함이 바래진 연애 6년 차에 결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섹스의 암흑기는 바로 신혼 시절, 그때 시작되었다.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우리만의 공간이 옜다 하고 떡하니 생겼지만, 섹스한 지 이미 4년도 넘은 우리에게 섹스는 더 이상 신비로운 행위가 아니었다. 


결혼과 동시에 잡다한 삶이 폭풍처럼 밀어닥쳤기 때문일까, 나는 결혼 전의 섹스가 그리웠다. 연애의 느낌이 담뿍 담겨있던 그때의 섹스가. 그것은 풋내기의 설익은 맛이 있었고 그래서 상큼하니 좋았다. 


우리는 결혼하기 한참 전부터 부지런히 해왔으므로 결혼할 즈음에는 섹스를 즐겨야 마땅했다. 최소한 섹스 공력이 10년쯤 되었을 때는 발군의 실력자가 되어있어야 했다. 하지만 섹스는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실력이 쌓이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암흑기로 회상하는 그때도 남편은 최소한 삼 일에 한 번은 원했다. 그러니까 섹스 암흑기는 횟수의 문제가 아니라 즐거움의 문제였다. 남편에게 말은 못 했지만, 섹스가 즐겁지 않았다. 여전히 그 행위가 부끄러웠고, 절반 이상은 아팠다. 


가끔 남편이 섹스 후에 좋았냐고 물으면 ‘응’이라는 짧은 대답만 했다. 나는 남편의 요구가 있을 때만 응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점차 몇 번에 한 번은 요령껏 거절하는 일이 생겼다. 


“나 오늘 머리가 좀 아픈데…”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종종 편두통으로 꽤 고생했기에 이 말이 잘 먹혔다. 두통이 있다는 부인을 올라탈 정도로 이기적인 남편은 아니었다.


“많이 아팠어? 참지 말고 약을 먹지 그랬어.”


“약 먹을 정도는 아니야.”


그러고서는 돌아누워 버리는 나의 뒷모습을 남편은 숱하게 보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등 뒤에 남겨진 남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즈음이었다. 주말에 친구들이 놀러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는데 TV를 틀자 마침 <왓 위민 원트>라는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남자가 주인공인 코미디 영화라서 남편까지 합세하여 보게 되었다. 


영화 중반쯤, 섹스 회피 목적으로 아프다는 거짓말을 종종 한다는 여자의 속마음을 읽은 남자 주인공이 가짜 두통약을 판매하자는 의견을 내놓는 장면이 나왔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면서 괜히 두통약 먹을 때가 있잖아요?” 하는 대사까지 떡하니 나왔다. 그 장면에서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들은 동시에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지만, 속으로는 불에 덴 듯이 놀랐다. 앞으로 내가 머리 아프다고 말하면 오빠가 오해할까? 아니 알아챌까? 아니면 이미 나를 의심하게 되었을까? 오빠가 지금 저 장면에서 안 웃었나? 나는 꽤 복잡한 심경인 채로 영화를 보았다.


그때는 내가 먼저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너는 왜 먼저 안아주지 않아?”


언젠가 남편이 이렇게 물었다.


“내가 먼저 안아줄 틈이 어디 있어? 오빠가 언제나 먼저 선수 치는데.”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남편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등을 돌리고 모로 누워 잠을 청하는 나를 남편이 뒤에서 감싸 안고 젖꼭지를 만지면 싸늘한 목소리로 “아파!” 하면서 손을 떼 놓은 적도 더러 있었다. 만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섹스로 이어질까 봐도 그랬고, 생리 전에 가슴이 뭉쳐서 정말 아파서일 때도 있었다. 


또 저릿저릿한 기운이 내 몸을 휘감는 느낌 자체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뿌리치기도 했다. 젖꼭지를 타고 발끝까지 내려가는 감각이 낯설었다. 간지러운 것 같다가도 벌레가 몸속을 기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느낌을 쾌락으로 이해하고 좋게 받아들여 승화시킬 방법을 몰랐다.


“아, 너무 좋아.”


그 당시에도 남편은 흥분해서 곧잘 이렇게 말했다. 지금과 달리 이 말이 때때로 불편했다. 조마조마했다. 남편이 좋다는 표현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 오랫동안 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랑의 감정만으로 섹스가 마냥 좋지는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쯤은 만족스러운(지금과 비교하면 이 표현도 아깝다) 섹스를 했지만, 보통 때는 그저 그랬고 아픈 것을 참으면서 어서 빨리 끝내길 바랄 때도 꽤 많았다.


그래서인지 섹스 도중 곧잘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낮에 읽은 책에 대해 생각하거나 출근할 때 입을 옷을 머릿속으로 고른다거나, 이번 주에는 꼭 분갈이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 근데 지금 몇 분이나 지났지?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게 고개를 돌리는 척하며 시계를 살짝 봤다. 시작한 지 20분도 넘었잖아. 이제는 끝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남편이 말했다.


“네 안에 있는 게 너무 좋아. 오늘 사정 안 하고 내일 또 하고 싶어.”


사정으로 성욕을 다소 해소하면 바로 다음날 또 요구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남편은 내게 허락을 구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 말은 선전포고 같은 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내일 또 하면 아프단 말이야. 안 싸고 끝내면 안 돼.”


지금 아픈 걸 참고 있다고. 인제 그만 끝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런 속마음까지는 차마 내뱉지 못했지만 나도 모르게 벌컥 짜증이 나서 큰소리를 냈다. 


나였다면 당장 섹스를 멈추는 것은 물론이요 다시는 요구하지도 않았을 텐데, 남편은 나의 버럭 하는 말을 들으면 잠자코 다시 열심히 허리를 움직였다. 남편은 그때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지 이따금 그 일을 떠올린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때 받았을 남편의 상처를 나는 열심히 핥아준다. 지금이라도 상처에 딱지가 생겨 새 살이 돋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결혼하면서 섹스를 의무로만 여겼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또 여유가 있는 주말이면 둘이 홀딱 벗고 지내거나, 야한 속옷을 사 입고 즐기기도 했으며, 로맨틱한 영화를 보다가 만족스러운 섹스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곰살맞은 기억들이 있어서 줄곧 평범한 섹스를 하면서도 무탈한 일상을 보낼 수 있던 거였다.


비록 오르가슴은 몰랐어도 말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07 “왜 젖 달라는 아기를 계속 굶긴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