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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18. 2020

#12 “꼭 사랑이어야 되는 거야?”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12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12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남편이 자전거를 타러 나가자고 했지만, 희수에게 연락이 올 것 같아 망설여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희수에게는 바로 반응하고 답을 주고 싶었다. 


남편은 그럴 것까지 있냐고,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바로 답을 하면 희수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희수가 뜻대로 잘 안되었을 때 혼자서 나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걱정이었다.


희수는 남편과 섹스하지 않는 긴 세월 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집에서 그저 아이만 돌보며 남편에 관한 모든 생각은 철저히 차단한 채로 살았으려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희수는 임신 기간에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 않았고 출산 후에도 한동안 연락이 뜸했다.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듯 보였다. 


그럼 희수 남편은 섹스 없는 결혼생활을 어떻게 견뎠을까? 희수가 아이에게 그랬듯이 희수 남편은 일에만 그토록 집중했을까?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마음이 심란하여 읽던 책을 덮는 것처럼 탁! 소리가 나게 마음을 덮고 저쪽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우리는 결국 자전거를 타러 가지 않았고, 점심으로는 떡까지 잔뜩 넣어 라면을 끓였다. 운동도 안 하면서 떡라면을 먹는 건 너무 대책 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나의 한탄에 남편은 괜찮다고, 우리는 사실 굳이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지 않냐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속으로 ‘운동량은 오빠만 많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라면을 먹었다. 장난을 받아치지 않자 남편은 내 생각을 눈치챈 것처럼 한마디 했다.


“너는 거의 누워만 있지만, 온몸에 얼마나 힘이 들어간다고.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너도 운동량은 꽤 될 거야. 어휴, 그 에너지를 생각해봐.”


남편은 과장하며 몸까지 부르르 떨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라면이 더 맛있다. 국물까지 싹 퍼먹고 커피까지 다 마시고 식탁에서 일어설 때야 희수에게 연락이 왔다.     


“오빠는 어제도 역시나 술 마시고 들어왔는데 내일 출근 전에 준비할 게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면서 그냥 눕는 거야. 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마다할 사람 없다는 말에 용기를 내서 젤을 보여주면서 이게 엄청나다고 해서 샀는데 해줄까? 그랬더니 뜻하지 않게 그러라고 하더라? 그래서 살짝 아까웠지만, 젤 팍팍 쓰고 핸드잡을 해줬지. 근데 이 남자가 갑자기 키스해 달라는 거야. 나 진짜 키스는 언제 했는지 기억에도 없어. 신혼여행 때 하고 첨인가 싶을 정도라니까? 결론은 키스도 했다! 나한테는 이게 블로우잡의 열 배 이상의 용기가 필요한 거였어!”


희수 남편은 희수를 이제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싶었지만, 괜히 들떠서 오버하지는 말아야지 하고 침착하게 얘기했다.


“잘했다 잘했어. 그나저나 너, 또 ‘해줄까’를 한 거야? 그걸 손에 들고서 해줄까? 이랬냐고! 너를 대체 어떡하면 좋을까?”


“고새 입에 붙었나, 그 말이 또 나왔네. 근데 어제도 오빠가 고맙다고 했어. 그리고 내가 또 삼킬 줄 알았는지 직전에 다급하게 먹지마 먹지마 이러는 거야. 누가 또 먹어준댔냐구. 혼자 오해하고 그 야단이래? 하하!”


희수는 어젯밤에 일어난 모든 일이 흡족한 눈치였다.


“네 남편, 고맙다고 말하고 키스까지 해달라고 하다니. 아, 오늘도 나는 눈물이 난다. 그리고 제발 해줄까는 하지 마. 해줄게는 어때? 아니다. 넌 말을 아예 하지 마라. 그냥 가서 만져.”


“알았어. 명심!”


“잠깐씩이라도 매일 하면 그게 제일 좋은데.”


“힘들어서 매일 어떻게 하겠어. 뭐 지금 오빠는 계속 누워있기만 해서 힘들지도 않겠지만.”


“매일 하면 실력도 체력도 진짜 급속도로 늘어. 이게 근육 운동처럼 급격하게 단련되는 것 같더라. 나도 맨날 누워만 있으니까 체력은 몰라도 힘주는 느낌이나 그런 것을 점점 더 잘 알게 돼.”


“매일 해서 나도 빨리 잘 느끼면 좋겠다.”


“사정만 매일 안 하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걸? 매일 사정하면 정액 양이 아무래도 줄어드니까 쾌감이 조금 짧아지는 건 있대. 또 단단함의 정도도 이젠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작년 말부터는 오빠가 사정을 이틀에 한 번만 하더라고. 그래야 하고 싶을 때마다 할 수 있고, 또 더 크고 단단해져서 내가 훨씬 더 만족스러워한다는 거야. 나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오빠는 내가 좋아하는 정도가 눈에 띄게 다르다면서 이젠 두 번에 한 번만 사정하더라. 사실 사정 안 하고 피스톤만 하면 정력증진에는 좋대. 오빠도 그걸 느낀다고 했어. 진짜 강해지는 느낌이 있대.”


“헉! 그런 디테일까지 생각해야 하는 거였어? 그럼 한 2~3일에 한 번쯤이 좋은 걸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거지. 너네는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할 수 있을 때 내키는 대로 뭐든 해. 더 나이 들기 전에.”


“근데 지금은 전적으로 내 서비스만 받고 있으니까 체력 달릴 일도 없어.”


“근데 그렇게 시작해도 자기가 올라타서 주도하고 싶은 그런 맘이 들지 않나? 오빠는 너무나 그렇거든. 그래서 난 그게 수컷의 본능이라고 생각했어. 사실 나는 여성 상위는 거의 안 해. 아주아주 가끔 처음 시작 때 잠깐 하고 내려와. 나도 단련이 안 된 몸이라 그런지 힘들어서 3분도 못 하겠거든.”


“나 저번에 상위 처음 해봤잖아. 근데 이게 완전 스쿼트더라? 진짜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었는데, 여자는 그 자세일 때 오르가슴이 잘 온다는 글을 하도 봐서 내가 겨우 참으면서 했거든. 그나저나 언니만 살찌는 이유가 이거구먼! 말로만 들어도 형부의 칼로리 소모가 엄청날 것 같아!”


“너 여성 상위 때 말이야, 스쿼트 할 때처럼 움직였어? 그러면 열 번이라도 할 수 있냐고. 그걸 백 번을 한들 힘들어 죽겠는데 오르가슴이 오겠어? 보통은 삽입한 상태로 앉아서 엉덩이를 앞뒤로 흔드는 거야. 그게 남자도 여자도 더 좋아.”


“뭐? 위아래로 엉덩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게 아니야?”


“무슨 자동펌프냐?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그 자세로는 오래 할 수가 없잖아. 나도 몰랐을 땐 위아래로 하는 건가 했거든, 근데 이건 뭔가 아니다 싶고 몇 번 만에 허벅지가 너덜너덜해지더라고. 그러다 언제 한번 포르노를 보니까 여자가 올라타서 앞뒤로 막 흔드는 거야. 남자도 여자 골반을 딱 잡고 앞뒤로 흔들어 재끼더라? 그래서 다음번에 그렇게 해보니까 그게 더 좋고 덜 힘들고, 오빠도 이거다! 그랬어.”


“언니, 나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다 말해줘야 해. 웬일이야. 어쩐지 위아래로 엉덩이를 펌프질하듯이 움직이니까 어정쩡한 게 섹시하지도 않구 되게 천천히 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허벅지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서 아무래도 이상한 거야. 물론 좋은 것도 눈곱만큼도 없고. 근데 오빠는 아무 말도 안 했어. 자기는 알았을 것 아니야? 오빤 아무 반응도 없고 난 너무 힘들어서 결국 핸드잡 한 거야. 그래서 포르노를 봐야 하는구나.”


“너 포르노 본 적이 없어?”


“어, 난 안 봤어. 오빠가 보길래 내가 완전히 경멸했었거든.”


내 친구들도 희수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는 포르노 보는 것 자체를 다른 여자와 섹스하는 것처럼 여기는 친구도 있었다.


“다 큰 성인이 에로영화나 상업용 포르노 보는 거로 뭘 경멸까지 해. 포르노가 금지인 나라도 우리나라랑 이슬람 몇 나라뿐이래.”


“내가 19금 소설 보면서 없던 성욕이 폭발하구, 오르가슴도 엄청 궁금하구 그래서 진짜 이번에 남자들을 좀 이해하긴 했어. 비슷한 거겠지 싶어서. 예전에 같이 보면서 하자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날 보고 흥분하는 게 아니고 화면의 여자를 보고 흥분하는 거잖아. 그게 너무너무 싫은 거야. 자존심이 상하구.”


“너는 이상한 데서 자존심이 상하더라? 남편이 속으로 저 포르노 속의 여자랑 한다고 생각할 거 같아? 포르노에 남자도 나오는데 그럼 여자도 지금 난 저 남자랑 하는 거다, 그렇게 자기최면 하면서 해? 포르노는 그냥 흥분하려고 보는 거지.”


“알았어. 좀 친해지면 같이 보기도 할게.”


“같이 포르노 보면서 우리가 적용할 만한 팁을 얻거나, 해볼만 한 체위가 나오면 따라서 해보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포르노에 나오는 걸 따라한다구?”


“거기서 배운 체위도 몇 개나 있는걸? 맨날 뻔하게만 하니까 재미가 없는 거잖아. 내 친구도 그랬어. 늘 똑같은 섹스, 지긋지긋하다면서 오죽하면 남편이 할 때 자기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 그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거야. 그래서 같이 포르노를 좀 보라고 했더니 질색하더라? 그러더니 한참 후에 뭐라는 줄 알아? 밑져야 본전이다 하고 같이 봤는데, 보다 보니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게 됐대. 게다가 남편이 배우처럼 노력도 좀 하게 됐고, 체위도 다양해졌다면서 무지하게 만족하는 거야. 그렇게라도 배우는 거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엿보는 거야.”


“그래? 나도 그럼 맘을 열고 봐야겠어. 나는 좀 배울 필요가 있으니까!”


“그리고 여성 상위도 계속 같은 자세로 하지 말고, 뒤로 팔 짚고 자빠져 보기도 하고 그래 봐. 몸이 뒤로 약간 활처럼 휘는 자세가 되는데, 그러면 질 앞쪽이 압박되니까 느낌이 새롭고 괜찮거든. 내가 좋은 지점이 어딘지 찾아보려면 다양하게 해보는 수밖에 없어. 그 자세일 때 남편이 클리를 만져주면 되게 좋아. 그때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해 볼 수도 있고.”


“여러 번 읽으면서 상상해볼 때는 알 것도 같은데 실제로 막상 하니까 감이 잘 안 잡히더라. 지금 말한 것도 나중에 할까 말까일 거야. 여성 상위 때도 난 손을 어째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짚을 데가 없이 하느라고 더 힘들었던 가봐.”


손을 어째야 할지 몰랐다는 희수. 부자연스럽게 굴었을 것이 눈에 선했다. 희수는 난생처음으로 요리를 해내야 하는 생초보처럼 굴었던 거다. 모든 것을 조리법에 적힌 그대로 해야지만 겨우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나올 거로 생각하는 요리 초짜처럼, 내가 글로 알려준 걸 머리로만 몇 번 상상해본 후에 그대로만 하려니 실전에서 엉망인 것이다.


“그냥 무릎 꿇은 상태로 걸터앉은 자세라면 남편 젖꼭지도 만지다가 가슴에 올려두거나 남편의 허벅지를 딱 잡아도 되고. 뒤로 젖힌 자세라면 바닥이나 남편 다리 어딘가를 짚어야지. 뭐든지 네가 편하고 자연스러운 자세를 하면 돼. 정답이 있는 게 아니야.”


“언니가 뭐 알려주면 열 번씩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동작을 상상해보는데, 여성 상위도 되게 어렵다. 잘 될지 모르겠네.”


“경험이 너무 부족하니까 상상만으로는 어렵지. 이것저것 다 해 봐야 점점 느는 거야. 별로면 말지, 그런 태도로. 늘 하던 자세로만 소극적으로 하면 아무것도 안 돼. 영상을 보면 딱 감이 올 텐데. 나는 이거 좋다 싶은 걸 지금도 발견한다고. 끊임없는 연구개발.”


“숙지해서 내 오르가슴도 찾고, 남편을 휘어잡겠어.”


“너 계속 그 생각만 하니? 너의 진짜 목적을 따져 볼 시점이다.”


“내 목적은 무조건 권력이야.”


희수는 단언했다.


“사랑이 있어야 권력도 생길 텐데?”


“그래? 사랑 없이 권력 없어? 정말? 언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희수는 오로지 권력만 중요한 것처럼, 그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목적인 듯 재차 물었다. 희수의 상황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사랑 없는 권력이 무슨 소용일까. 설사 권력이 생긴다 해도 금방 다시 불행에 빠질 거야. 희수의 세상이 핑크빛이려면 마음이 핑크가 되는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나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당연한 거 아냐? 부부간에 사랑 없는 권력은 폭력밖에 더 돼? 사랑으로 대하면 권력이 따라오는 거야. 넌 지금 앞뒤가 바뀌어 있어.”


“어… 그럼 사랑으로 바꿔봐?”


예상 외로 희수는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아니면 대충 얼버무리고 이 주제에서 그만 벗어나고픈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너무너무 싫은데도 그 마음 숨기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 그러면 어떻게 빨고 정액을 삼켜?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 너한테는 사랑이 남아있는 거야.”


“언니, 솔직히 나 사랑이 없다. 구석구석 찾아서 끌어모아야 할걸.”


“그래. 끌어모으면 모일 사랑이 한 줌은 있는 거잖아. 미량의 사랑이라도 넓게 넓게 펴서 덮을 수 있는 거야. 그러다 보면 그 사랑이 도톰해지기도 하고.”


“근데 꼭 사랑이어야 되는 거야? 사랑을 못 찾으면 어떡해? 나 지금 복수할 마음으로 살아남아 있다구. 언니는 몰라, 모른다구. 나 정신과까지 다니고 있단 말이야.”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복수라니, 정신과는 또 뭐고! 대체 희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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