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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Sep 24. 2021

왜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못 하니
: 뒤로 합장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요가를 하다 보면 내 몸 어딘가가 고장 나 있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내 경우는 어깨가 그렇다. 꽤 오래전부터 오른팔을 돌릴 때마다 어깨 관절에서 '두둑'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아프거나 한 건 아니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어깨로 헬스장에서 바벨도 들어 올리고, 테니스를 칠 때면 팔을 높이 뻗어 서브도 넣고 했으니까. 난 그냥 운동 부족이라 그렇겠지, 운동을 자주 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여지없이, 모든 문제는 요가를 하다가 터진다.


  "양 손을 허리 뒤로 보내 반대쪽 팔꿈치를 잡아 볼게요. 여기서 더 가능하신 분들은 등 뒤에서 합장을 해 볼게요."

  어렵지 않은 자세 같아 보였다. 어디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나는 양손을 모아 뒤로 합장에 도전했다. 손끝을 마주 대고, 합장을 하기 위해 손바닥을 가볍게 모으는 그 순간. 어깨에 전기가 오르듯 '찌릿'하면서 담이 와 버렸다. 그것도 양쪽이 한 꺼번에. 어깨 죽지에 고통이 밀려왔다. 가끔 담이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양 쪽에, 그것도 이렇게 아프게 온 적이 있었던가. 당황한 나는 움직이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힘을 빼고 팔을 풀어 겨우 몸 옆에 내려놓기는 했지만, 이제 어째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남은 수련을 계속할 수 있을까. 선생님한테 말을 해야 하나? 이 정도 아픈 걸로 다른 사람들 수련까지 방해하면서 너무 유난을 떠는 건가?


  난 결국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아픈데 정신이 팔려 다음 동작 몇 가지를 놓쳤을 뿐, 고통이 줄어들 때까지 동작을 하는 척만 하면서 계속 수련을 이어갔다. 다행히 고통은 곧 사그라들었다. 어깨를 조금 움직여보니 평소처럼 움직여졌다. 휴, 살았다. 평생 안 해본 동작을 하다 보니 근육이 놀란 것 같았다. 하긴 샤워를 할 때 샤워타월 없이는 등에 비누칠도 못하는 내가 등 뒤에서 합장이 될 리가 없지. 어찌어찌 수련을 다 마치고, 등을 대고 누워서 휴식하는 '사바사나', 송장 자세의 시간. 아픈 어깨 탓에 내내 곤두서 있던 온몸의 긴장이 그제야 좀 풀렸다. 눈을 감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느닷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난 어릴 때부터 겁이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어딘가가 아픈 걸 견디지 못했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두고 '엄살이 심한 애'라고 칭했다. 초등학생 시절 치과에 갔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은 치료를 시작하면서, 많이 아프면 손을 들어 알려달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오늘은 아픈 치료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겠지. 당연하게도 시작하자마자 너무 아팠고,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내 손을 본 선생님은 '그래, 안 아프게 할게.'라고 대충 말하고선 계속 위잉 거리는 기계로 내 입 안을 헤집었다. 나는 또 손을 들었다. 아프니까. 이번엔 선생님이 대꾸도 안 했다. 나는 굴하지 않고 아플 때마다 계속 손을 들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서러운 손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다, 거의 눈물이 흐르기 직전에야 겨우 치료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치과에 함께 갔던 엄마가 핀잔하듯 말했다. '얘, 너는 무슨 엄살이 그렇게 심하니? 선생님이 너처럼 엄살 심한 애는 처음 본다더라.' 엄마의 얘기를 함께 들은 우리 형은 이때다 싶어 날 놀리기 시작했다. '야, 넌 남자가 왜 그렇게 엄살도 심하냐. 너 때문에 쪽 팔려서 치과 못 가겠다 야. 나는 저번에 치과 갔을 때 손 한 번도 안 들었거든?!' 두 살 터울의 형은 나보다 덩치도 크고 아픈 것도 잘 참는다. 그리고 세상 모든 형들이 그렇듯 재수가 없었다. 형의 놀림을 받는 내내 나는 억울했다. 아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며. 웃기는 사람들이야 진짜. 내가 다신 아프다고 말하나 봐라.


  물론 난 그 후로도 아픈 걸 견디지 못한다. 아무래도 아픔에 대한 예민함은 타고 나는 건가 보다. 대신 아파도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았다. 운동장에서 달리다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가 흘러도, 감기에 걸려서 열이 38도를 넘어도, '아, 괜찮다니까' 한 마디로 툴툴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대한민국에서 30년 넘게 남자로 살다 보면 깨닫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을 모두가 더 걱정하고 위로해 준다. 드라마를 봐도 꼭 주인공은 아픔을 참다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달려와 '왜 말 안 했어'라며 애정 어린 말을 던지곤 한다. 반대로, 아파서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은 '손이 많이 가는 사람' 정도의 취급을 당하고 만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점점 내 고통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입을 닫고 살아왔다. 남들도 다 이 정도 아픈 건 참고 있을 거야, 생각하면서.


  요가를 하면서 수없이 많은 '아픔'을 느낀다. 정말이지,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 이번처럼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엄살이 심한 남자가 우리 요가원에 있어, 이런 소리를 듣게 될까 봐. 하지만 그 아픔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그 아픔을 계속 무시하다 보면 나중엔 정말로 아프게 될 것 같으니까. 내 몸이 내지르는 비명에 적어도 나 만큼은 귀 기울여 주자. 아픔의 목소리가 들릴 때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세심하게 살펴봐 주자.


  당분간 뒤로 합장은 포기하기로 했다. 어깨가 더 부드러워질 때까지는 팔꿈치를 잡는 것까지만 도전하기로. 다행히 그날 이후 어깨에 담이 오는 일은 없었다. 얼마 전엔 또 치과에 갔다. 다 큰 어른에게도 선생님은 똑같이 말한다. 많이 아프시면 손을 드세요. 웃기는 사람들이야 진짜. 위잉 소리를 내며 기계가 내 입으로 들어가고, 또 아픔이 밀려온다. 이번에도 손은 들지 않았다. 대신 아픔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아, 정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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