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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18. 2020

#13 “희수만큼은 잃고 싶지 않아.”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13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13


마음이 복잡해서 지난밤 내내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희수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희수도 바로 응했다.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여태 같이 상의했다는 것을 아는 데다가 남자의 관점에서 얘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희수가 먼저 같이 나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형부가 보통 남자의 심리를 잘 알까?’ 하는 의문을 내비쳤다. ‘어쨌든 남자니까’라는 나의 대답에 희수도 ‘그건 그렇지.’ 하고 웃었다.


“오빠, 나 너무 무서워. 희수가 자기 얘기를 한다는데, 그걸 내가 들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병원도 다닌다는데 전문가가 이미 충분히 도움을 주고 있을 거 아니야. 괜히 나한테 온갖 얘기를 했다가 희수도 나를 멀리하면 어떡하지?”


괜한 일을 벌여서 오래된 희수와의 관계에 금이 갈까 두려움이 앞섰다. 내게는 그런 경우가 몇 차례나 있었다. 누구한테도 말 못 할 속 사정을 털어놓고, 그 대가로 멀어져 간 사람들이.     


우리 부부와 모든 면에서 찰떡궁합인 부부가 있었다.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애정을 나누며 사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부부였다. 조심스레 몇 번 만나보니 대화도 아주 잘 통했다. 


우리와 나이가 엇비슷한 부부 중에서 서로 사이가 좋은, 그래서 함께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부를 만나는 건 사실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자리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매번 기대했지만, 대부분은 일회성 만남에 그치고 말았다. 


보통은 남편들이 굉장히 어색해하면서 자꾸만 서성였고, 그걸 바라보는 부인들은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았기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런 상황에 지쳐 있을 즈음 나타난 부부였으니 우리의 기쁨이 어떠했겠는가. 드디어 함께 만날 수 있는 커플을 찾은 것에 몹시 기뻐하며 우리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이기를 바랐다. 


우리 넷은 마치 정해져 있던 운명처럼 순식간에 친해졌다. 그 부부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마침 준서와 동갑인 데다 성향까지 비슷해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서로 형제도 없는데 앞으로 둘이 의지하고 친하게 지내면 좋겠어.”


그 부부 앞에서도, 우리끼리 있을 때도 입버릇처럼 이 말을 했다. 어쩌다 이런 인연을 만나게 되었지? 그들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넷, 아이까지 여섯은 시도 때도 없이 만났고, 서로의 집에서 돌아가면서 아이를 재우고, 함께 음식을 해 먹었다.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얘기하느라 함께 지새운 밤이 소복하게 쌓여갔다. 


급기야 여행도 함께 갔다. 다른 가족과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 신경이 곤두서긴 했지만, 같이 여행도 안 하고 무슨 친한 사이라 하겠냐고 생각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에 아이들을 재워 놓고 아쉬운 마음에 긴 수다가 이어지던 참이었다.


“근데 너 아까 남편한테 너무 잔소리 퍼부은 거 아니야? 도현 아빠 혹시 기분 상할까 봐 걱정했어. 다행히 괜찮은 것 같지만.”


고집을 부리는 아들을 혼내는 남편을 도리어 그녀가 심하게 다그치는 바람에 분위기가 퍽 어색해졌던 오후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녀는 가끔 남편을 몰아세울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남편은 과장되게 웃으면서 그녀를 안아주거나 장난을 치곤 했기에 처음에는 그들만의 애정표현인가보다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편해지면서 남편을 몰아붙이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그런데 가장 심하게 다그치는 일이 하필이면 여행 중에 벌어졌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불편하고 민망했기에 그녀 남편이 먼저 자러 들어간 틈을 타서 말을 꺼내었다. 사실 한 번쯤 말하고 싶기도 했다.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면 우리와의 만남을 꺼리게 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야, 언니. 애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혼을 내? 준서도 옆에 있는데 말이야.”


그녀는 준서 앞에서 혼나는 자신의 아이가 마음에 걸렸던 거였다.


“근데 너도 우리 앞에서 도현 아빠를 너무 구박했어. 밖에서는 남편 좀 봐줘라.”


나는 그녀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웃으며 달랬다. 


“아니야. 언니가 잘 몰라서 그래. 종종 내 속을 뒤집는다니까? 내가 진짜 참고 사는 거야.”


“그래도 도현 아빠 성격이 진짜 좋아. 내가 이 사람한테 그랬어 봐라. 어유~ 아주 난리가 날걸?”


나는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남편을 끌어들여 마무리하려 했다.


“그 사람도 언니네 앞이니까 그런 거지. 둘만 있었으면 난리 쳤을걸?”


이야기를 끝낼 생각이 없는 건지 맥주를 마셔서 말이 많아진 건지, 그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짜 내가 속 터진 거 말하면 끝도 없어. 내가 이혼 서류도 몇 번을 내밀었는데.”


그 순간 이건 우리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어쩌나 싶어서 남편을 쳐다보니 남편 역시 곤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의 불안한 눈빛 교환을 알 턱이 없는 그녀는 맥주캔 겉에 달라붙은 물기를 검지로 죄다 훑어 내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남편도 이혼에 동의했었어. 근데 왜 이혼 안 했는지 알아? 도현이 때문에.”


“그래그래. 그럴 때마다 애 보고 참는 거지. 그러면 또 이렇게 다시 재미있게 지내기도 하고. 안 그래? 누구나 다 그러고 산다.”


나는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서둘러 장단을 맞추었다.


“아니야. 이 인간은 그런 게 아니야. 두말없이 도현이는 나보고 키우래. 그래서 내가 알겠다고, 대신 애 양육비는 이만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애 키우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나 필요하냐면서 난리를 치는 거야. 우리 결국 양육비 합의를 못 해서 매번 이혼을 못 한 거야. 이게 오래된 얘기도 아니라니까. 최근에도 이랬어. 웃기지?”


그녀는 그 밤, 자신이 꺼내놓은 말들을 얼마나 후회했을까? 나와 남편도 새벽이 밝도록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후회가 우리 방까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어떡해. 지금이라도 술을 왕창 더 먹여서 아예 기억을 못 하게 할까?”


남편은 충격이 심한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어쩌다가 그 얘기까지 꺼냈을까? 무슨 생각이었을까? 내일 아침에 그녀는 우리를 예전처럼 대해줄까? 아, 제발 그럴 수 있기를….


이후로 우리 가족은 도현이네를 딱 한 번 더 만났을 뿐이다. 나와 남편은 그들을 이전과 똑같이,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고 맹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내보인 상대와 아무 일 없던 듯이 어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죽을 듯이 사랑하는 사이좋은 부부라고 정평이 나 있는 자신들이 실은 쇼윈도 부부라는 사실을 털어놓은 순간 그것은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그녀 남편은 영문을 모를 텐데…. 온갖 핑계를 대고 약속을 미루는 그녀가 남편에게 이유를 말했을까? 아마 그럴듯한 거짓말을 했겠지. 알고 보니까 이상한 사람이라서 더는 안 만나는 게 좋겠다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일로 상당한 상처를 받았고, 한동안 시무룩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미영, 난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여전히 심장의 한구석이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듯 아프다.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적었지만 우리는 마치 학창 시절의 단짝처럼 금세 친해졌다. 몇 년이 지나도록 때가 되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글도 읽어주고 의견을 나누었다. 


증권회사에 다닌다는 그녀의 남편은 나이에 비해 꽤 괜찮은 외모였다. 1초만 봐도 고가인 것을 알 수 있는 슈트를 몸에 딱 맞게 입었는데, 나는 옷에서 옷감이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그때 미영의 남편이 입고 나타나는 슈트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너무 잦지도, 드물지도 않게 우리 글쓰기 모임에 나타나서 음식값을 계산해주었다. 


“미영 씨 남편, 너무 근사하다.”


사람들은 매번 사라지는 그녀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칭찬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에서 나오는 감탄이었다. 


“지금도 관리를 계속하시나 봐요. 우리 남편은 배가 잔뜩 나와서 정말 걱정인데.”


어떤 작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난 미영 씨 남편이 왔다 가면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렇죠?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요? 계산해줘서 그런 거 아니고. 하하!”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 또 다른 이는 실제로 기분이 한층 더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나도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미영이를 향해 짓는 미소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미영이 남편은 우리가 그녀를 부러워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양 아내를 향해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을 보냈다. 타이트한 슈트에 긴장감이 살짝 생기는 선까지만 몸을 구부려 앉아 있는 미영이의 어깨를 살포시 안아주었고, 질척이며 오래 버티지도 않고 썰렁한 농담을 건네며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아주 좋은 타이밍에 퇴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산까지 하고 가니 모두의 찬사를 받을만했다.


어느 날 미영과 둘이서만 만났을 때였다.


“그제 네 남편이 또 계산하고 가셔서 너무 죄송하더라. 우리도 한번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 다들 너무 미안하대. 와인 좋은 거 한 병 선물하면 어떨까? 네 남편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으면 알려줘. 모임 돈으로 사 보내게.”


진지한 나의 말을 들은 미영이 풉, 하고 웃었다.


“됐어. 너희가 뭐하러 미안해해? 그냥 자기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너도 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왜, 어제 싸웠니? 못되게 말하는 거 보니까 맞네.”


“너한테만 하는 소리지만, 그 인간이 지은 죄가 많다.”


나는 무슨 일이냐는 대꾸도 못 했다. 싸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들이야 부인한테 다 죄인이지. 남자들이 그렇지 뭐. 우리 대신 맛있는 거나 먹자. 오늘 내가 살게. 내 엉망진창인 글 읽느라 고생했을 거잖아.”


소중했던 인연이 무참히 깨진 경험이 있던 나는 재빨리 받아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미영이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 인간, 결혼 전부터 내 속을 썩였다. 결혼 일주일 전쯤 어떤 여자가 날 찾아왔어. 결혼하지 말아 달라는 거야. 기막혀. 우리 신혼집까지 덜컥 샀잖니? 결혼은 일주일밖에 안 남았고. 그 여자 말이 자기랑 그 인간이랑 사랑하는 사이래. 자기 몰래 결혼할 줄 몰랐대. 너무 기가 막히니까 화도 안 나더라. 남편한테 물으니까 그 여자가 쫓아다니고 야단이라는 거야. 자기는 잘생겨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일이 많았다나? 도리어 자기가 얼마나 열을 내던지. 그 여자 가만두면 안 되겠다면서 난리를 치더라고. 고소하겠다느니 하면서. 내 돈도 보태서 집도 사놨지, 부모님은 또 어쩌고. 청첩장 이미 다 돌리고 멋진 사위 얻는다고 얼마나 신나셨는데. 그 여자가 일방적으로 저러는 거라고 스토커나 다름없다면서 남편이 길길이 날뛰니 어쩌겠어. 그냥 결혼했지.”


하지만 결혼 후에도 미영의 남편은 그림자처럼 여자 문제를 달고 다녔다. 스토커 같다는 그 여자도 잊을 만하면 만나서 이혼하겠다고 한 것도 두 번이나 된다고 했다.


“애들 때문에 사는 거지 뭐. 돈은 썩 잘 벌어오니까. 또 애들은 끔찍하게 생각해서 내가 이혼하자고 할까 봐 되게 무서워해. 그래도 끊임없이 여자 문제로 속을 썩여. 자기 말로는 계속 여자들이 따라다닌대. 누가 마흔 넘은 아저씨를 좋다고 하겠어. 돈 쓰니까 여자들이 달라붙는 거지.”


미영도 속을 탈탈 털어 보여준 후로 나를 피했다. 이번에는 나도 모른척하지 않았다. 


“너랑 나랑 일 이년 사이야? 너 그때부터 나 피하는 거잖아.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말할까 봐 그러니? 그럼 너, 나 모르는 거다. 그런 거면 나도 이제 너랑 만날 이유 없어.”


나는 열다섯 살 여자애처럼 따졌다. 이 나이에도 친구에게 따지며 살 줄이야!! 기가 막혔다.


“아니야. 내가 널 몰라?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내가 쪽팔려서 그래. 어휴, 내가 미친년이다. 그 얘기를 왜 너한테 해서 너를 잃어야 하는지 하루에 천 번도 더 후회해. 근데도 안 되겠어. 네가 그럴 리 없지만, 나를 볼 때마다 불쌍하게 여기는 건 아닐까, 그 생각할 내가 싫어. 모임에서 사람들이 내 남편 얘기할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너는 사실을 아는데 내가 예전처럼 새초롬한 얼굴로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나 그렇게 뻔뻔하질 못해. 미안해. 정말 창피해서 그래. 괜찮아지면 곧 다시 보자.”


미영은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다른 글쓰기 모임에 나가겠지. 그곳에서도 미영의 남편은 가끔 나타나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아내를 바라볼 것이고, 미영은 다른 여자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다.     


“희수만큼은 잃고 싶지 않아.”


남편도 나의 두려움을 이해했다.


“인제 와서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지 말라고 해? 우리하고는 섹스 얘기만 하자고 해? 이번에도 이미 벌어졌어. 희수 씨가 복수 얘기했을 때 이미.”


남편의 말대로 이미 판은 벌어진 것일까? 상자의 뚜껑은 열려버린 것일까?


“대체 희수 남편이 무슨 짓을 했길래 희수가 복수한다고 저러는 걸까.”


“진짜 복수할 짓을 했으면 벌써 헤어졌겠지. 생각보다 별일 아닐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내려. 희수 씨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10분이나 지났어.”


차에서 내려 쇼핑몰에 들어가면서도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난 이미 완전히 지쳐버려서 남편의 팔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고 걸어야 했다.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혼나러 끌려가는 것처럼 어지럽고 속까지 메슥거렸다.


“언니!!”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쪽에서 우리를 발견한 희수가 손을 머리 위로 크게 흔들면서 해맑게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유, 언니. 주차장에서 여기 오는 길이 아주 그렇게 험난해서 형부 팔짱을 그렇게 끼고 어? 그렇게 매달려서 오는 거야?”


희수의 가식 없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팽 돌았다. 나는 남편의 팔을 꽉 움켜쥐며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희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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