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주아 Oct 28. 2021

가을과 문자

마음, 물결, 낱장 6

"여기는새들이참많습니다가을만큼많아요"


신용목 시 '가을과 슬픔과 새'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어졌다. 이 윗 구절을 읽어서.


"생각하다가, 하늘을 뒤덮은 박쥐떼를 보며 문자를 보낸다"


문자를 보낸다. 그 말이 좋아서.


누군가에게 어떤 문자를 보낸지가 언제지.


이 시의 문자는 내가 생각하는 그 문자가 아닐 수도 있다.


(메시지가 아니라 고대문자일 수도 있지.)


지난 주에는 전주독립영화관에서 패터슨을 보고 관객 앞에서 이야기했다.


끝에 시 3편도 함께 띄웠다.


그것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그런 생각이 부끄러웠다.


"그가 죽고 나는 망한 놀이공원이 되었다"


라 시작하는 시가 잘 풀리지 않는다.


놀이공원이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기억이 매달려 있어서


목마를 타지 않았는데 멜로디가 들려오고


목마를 탔다고 착각하며 이미지를 지어내고 있다.


범퍼카와 탬버린, 롤러코스터와 햄버거.


그 속에 언제나 그가 있었고, 


기다리거나 계산을 하고 있었고, 


통화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어떤 공간을 생각할 때 함께 있었던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은 이토록 자연스럽네.


너무 오래된 모형처럼.


문자로 바꾸고 싶은데, 액자로 박혀 있네.


나는 그의 죽음 뒤를 받치고,


팔목에 종이팔찌를 두르고,


기념품 가게로 들어가 인형 모자 앞에 서서


한번은 쓴다. 


"어때?"


빠져 나오면 학교 언덕이 보였고


누군가에게 문자를 하며 무표정으로 걷고 있었고


마침표를 연달아 찍고 있었고


그가 우산을 들고 있었고


그를 따라 계단으로 올라가면 퀴퀴한 냄새가 콧속에 퍼졌고


책상 위에 다락방 문을 열면 숨겨둔 소니 오디오가 있었고


나는 투명한 보라색 전화기를 들었다 내려놓고


커다란 양말을 뒤집어쓰고


"여기는방이참많습니다사람만큼많아요"











  

작가의 이전글 잠이 안 와 끄적이는 적바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