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다.
9월에 샤오미 제품 몇 가지를 샀다.
다이슨을 위협한다는 무선 청소기와 함께 체중계와 미밴드를 구매했다.
시계 기능도 있어서 중1 아들에게 채워볼 생각으로 미밴드 5를 사고, 내친김에 인바디 체크가 된다는 샤오미 체중계 mi scale도 샀다.
미밴드가 로켓 배송으로 먼저 도착했다.
작은 액정은 무려 터치 스크린이다. 핸드폰과 연동되는 이런저런 기능에 감탄하면서 걸어도 보고, 심박수도 살펴봤다.
미밴드 1세대를 사본 적이 있었는데, 그간 이렇게나 많은 발전이 있었나 새삼 놀라웠다.
걸음수가 나오니까 더 신나게 산책도 할 수 있었고, 심박수의 추이도 보니 운동하는 즐거움이 더 커진다.
또 기록이 남으니까 매일매일 운동하는 동기부여도 더 되는 것 같다.
이 밖에도 스트레스 지수와 밤에 잠을 잘 자는지도 체크해주었다.
밤에 잘 자는 지도 알 수 있다니 신기하다.
렘수면과 얕은 수면, 깊은 수면을 어떻게 측정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는 시간은 잘 맞춘다.
사나흘 나도 착용하고 지내봤는데, 낮에 잠시 15분을 자도 칼같이 15분 낮잠 잔다고 나왔다.
아침에 확인하고 '너 왜 이렇게 렘수면 비율이 적은 거야?'라고 하니까,
아들 녀석은 억울하다는 말투로 '그건 내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거잖아!'라고 했다.
남편은 옆에서 '그건 그렇지!'라고 하면서 웃겨 죽는다.
9월 내내 온라인 수업이라서 8시 20분에 일어났다.
이번 주는 한 달 반 만에 등교 주간. 애도 나도 잠을 꽤 설쳤다.
등교 주간에는 아이 잠자는 시간이 8시간이 될까 말까더라. 일단 기상시간부터 1시간이 당겨지니까.
나는 일단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는 주의라 10시 30분 전에 잠자리에 들게 한다. 이것도 중학생이 되면서 거의 한 시간가량 늦어진 것이다.
아들의 스트레스 지수도 체크.
막대그래프에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는 순간도 겨우 '보통' 수준이 된 것인데, 고작 하루에 4%다.
남편에게 보여주면서 이게 인간의 스트레스 지수일 수 있냐고 물었다.
수행평가다 뭐다 신경 쓸 것도 많은데다가, 하물며 게임할 때 다른 차가 박아서 죽고 열내지 않았냐고.
며칠 후, 문제의 샤오미 체중계가 도착했다.
멀쩡한 체중계가 있었지만 남편은 체지방 관리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것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반, 어떤 식으로든 동기부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반, 그랬다.
주문을 했다는 말을 들은 날부터 두근두근했다. 당연히 좋은 의미의 두근거림은 아니었다.
몇 년 만에 해보는 인바디, 얼마나 변했을까.
눈으로 봐도 몸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기회로 체지방을 줄여나가는 계기를 삼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다렸다.
남편은 체중계 박스를 뜯으면서 말했다.
"이 체중계는 가족 구성원을 다 구분한대. 몸무게가 다르니까 각자의 몸무게를 기억했다가 누가 올라갔는지 알아보는 거지. 똑똑하지?"
하나의 기기에서 모두의 인바디를 관리할 수도 있다는 말에, 내가 발끈해서 각자의 스마트폰에 mi fit을 깔았다.
남편도 아들도 차례차례 체중계에 올라갔다.
나는 당장은 재보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과 아들이 성화를 부렸지만 점심까지 먹은 마당에 올라갈 수 없다고 나도 고집을 부렸다.
체중은 무조건 아침 공복 때 재는 게 국룰 아닌가?
다음날이 되어서 나도 올라가 보았다.
내 수치들은 말해주지 않을 거니까 물어보지 말라고 먼저 말했다.
남편은 체지방률만 알려달라고, 다른 건 궁금하지도 않다고 했다.
자기의 수치를 보아하니 약간 적게 나오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내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 체지방률 정도는 알려주지.
두둥...
내가 마지막으로 쟀던 체지방률보다 7%나 높아져있었다. 하아....
그렇다고 마지막 체지방률도 적은 수치가 아니었는데.....
남편에게 알려주니 남편은 몹시 당황했지만 얼른 놀라는 기색을 감추고 이제부터 조절해보자고 했다.
예전보다 훅 올라간 체지방률이 나를 당혹스럽게 하긴 했지만, 사실 아주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다.
최근에 바지 사이즈가 두 단계나 높아졌기 때문에 나도 조금 예상을 하긴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남편은 체지방률이 적게 나오는 건 아닌가 보네, 하는 말을 흘리고 다시 체중계에 올라갔다.
그런데 어라?
남편이 체중계에 올라갔는데 왜 내 스마트폰이 켜지는 거지?
이건 무슨 상황이냐?????
이 짜증나는 샤오미야!
가족을 구분할 수 있다며? 몸무게로 구분한다며....
근데 왜 남편이 체중을 재는데, 내 스마트폰이 작동하는 건데?
어이가 없고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오빠, 내 스마트폰이 오빠 체중을 내 체중으로 인식하고 있어. 물론 내가 더 적게 나가!"
"뭐라고?"
남편이 놀라 물었다.
"대체 얼마나 차이가 안 나길래 그걸 혼동해?"
"몰라. 너무너무 짜증 나. 샤오미 너무 짜증 나."
우리가 사귀던 이때부터 우리는 줄곧 10킬로 차이가 났었다.
남편은 178cm, 나는 170cm
둘 다 마른 체형이었고, 10kg은 딱 키 차이만큼의 차이였다.
그러다 내가 취직을 하고 갑자기 종일 앉아있게 되면서 몸무게가 마구 늘어서 격차는 좁혀졌다가,
남편도 졸업 후 취직을 하면서 몸무게가 늘어서 다시 격차는 알맞게 벌어졌다.
몸무게가 거의 동급이 되었을 때는 내가 임신을 하고 최고 몸무게를 찍었을 때였다. 하지만 출산을 했다고 다시 몸무게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직장을 관두고 금세 다시 군대 시절의 몸무게를 회복해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반면, 나는 온갖 다이어트를 반복하면서도 점점 체중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기계가 누구인지 구분을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으니, 나의 분노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 폰에 남편의 몸무게가 떴다면, 남편의 폰에도 내 정보가 뜨겠다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거였다.
남편이 안 볼 때 나는 얼른 남편의 스마트폰에서 나의 기록을 지웠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나는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몰래 남편 폰의 블루투스를 해제하고, 체중계를 화장실로 들고 가서 몸무게를 쟀다. 몇 번이나 그렇게 했다.
하지만 공복 상태로 운동을 하고 난 후에 재봐도, 저녁을 굶고 그다음 날 재봐도 나의 몸무게와 체지방은 변동이 없었다. 요지부동.
체지방률은 운동 몇 번 한다고, 한 끼 굶는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차곡차곡 쌓인 나의 성적표 같은 거였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 남편이 다시 몸무게 재보겠다고 할 때 일이 터졌다.
남편이 인바디를 재고 스마트폰에서 미핏을 구동시키니까 그동안 내가 쟀던 기록이 촤르르르르륵 뜨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미친 기계가 왜 그걸 다 기억했다가 줄줄이 띄우는 건데?
남편이 나갔을 때, 또 블루투스를 일부러 해제했을 때 쟀던 내 기록을, 이미 내 스마트폰에서 동기화시킨 내 몸의 기록들을 왜 다른 스마트폰에도 똑같이 고스란히 다 띄우는 건데?
기억해서 구분하라는 건 하지도 못하고 혼동하는 주제에.
그래도 유일한 위안은, 바디 점수가 남편과 내가 같다는 것이다.
비록 체지방률은 엄청난 차이가 날지언정 바디 점수는 둘 다 똑같은 84점이라는 거다.
남편과 내 인바디에서 보이는 구성요소가 다른 것은, 문제가 있는 구성요소는 따로 분류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체지방률이 이 표의 밖에 있어서 스크린샷이 찍히지 않았다. (몹시 다행)
친구에게 이 망할 체중계가 남편 몸무게와 내 몸무게를 혼동하더라고 말했더니, 나의 분노를 짐작하면서도 숨넘어가게 웃었다.
나는 올해가 가기 전까지 최소한 기계가 남편과 나를 구분할 수 있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석달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