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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14. 2020

#09 “하고 싶으면 말해, 해줄 테니까.”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09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09


다음날 아침, 궁금증을 못 참고 희수에게 카톡을 보냈다.


“어서 후일담을 들려주라고.”


그냥 기다려 볼 걸 그랬나, 아무 일도 없었을지 모르는데. 후회와 동시에 희수의 글이 떴다.


“언니. 어젯밤에도 이 사람이 늦게 들어왔거든. 근데 난데없이 그 밤에 라면을 끓여 달라는 거야. 나한테 뭘 해달라고 한 게 진짜 얼마 만인지 몰라. 먹고 싶으면 혼자 끓여 먹었거든. 근데 라면을 끓여 달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섹스했다고 저러나 싶은 거 있지. 그래도 일단 끓여는 줬어. 다 먹더니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은성이 얼른 재우고 오빠한테 가서 ‘오늘도 하고 싶으면 말해, 해줄 테니까.’ 그랬더니 ‘아니야.’ 그러는 거야! 오빠가 웃으면서 말하긴 했지만 거부한 거잖아. 나 완전 대실망! 권력이 손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더라. 권력도 권력이지만 나는 오르가슴도 찾아야 하는데 말이야.”


“희수야. 하고 싶으면 말하라니, 계속 섹스하던 사이가 아닌데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해? 네 남편이 그 말 듣고 ‘오케이, 하고 싶어. 해줘.’ 그럴 수 있겠어? 그냥 가서 만져주거나, 그러기 민망하면 계속 컴퓨터 볼 거냐고 말만 걸어도 눈치챌 거 아니야.”


“난 오빠가 해달라고 매달릴 줄 알았어. 당연히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구.”


하도 기가 막혀서 희수의 망발을 남편에게 고했더니 남편 역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탄식했다.


“나중에 자려고 누웠을 때 내가 오빠 거 먹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봤어. 난 그게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더라구. 그랬더니 ‘글쎄.’ 그러는 거야. 너무 황당하지 않아? 내가 얼마나 짜증이 났게? 충격받아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더니 ‘근데, 되게 고마웠지.’ 이러는 거야. 옆구리 찔러서 절 받은 거지 뭐야? 근데 난 아직도 그걸 먹어주면 고마워지는 게 도대체 무슨 심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


“그런 말을 하려니까 입이 안 떨어져서 주저한 거지. 그게 되게 고맙고 엄청나게 사랑받는 느낌이래. 저번에도 말했잖아. 근데 너 남편하고 같이 자는 거였어? 난 당연히 각방 쓰는 줄 알았어.”


솔직히 꽤 놀랐다. 같이 잘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희수네가 섹스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안 순간, 각방을 쓰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라서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잔다니? 그러면서 섹스를 그토록 안 할 수 있다고? 그거야말로 도무지 무슨 심리인지 모르겠다.


“은성이도 같은 방에서 자는걸. 방이 책장으로 분리되어 있긴 하지만 같은 방이야. 책장 너머 공간에 이불 깔아 놓고 은성이는 거기서 자. 은성이가 아직도 밤에 설핏 깨면 울 때가 많아서 다른 방에서 재울 수가 없더라구. 나도 어렸을 때 자주 깨서 울었는데, 달래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섭고 그게 서러워서 다시 잠들 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울다가 잠들고 그랬어. 그래서 은성이가 울면 바로 달려가서 토닥여주고 싶은 거야. 나랑 오빠는 한 침대에서 자기는 해. 근데 예전에 언제 한 번은 잠에서 깼는데 오빠가 내 손을 잡고 자고 있더라? 잘 때 건드리는 걸 내가 정말 진짜 엄청나게 싫어하거든. 그걸 아는데도.”


“정말? 손을 잡고 자더라고? 너 잠들었을 때 몰래? 나 잠시 울다가 와도 돼?”


희수는 나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잠이 정말 중요해서 자다가 깨면 너무 고통스럽거든. 어려서부터 그랬어. 그래서 신혼 때 오빠가 젖 만지고 손 만지고 그러면 내가 맨날 화냈어. 사람이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고 했어. 그렇게 자꾸 깨면 얼마나 피곤한데, 자기 생각만 하고 만지는 거잖아. 그러면 언니는 짜증 안 나?”


희수의 말에 나 역시 짜증이 났던 과거가 생각났다.


“나도 너처럼 싫어했어. 내내 혼자 자다가 결혼하면서 갑자기 같이 자는 사람이 생긴 거잖아. 되게 불편하지. 나도 짜증 많이 냈어. 근데 그것도 익숙해지더라. 이제는 안 만지면 ‘어? 나한테 삐친 게 있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리고 막상 잠들면 끝이잖아. 보통 잠들기 직전에만 그러는 건데 뭘. 새벽에 얼핏 깼을 때 이불을 덮어주는 것처럼 잠깐 깨면 껴안거나 손을 잡을 수도 있지. 그건 사랑의 표현이잖아. 싫으면 그러겠어? 그래서 난 이제 좋게 생각해.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피곤하니까 다 귀찮았는데, 지금은 넓은 맘으로 사랑받는 느낌을 즐겨.”


희수도 자신의 옛날을 회상하는지 말이 없었다. 나는 스크롤을 올려서 희수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 네 글을 다시 봤는데, ‘오늘도 하고 싶으면 말해, 해줄 테니까.’ 이거는 진짜 아니다, 아니야. 정말 맘이 식어버린다고. 나는 별로지만 인심 써서 한 번 대주겠다는 말투잖아. 형부도 저 말을 듣고 하자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대. 성욕이 폭발 지경이라도 절대 하고 싶다고 답하지 않을 거래.”


“언니 말 들으니까 좀 그렇긴 하네. 내 딴에는 선택지를 준 거였어. 난 존중해서 물어본 건데, 지금 다시 상황을 떠올려보니까 오빠가 오케이 하기 좀 그렇긴 하겠어. 근데 언니, 난 어제 못했다구 말하면 언니가 그냥 다음에는 잘해보라고 할 줄 알았어. 진짜 어디에서도 받지 못할 상담이다.”


“별말씀을.”


“근데 지난번에 오빠가 섹스 도중에 내가 불쌍해서 해주는 거냐고 물어봤다고 했잖아. 나 그때 깜짝 놀라서, ‘무슨 소리야. 나 오르가슴 찾으려고 이러는 거야.’ 그렇게 말했다?”


“미친년!!!”


나는 대뜸 욕이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할 수도 없잖아. 동정 섹스도 아니고. 그게 더 싫을 거 아니야.”


“당연하지. 남편이 불쌍해서 시작한 게 아니잖아. 근데 대뜸 오르가슴을 들먹여? 그냥 이제부터 다시 사랑하면서 살려고 그런다고 왜 말을 못 해? 안 되겠다. 말 나온 김에 오늘 얘기해라. 은성이도 이제 좀 컸으니까 오빠한테 많이 신경 쓰겠다고, 이제부터는 다시 사랑하면서 살자고 말하는 거야.”


“알았어.”


희수가 웬일로 토를 달지 않고 답하니 오히려 믿기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려는가 싶어 나는 재차 물었다.


“나한테 알겠다고만 하지 말고, 꼭 말해. 지난번에도 말하라니까 하라는 말은 안 하고, 뭐? 해줄까?”


“크크큭.”


“말로 못 하겠으면 카톡으로 하는 건 어때? 네가 180도 달라졌는데 무슨 언급은 있어야지. 이게 심경의 변화인지 이혼의 전초전인지 알고 싶을 거 아니냐고.”


“원래 어쩌다 할 때도 느닷없었어. 뜬금없는 건 익숙할 거야.”


“아냐, 말해야 할 것 같아. 네가 다가간 건 처음인 데다가 이젠 한번 하고 말 것도 아니잖아. 한마디 말도 없이 섹스하기에는 공백 기간이 너무 길었어. 우리 같은 경우는 어쩌다 싸워서 좀 데면데면해지잖아? 그럴 때 한 사람이 용기 내서 다가가는 거야. 그리고 툭 치거나 살짝 기대면 상대가 못 이기는 척 안아주지. 그리고 섹스를 하는 거야. 그러면 바로 예전으로 돌아가거든. ‘우리 지금 섹스로 푼 거야?’ 그러면서 킥킥거리고 웃고 넘어가거든. 근데 너희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하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아. 게다가 너는 난생처음 삼키기까지 했는데!”


“아, 나는 제일 센 걸 처음에 해버렸으니 앞으로 뭘 해야 권력을 오래 잡을 수 있지? 난 계속 그 생각뿐이야. 그리고 오르가슴!”


“예전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춰. 그러면 오르가슴 그거 금방 찾을 수 있고, 또 권력? 사랑을 보여주면 자연스레 따라올 거야. 부부 사이에도 그런 게 있는 거라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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