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주 Aug 19. 2020

#15 “계속 화나 있을 사람은 남편이에요.”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15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15


나와 남편은 희수에게 한바탕 야단을 부렸다. 그럴 때 남자들이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그러냐며 오히려 화를 내고 상대보다 더 길길이 날뛰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이 보통이라고. 남편이 공감하고 사과까지 했으면 진작에 끝을 냈어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지 못하면 여간해선 그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더욱 상처받고 더 의심스러워지고 결코 화가 풀리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아픈 이유가 그거다. 


그걸 다들 잘 모른다. 정말 별 게 아니어도 상대가 기분 나빠하는 지점은 이해해주는 것이 배우자의 도리다. 희수 남편이 희수가 기분 나빠하는 지점을 이해하고 사과까지 했다는 건 놀라웠다.


“그거 인정하는 사람 별로 없어. 다들 괜히 부인이 히스테리 부리는 것처럼 몰아가지. 자기가 처신 잘못한 생각은 안 하고 자기 부인을 엄청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데, 그게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드는 거거든.”


“그래서 희수 씨. 그 이후에 다시 그런 일 없었죠? 지난 5년 동안 또 그런 일은 없는 거잖아요. 근데도 여태껏 무슨 허즈번드를 만들어서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대체 왜 하고 있어요? 그럼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러면 아주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희수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반드시 그러고 말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이었다. 저 정도라면 정말 그리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불 난 집에 불을 끄러 온 소방수다. 본분을 잊지 말고 불을 꺼야만 했다.


“아니야 희수야. 막상 그렇게 한다 해도 그걸로 기분이 풀리지는 않을 거야. 나 믿어봐. 너는 진작에 마무리된 일로 계속 힘들어하는 거야. 인제 그만 넘어갈 때 됐어. 지난 세월 아까워서 어쩔 거야.”


“내 친구들은 내 얘기 듣고 모두 미친 듯이 분노했었어. 다 뒤집어버리고 이혼해야만 할 일처럼 말이야. 나도 그렇게 느꼈고. 이혼은 못 해도 또 내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오빠한테도 내가 느꼈던 그 기분을 꼭 느껴보게 하고 싶어.”


희수의 말을 듣는 내내 이 얘기를 그간 왜 내게는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희수가 임신과 출산할 즈음이 우리가 유일하게 연락이 뜸했던 기간이긴 했다. 나는 첫 장편에 매달려 있을 때였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그때 나에게 말을 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희수의 상황이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요. 희수 씨. 그것 때문에 아직도 화나 있다는 걸 남편이 알아봐요.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그거 가지고 여태 몇 년이나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건가 싶어서 이번에는 남편이 도리어 화낼 것 같아요. 진짜예요. 그러니까 그런 바보 같은 얘기는 이제 하지도 말아요. 희수 씨 남편은 그 여자랑 별일 없었던 거예요. 친한 동료면 그 정도 카톡은 할 수도 있어요. 5년 전 일로 여태 그러고 있으면 희수 씨야 말로 답 없어요. 진짜.”


남편은 강경하게 나섰다. 우리가 하도 야단을 부려서인지 희수는 얼마간 마음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 그때 받았을 상처와 배신감을 어찌 우리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계속 밀어내겠다는 건 미련한 짓이다. 이미 뒤틀려버린 세월이 몇 년인데.     


“그래서 너, 임신했을 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그때부터 섹스를 거부한 거니?”


“아니, 섹스는 그전부터 거의 안 했지. 임신 이후에는 아예 안 했구.”


“뭐라고?”


희수가 결혼하자마자 임신한 것도 아니다. 4년 차에나 임신한 건데, 사실 그때부터 섹스리스였대도 기가 막힐 판이다.


“그 전부터요? 그전에는 왜요?”


남편은 놀라서 그런지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 톤까지 높아져 있었다.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못 했어요.”


희수가 섹스하지 않은 이유를 듣고 나와 남편은 동시에 얼이 빠져버렸다.


“뭐? 아파서?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는 아픈 거잖아. 그렇다고 아예 안 했다는 거니?”


“오죽하면 첫날밤에도 못 했어. 아파서 눈물이 다 나더라구. 그랬더니 오빠가 천천히 시도하자고 했어.”


“근데?”


“내가 섹스보다 핸드잡을 더 많이 해봤다고 했잖아? 내가 아파하니까 오빠가 그럼 손으로 해달라고 해서 줄곧 그것만 하게 된 거야. 근데 노상 그러고 있으니까 싫어서, 그래서 내가 좀 거부하기도 했고, 어쨌든 급격하게 횟수가 줄다가 결국 안 하게 된 거야.”


“아니, 그러면 삽입 섹스는 거의 못 해봤다는 거야? 은성이는 어떻게 낳은 거야. 그땐 이 악물고 아픈 거 참으면서 한 거야?”


“그게 언니, 오빠가 덤빌 때가 아주 드물게 있긴 했었어. 1년에 한 번쯤 말이야. 그때도 어쩌다가 오빠가 덤벼서 했는데 정말 무슨 운명인지 그 한 번에 임신이 된 거야. 나는 임신은 아예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접고 살고 있었거든. 근데 덜컥 임신이 돼서 나 한참이나 우울했었어.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데 임신한 거니까. 내 생각에는 오빠가 내 배란일 따지고 있다가 임신할 수 있는 날에 맘먹고 졸랐던 거 같아.”


“결혼 초에 아파서 거부하고, 여태 그렇게 산다는 말이에요?”


남편은 단단히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도 저 질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한사코 거부한 것도 아니에요. 나는 그래도 해볼 마음이 있었어요. 근데 오빠가 내가 아파하는 게 싫은지 계속 조르지도 않았다구요. 나도 당장 아픈 게 싫으니까 그냥 있었구요.”


“너 병원은 가봤어?”


“당연히 갔지. 두 군데나 갔었어. 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몇 년 지나면 나아질 거예요, 그러고 있어. 몇 년이나 계속 이렇게 아파야 한다는 거잖아. 또 다른 데서는 아기 낳을 때 처녀막이 완전히 다 찢어지면 안 아플 거라나? 그게 고작 해줄 말이야?”


아무리 오래전이라지만 의사들도 참 너무했다. 아파서 아예 못하겠다고 찾아왔는데 취해줄 조치가 그렇게도 없었을까. 성교통 치료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하다못해 윤활제라도 쥐여 줬어야 했다. 희수는 여태 그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럼 남편은 뭘 하고 있던 거지? 남자가 러브젤도 모른단 말인가?


“지금은 괜찮아? 지난번에 할 때 안 아프디?”


“어. 이제 안 아프더라구. 내가 작정해서 괜찮나? 아니면 진짜 애를 낳아서 안 아픈가?”


“그럼 제왕절개로 낳았으면 영원히 아플 거라는 거야? 말도 안 돼!”


속으로는 희수 말대로 작정한 것과 아닌 것이 그렇게 차이 날 수 있을까 가늠을 해보고 있었다. 남편은 약간 지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희수 씨, 결혼하면 서로 의무가 있잖아요. 알다시피 섹스도 그중 하나고요. 꽤 중요한 의무죠. 계속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해보고 방법을 찾았어야죠. 남편이 계속 조르지 않았다고요? 자꾸 아프다면서 거부하니까 남편이 하자는 말도 못 꺼낸 거예요.”


“맞아. 몇 번 거부당하면 아예 말을 못 하게 된대. 또 거부당할까 봐 두렵고 자존심도 상하니까. 너 지난번에 남편이 거부했을 때 나한테 뭐라고 했어? 거부당하면 이런 기분이었냐며 좌절했잖아.”


나도 거들었다.


“아프기만 한데 일단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래도 간혹 남편이 요구할 때는 매번 응했어요. 그것도 애 낳기 전 일이지만.” 


“그럼 핸드잡, 그건 언제부터 안 했니?”


“글쎄, 결혼하고 일 년 좀 안 됐을 때쯤?”


희수의 대답에 남편은 한숨을 내쉬었다. 희수는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도 그렇고, 희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랬다. 섹스가 결혼생활에 이 정도로 중요할 거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짐작도 못 했다. 그래서 매우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고, 일의 순서에서 섹스를 뒤로 미뤘다.


부부간의 성행위만큼 한번 내리막길로 치달으면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곡선은 보지 못했다고 어느 섹스 전문가는 말했다. 박사님의 말이 그러하니 단념하는 게 현명할까? 뒤늦게 심각성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정녕 손쓸 도리가 없는 걸까? 하지만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희수 혼자서 그 곡선을 반등시킬 수 없다면, 정말 그렇다면 내가 고꾸라진 희수의 곡선을 있는 힘껏 끌어올리면 되는 것 아닐까? 더 내려갈 수도 없는 그래프의 가장 밑바닥, 그러니까 희수가 지금 망연자실한 채로 서 있는 저 자리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희수의 그래프는 이미 미약하게 방향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침묵을 하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에 골몰해있었다. 그때 남편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희수 씨, 남자가 자기 부인한테 섹스를 거부당하는 거, 그거 참기 어려운 거예요. 계속 화나 있을 사람은 남편이에요. 아! 그래서 희수 씨한테 계속 화낸 거 아니에요? 꼬투리 잡고?”


남편은 말하다가 실마리를 찾은 사람처럼 마지막에 목소리가 커졌다.


“어머? 정말 그 불만이 쌓여서 고작 설거지 따위로 화낸 거라고?”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 생각은 이래요. 희수 씨 남편은 희수 씨를 포기 안 한 거예요. 얼마 전에 희수 씨가 몇 년 만에 다가왔을 때 받아줬잖아요. 나 같으면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잔소리한댔죠? 내 친구들 보면 다들 잔소리도 안 해요. 귀찮으니까. 부인이 애들 일로 상의하려고 해도 그런 건 알아서 하라는 게 보통 남자들이에요. 집에서 벌어지는 일에 신경 안 쓰면 편한데 일일이 참견하고 잔소리하는 거, 그거 상당히 귀찮은 거예요. 관심을 꺼버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물론 소리 지르고 화내고 물건 던진 거는 희수 씨 남편이 너무 잘못했지만, 그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여기서 나도 희수도 그건 아니지 않냐고 또 발끈했다. 남편은 말을 이어갔다.


“희수 씨 남편, 딱 봐도 모자라는 게 없잖아요. 근데 섹스를 못 해. 그것도 부인이 내켜 하지 않아서요. 여자는 남자 자존심만 잘 세워주면 결혼생활은 무탈하다고 결혼생활 지침서에 나와 있더라고요. 남편이 그렇게 행동한 건 자존심 때문에 그런 거예요. 부인이 섹스도 안 해주는데 살림하고 애 키우는 게 자기 성에 안 찬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하는 게 대체 뭐가 있냐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고 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14 “도어록 소리만 나도 막 심장이 뛰는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