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18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부부간의 섹스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다. 부부라는 묘한 관계의 전제 자체가 섹스하는 사이라는 것을, 섹스가 행복한 결혼생활의 키 역할을 하는 절대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나는 결혼 10년이 넘을 즈음에 확실히 인지했다.
결혼 연식에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섹스하는 사이라는 사실은 그들 삶의 많은 부분을 대변해 준다. 부부끼리 섹스를 안 한다(드물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는 것은 섹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의 안 해. 따져보면 일 년에 세 번 정도는 하는 거 같네. 대부분 그렇지 않나?”
가끔 만나는 동네 언니는 이렇게 얘기했다. 일 년에 세 번 하는 섹스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무척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미리 날을 정해 놓는 걸까? 결혼기념일과 각자의 생일날에 하면 딱 세 번이 되는데…. 그렇게 미리 정해 놓지 않고서야 부부가 일 년에 세 번 섹스한다는 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되지 않았다.
동네 언니는 즉각 대꾸하지 않는 나를 보고 변명하듯 말을 더 보탰다.
“근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 사이가 되게 좋잖니. 아직도 서로 사랑하고. 섹스만 안 하는 거지.”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물었다.
“사이가 되게 좋은 부부가 섹스를 안 하는 게 말이 될까?”
“그게 무슨 소리야? 사이가 좋은데 왜 섹스를 안 해. 신체적인 문제가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고는 말이 안 되지.”
남편은 내 질문 자체를 어이없어했다. 나는 동네 언니 얘기를 했다.
“근데 내가 봐도 그 언니네 사이가 좋아 보이긴 하거든. 근데 또 일 년에 세 번은 한대. 어쩌면 섹스하는 걸 안 좋아할 수도 있잖아. 마침 성욕이 없는 둘이 결혼을 한 거지.”
남편은 대꾸는 하지 않고 턱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눈빛만 보냈다.
“왜 성욕이 없는 사람을 인정 안 해? 이 세상에는 온갖 사람들이 다 있고, 부부 둘 다 마침 성욕이 없을 수도 있지.”
나는 정말로 그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랑하면 그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해.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에 뭐라고 쓰여 있었냐면, 섹스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부부라는 건, 하얀 까마귀나 다리가 다섯 달린 강아지를 볼 확률이라고 했거든. 너무 단정적으로 쓰여 있어서 읽는 사람들이 좀 흠칫할만한데 나는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
그래도 이 세상의 어딘가에는 하얀 까마귀와 다리가 다섯인 강아지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을 이어갔다.
“알랭 드 보통도 책에 비슷한 얘기를 썼더라. 누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를 갖고 있다고 하면서, 알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뿐이래. 너무 웃기지? 근데 어느 정도 맞는 얘기라고 생각해. 그걸 사랑으로 극복하는 거지. 그래서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이 있잖아. 부부는 서로의 단점을 가장 많이 보는 사이인데, 여기에 사랑이 빠져버리면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십상인 거야. 근데 부부를 남녀관계로 유지 시켜주는 것,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게 만드는 게 바로 섹스인 거지. 부부는 섹스로 사랑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사랑도 섹스를 통해서 느끼는 거야. 그러니까 섹스는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거의 절대적인 방법이야.”
나는 최대한 다른 예를 생각하려 애썼다.
“내 친구 수아있잖아. 수아 전남편처럼 성 기능이 안 따라주는 그런 경우도 있잖아. 남편이 그런 상태라 섹스를 못 하는데 다행히도 부인이 크게 성욕이 없어서 섹스를 안 하는 경우, 그런 상황이 있지 않을까?”
왠지 억지 춘향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조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수아 씨 부부가 지금 계속 사랑하면서 살아? 아니잖아. 성 기능이 안 따라준다고 성욕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거잖아. 그리고 여자의 성욕도 남자와 다르지 않다더라. 정서적으로 억압된 거지. 그런데 좋은 걸 경험해보지 않으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덜 하긴 하겠다.”
“맞아. 모르는 맛인 거지. 아예 궁금하다는 생각조차 안 드는 거야. 물론 대단한 섹스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멋지고 부럽고 흥분도 되지만 그건 현실 세계가 아니잖아. 평상시에는 욕구가 없을 수도 있어. 나도 옛날에 그랬잖아.”
나는 어린 나이에 남편을 만나서 섹스 또한 비교적 일찍 시작했다. 연애 2년 차가 되어서야 섹스를 했지만, 그때도 우린 고작 스물하나, 스물둘이었다. 둘 다 처음이었지만 남편은 그간 보고 들은 것들이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아팠지만 처음에는 원래 그렇다는 풍월을 들었기에 당연하다 여기고 참았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섹스 때도 줄곧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그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견디었다.
그 당시의 내가 참기 힘든 건 사실 아픔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섹스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창피해 죽겠는데, 좋아하는 내색을 한다니? 그건 아픔을 참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내겐 몇백 배나 더 어려운 미션이었다.
여자의 신음은 영화에서만 나오는 것 아닌가! 현실 세계의 내가 그럴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프지 않을 때도 신음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의 쾌감을 느낄 섹스는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는 줄곧 다정한 섹스를 나누었다.
간혹 영화 속 배우들의 희열에 달뜬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섹스할 때 아주 잠깐이라도 저런 소리를 냈다간 창피해서 다시는 남편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마음을 더 단단히 먹었다.
그래도 때때로 좋았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발끝까지 짜르르한, 이전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묘한 쾌감이 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 같은 소리가 나왔지만, 얼른 나 자신을 단속했다. 내가 쾌락에 의한 신음을 낸다니, 말도 안 돼!!! 게다가 오빠가 나의 소리를 들을 텐데, 그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섹스 도중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은 단단해진 남편의 팔뚝을 꽉 잡는 것 정도였다.
나는 뒤로하는 자세를 좋아했다. 싫어하는 여자들도 더러 있다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내가 그 체위를 좋아한 결정적 이유는 남편이 내 얼굴을 못 보는 자세였기 때문이다. 나의 찡그린 얼굴,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나 눈을 질끈 감는 것을 내 연인이 볼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큰 해방감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과감해질 수 있었다.
우리가 섹스한 지 15년쯤 되었을 무렵에 남편에게 말했다.
“사실은 오빠가 내 표정을 못 보니까 좋아했던 거야. 그 자세.”
“아니야, 네가 훨씬 더 좋아해.”
남편의 믿음은 확고했다. 나의 반응을 민감하게 살피고 파악해왔을 테니까.
“오빠가 그렇게 생각할 만해. 그 자세일 때는 반응을 조금 보여도 덜 창피하니까 내가 약간 티를 내보기도 했거든. 근데 그러니까 더 좋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스스로 더 흥분되는 건 있는 거 같아. 그럼 내가 더 좋아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그거 보라니까? 뒤로 할 때 너 완전 난리 난다고.”
지금은 이런 얘기를 밥을 먹으면서도 하지만, 예전의 나는 이런 대화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평소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섹스하는 중에도, 또 섹스가 끝난 직후조차 섹스 관련 대화는 딱 질색이었다. 남편이 섹스 얘기를 자꾸 꺼내는 바람에 다툰 적도 몇 번이나 되었다.
아까 이렇게 하니까 네가 훨씬 좋아하는 거 같더라? 지금 이거 좋아? 이런 식의 질문은 내게는 너무 어려운,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질문이었다. 별로라고 하면 실망할 테고,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워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포르노를 보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던 나는 가끔 같이 보기도 했다. 지금이야 ‘우와, 대단하네. 나도 저렇게 해줘. 저 여배우는 정말 예쁘고 연기도 잘하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재미있게 보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나는 포르노를 볼 때조차 부끄러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함께 보는 일도 지금과 비교하면 드물었지만, 같이 볼 때도 재미없는 다큐멘터리를 보듯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보았다.
신혼 시절, 포르노를 함께 보고 있을 때였다. 아마 결혼한 지 2년쯤 되었을 무렵일 것이다. 보는 도중에 남편이 내 밑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거봐, 너도 좋아하잖아.”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수치심이란! 아직도 또렷하게 생각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젖어 있는 몸을 들켰을 때의 당혹감, 그리고 그때 남편의 말투와 눈빛과 미소를 고스란히 기억한다.
그때부터 나는 한동안 포르노를 보지 않았다. 나도 포르노를 보면 흥분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더욱이 그것을 남편이 알아차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자도 야한 영화를 보면 흥분하는 것이 마땅하고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그때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모든 부끄러움을 훌훌 벗어버린 건 첫 경험 이후 무려 15년이나 지났을 때였다. 그러니까 결혼한 지 10년쯤이 되었을 때다. 아주 천천히, 나조차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느리게 느리게 움직였다.
어떤 건 내가 의도하기도 했고, 어떤 건 세월의 힘으로 저절로 되기도 했다. ‘아주 조금씩 내보이면 창피하지 않을지도 몰라. 오빠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차츰차츰 변하면 괜찮을 거야.’ 그렇게 부끄러움을 한 꺼풀씩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고 표현을 해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전히 껍질 밖으로 나와 있는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매미는 땅속에서 열다섯 번이나 탈피하며 웅크리고 있다가 7년이 지나서야 땅 위로 올라온다고 한다. 나는 내가 가둔 틀 밖으로 완전하게 나오기까지 매미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결국은 세상으로 나와 높이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우리는 삼 일에 한 번 정도 사랑을 나누었다. 남편은 참으로 한결같았다. 사흘쯤 지나면 하고 싶어 죽겠다고 내게 속삭였다. 낮부터 재촉하는 날도 많았다.
어느덧 내가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땅 위로 나왔을 때였다. 섹스하는 도중에 ‘아!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내 위에서 열심히 움직이던 남편도 동시에 느꼈다. 나의 변화를. 그 리드미컬한 환희를.
“사실 그동안 나는 너에게 오르가슴을 줄 수 없는 건가 싶어서 의기소침했었어. 나는 너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순 없나 하고. 나는 능력이 없구나 싶어서.”
남편은 약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가 왜 나한테 오르가슴을 못 줬다고 생각해? 그동안은 그럼 뭔데.”
“방금 이런 거 말이야. 나 그래서 지금 너무 기뻐!”
남편은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꽤 했던 모양이었다.
“사실은 내가 마음을 못 열어서 그랬던 거야.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느낌이 올 것 같으면 얼른 나를 단속하고 그랬어. 내가 느끼고 좋아하고 그런 것 자체가 너무 창피해서.”
나는 그제야 사실을 말했고, 나의 고백을 들은 남편은 믿기 힘들어했다. 하루가 멀다고 발가벗고 섹스를 하면서도 그 사람을 모르는 것이 부부다. 열린 마음과 대화가 섹스에 중요한 열쇠라는 것도 몰랐다. 나로 인해 남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랑이 가득 차올랐으면서도, 나는 미련하게 남편 역시 그럴 거라는 마땅한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구속에서 빠져나온 이후 나는 새로 태어났다.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지금은 아이가 학교 간 틈을 타서 마음껏 소리 지르며 뒹굴기도 한다. ‘밖에서 누가 듣고 무슨 일 났다고 신고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진심으로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