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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느낌

계단 우물을 아나요? -1

경이로운 인도의 계단 우물 stepwell

by 현주


내가 계단 우물을 처음 본 것은 1996년 12월 28일이다.

인도의 아마다바드에서였다.

50일 일정의 인도 여행은 나의 첫 배낭여행이었는데, 여행 3일째 되는 날이었다.


1996년은 이 세상이 인터넷을 시작할 무렵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신문과 책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구직 정보를 신문의 광고란에서 찾아서 온갖 서류를 구비해 우편으로 보내야 하던 시절이었다.


여행도 마찬가지. 나온 지 오래된 변변찮은 얇은 가이드북 하나에 의존하는 여행.

숙박할 곳을 찾아서 큰 배낭을 짊어지고 여기저기 들어가서 방을 보고 흥정을 해가면서 여행하던 시절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나의 생존 여부를 부모님께 알릴 방법이 없는 시대였다. 배낭여행의 가장 중요한 물품은 지도와 나침반이었고,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아껴서 찍어야 했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던 그때의 배낭여행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태산같이 많지만, 그건 나중에 쓸 날이 올 것이다.


인도는 나와 남편에게는 꽤 각별한 곳이다. 나와 남편의 첫 여행지였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인도에 세 번 갔는데,

첫 번째는 1996년 12월에서 1997년 2월까지 50일

두 번째는 2003년 중국에서 시리아까지 넘어가는 대 장정의 여행 중 11월에 20일

세 번째는 2017년 초등 4학년이었던 아들을 데리고 9월부터 10월까지 31일간 여행했다.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 계단 우물을 처음 접했고, 아이를 데리고 간 세 번째 인도 여행에서는 일부러 계단 우물을 찾아다녔다.



DaDaHari Ni Van / Ahmedabad, India


처음에 본 계단 우물은 인도 아마다바드에 있는 것으로 이름은 다다하리 니 반 (DaDaHari Ni Van)이다.

디카가 없던 시절이라 필름 카메라를 가져갔는데, 여행 초반이었고 필름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사진이 몇 장 없다.


img_4572_zoo430.jpg 땅 속 깊이 이런 건축물을 파놓았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깊이와 웅장함이다.


위 사진은 계단 우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것인데 끝도 없이 깊어 보였다. 깜깜해서 바닥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공포스러웠다. 깊고 둥근 모양이 우물 비슷하기는 했지만 너무 큰 규모였고, 아래로 보이는 발코니들 때문에 더더욱 우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필름 카메라라서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고 다각도로 찍기 위해 필름을 낭비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다본모습이 이 한 장뿐이다.


나중에 끝까지 내려가 하늘을 올라다 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우물 밑에서 본 하늘은 깜깜한 밤에 떠있는 보름달 같았다.


img_4573_zoo430.jpg 계단을 내려가서 옆을 보면 거울로 비춘 것처럼 옆으로도 끝없는 기둥과 공간이 보인다. 이게 우물?


(한 필름 카메라는 미처 날짜를 고치지 못해서 몇 장은 27일 날짜로 찍혔지만 실제는 12월 28일 아침이다.)


이 계단 우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가이드북에는 별다른 얘기도 없이 간단한 이름과 위치만 적혀 있었다. 아침에 기차를 타기 전에 시간을 내어 잠깐 들러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갔을 뿐이다.

명칭은 엄연히 우물이었지만 이 다다하리 계단 우물이 정말로 '우물'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름이 그냥 계단 우물이겠거니 했다. 땅 속으로 들어간 건축물니까.

이 계단 우물은 우리가 아는 우물과는 개미와 호랑이만큼의 격차였기 때문에, 또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있지 않았으므로 진짜 우물과의 연관성을 눈곱만큼도 생각할 수 없었다.


img_4574_zoo430.jpg 외국인을 보고 이른 아침부터 몰려온 동네 아이들과 함께 찍었다.


아마다바드의 숙소에서 아침 7시 반에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서 잠시 들렀던 다다하리 계단 우물.

이렇게 멋지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대단한 것이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버려진 듯 놓여 있을 줄도.


img_4576_zoo430.jpg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과 기둥, 땅속으로 한없이 깊이 파내려 간 이런 건축물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걸 대체 왜 누가 만들어 놓은 거야?"


전체 규모를 가늠해볼 수도 없었다. 나와 남편은 내내 같은 말의 감탄만 내뱉었다.

1996년 그 당시에 우리가 계단 우물에 대해서 알았더라면 아마 만배쯤 더 감탄했으리라!!

20년이 지나 계단 우물에 대해 게 된 이후에, 이 엄청난 계단 우물 사진을 이렇게 밖에 찍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우린 몹시 안타까워했다. 정보를 얻을 곳이 아예 없었던 것이 무척 아쉽다.


지금은 구글에서 "DaDaHari Ni Van"으로 검색하면 고퀄의 사진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그 주변이 관광할 수 있도록 정비가 된 것 같다.

한국 검색엔진에서는 여전히 내 사진을 포함해 몇 장 나오지 않는다.


구글에 따르면 다다하리 계단 우물은 1485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깊이는 20미터로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중에 다른 계단 우물들을 본 후에는 이 다다하리 계단 우물은 굉장히 특별한 양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계단 우물은 정말 우물인가?


이 대단한 건축물은 우물이 맞다.

우리가 아는 우물, 물을 떠서 사용하라고 만들어놓는 그 우물 말이다.


왜 이토록 멋진 거대한 우물이 필요했느냐는 질문에는 항상 물이 필요해서 라고 답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인도는 비가 오면 무진장 오고, 비가 안 오면 무진장 안 오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때에도 물은 꼭 필요하고, 마을 사람들이 긴 건기를 버티기 위해서는 깊고 넓은 우물이 필요했다. 물의 수위가 줄어들 때마다 내려가서 물을 떠야 하므로 계단이 필요한 것이고, 이왕이면 멋지게 건축한 것이다.

13, 14세기에 건축된 계단식 우물은 왕실이나 귀족, 굉장히 부유한 상인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기 위해서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계단 우물은 주로 인도의 사막지역인 라자스탄 주에 분포되어 있다.

사막지역에서는 물이 더욱 귀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53788_0.jpg [사진출처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86960&cid=40942&categoryId=40033 ]


하지만 우리가 첫 번째 본 계단 우물은 라자스탄 주의 근처에 있는 구자라트 주의 아마다바드에 있는 것이었고, 두 번째 본 계단 우물도 델리에서 본 것이었다.



Agrasen ki Baoli / Delhi, India


우리가 델리에서 본 계단 우물의 이름은 Agrasen ki Baoli이다.

바올리 Baoli는 우물을 뜻하는데, Baori, bauri라고도 쓰고, 간혹 bawdi, bawri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IMG_1728_1.jpg 델리의 계단 우물 입구에는 Ugrasen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보통 Agrasen으로 쓴다.


IMG_1708.jpg 작은 문을 통과해 들어가서 눈앞에 맞닥뜨린 광경이다.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IMG_1706_1.jpg 무더위에 상당히 오래 걸어서 도착한 터라 우선 앉아서 땀을 식히며 구경했다.


IMG_1711.jpg 이끼가 있는 것을 보아 물에 잠기는 것이 분명하고, 내 머리 위의 한층 높이까지 물에 잠긴 흔적이 있다.


IMG_1712.jpg 지금은 비둘기들의 터전이었다.


IMG_1717.jpg 델리에만 14개의 바올리가 있다고 한다.


IMG_1718.jpg 안쪽 밑바닥에는 물이 조금 고여있긴 하였으나 쓰레기가 가득이고 아치형의 공간 안쪽에는 박쥐가 가득하여 박쥐 똥 냄새가 났다. 우기에는 청소를 해놓아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IMG_1723.jpg 대학 1학년 생들의 사진 찍기 요청에 함께 사진을 찍었다.


IMG_1724.jpg 그들도 맘먹고 온 것인지 사진 찍기에 몰두했다.


IMG_1726.jpg 길이는 60m, 너비는 15m, 계단은 103개라고 한다. (108개라는 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agrasen-ki-baoli.jpg 이곳에 물이 있는 사진을 구글에서 찾았다. 윗 사진들과 비교하면 물이 상당한 높이까지 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https://vargiskhan.com/log/dark-waters-agrasen-ki-baoli/ ]




지금부터는 라자스탄 주에 있는 계단 우물들이다.

분디에서는 4개의 계단 우물을 보았다. 그중 한 곳은 되게 작았는데,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 굉장히 슬픈 광경이었으므로 그곳 그 사진은 올리지 않겠다.



Nagar Sagar Kund / Bundi, India


인도 라자스탄 주의 분디에 있는 계단 우물 Nagar Sagar Kund.

분디에 도착한 날, 해 질 무렵 시장을 둘러보다가 난간이 있어서 들여다 보고 헉!!!!!!! 했다.


IMG_3264.jpg 분디의 시장 한복판에 낮은 울타리 안에 이런 광경이!!!!!!


IMG_3263_3.jpg 아래에 물이 조금 고여있긴 했으나, 딱 봐도 어마어마하게 더럽고 썩은 물이었다.


IMG_3270.jpg 그나저나 소똥도 저 난간에 있는 것을 보니 소도 여기 들어와 봤다는 것인데, 너무 위험하지 않나!!!


IMG_3272 (1).jpg 곳곳에 쓰레기가 투척되어 있지만 이런 모습의 계단 우물은 처음이라 굉장히 감탄하면서 봤다.


IMG_3294.jpg 이곳 가득 물이 찬다면 그 양이 어마어마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IMG_3644.jpg 하지만 왜 사람들이 여기에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는 것일까? 우기가 오기 전에 싹 청소는 하는 걸까? 아니면 이젠 사용하지 않는 걸까?



Dhabhai Kund / Bundi, India


분디에 있는 또 다른 계단 우물 Dhabhai Kund


IMG_3371.JPG Nagar Sagar Kund 보다 경사가 완만하고 계단이 넓어서 덜 무서웠다.


IMG_3371_0.JPG 인도인들이 무얼 구경하고 있어서 물어보니 계단 우물의 한쪽에 길고 큰 뱀이 있어서 구경 중이라고 했다. 나는 아들을 데리고 반대 편으로 가보고 있다.


IMG_3371_1.jpg 나와 아이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수 있다.


IMG_3371_3.jpg 이렇게까지 물이 완벽히 말라있는 계단 우물은 처음이다. 물이 없어도 땅이 축축하거나 아주 소량의 물이라도 고여있었는데, 이곳은 아주 버석버석 말라있었다.


아마도 몹시 더웠기 때문일 거다.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열린 공간의 계단 우물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 싶다. 우리가 갔던 2017년의 여름은 10월이었는데도 내내 40도였다. 하필 아이까지 데리고 온 인도의 가을은 쩔쩔 끓었다. 우리가 여행 내내 마신 물의 양이 어느 정도일까 가늠이 되지도 않을 정도로 더웠다.

이쯤 되면 더위는 한풀 꺾여야 하는데 이게 웬일이냐고 했더니 인도 사람들이 올해 여름에는 줄곧 50도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산이 다 까맣게 탈 지경이었다고 했다.


IMG_3376.JPG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물이 차있는 사진도 있었고, 가운데 땅에 수풀이 가득 자라 있는 사진도 있다.


IMG_3378.JPG 나와 아이는 저 모서리의 그늘에 앉아있다.


IMG_3381.JPG 물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이곳에서 목욕도 하고 아이들이 수영도 하는 장소였을 것이다.


IMG_3384.JPG 거대한 물 저장소


IMG_3386.JPG 이곳은 그나마 쓰레기가 거의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IMG_3389.JPG
IMG_3386_1.jpg 물이 가득 차오른 이 계단 우물에서 인도 아이들이 수영하며 깔깔거릴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그런 모습을 상할 수 있는 건, 그 모습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곳이 내가 본 최고의 계단 우물이다.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다음 편에서 마무리 지어야겠다.


계단우물을 아나요? - 2

[https://brunch.co.kr/@zoo43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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