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같은 팀 후배가 갑작스레 반차 휴가를 쓰겠다고 연락이 왔다. 몸이 안 좋아서 병원을 들렀다 출근하겠다고. 점심이 지나서야 출근한 후배가 걱정스러워서 어디가 아픈지를 물었더니, 그 대답은.
"저 아침에 갑자기 너무 어지러워서, 뭔가 이상해서 병원에 갔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보더니, '이석증'이래요."
이석증?! 귓속에 있는 작은 돌멩이가 원래 자리에서 이탈해서 어지럼증이 생기는 증상이라고 한다.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그런 병에 실제로 걸리는 사람이 있다니. 대체 그런 병은 어쩌다 걸리게 된 건지 물어봤더니, 그 대답이란.
"아... 사실 어제 친구들이랑 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머리 서기를 하다가 넘어졌거든요. 그때 그렇게 된 거 같아요."
머리 서기? 내가 아는 그 요가의 머리 서기?? 그러고 보니 후배는 얼마 전까지 요가원을 다녔더랬다. 그때 배운 머리 서기를 친구들한테 자랑하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여기까지 함께 이야기를 듣고 난 옆자리 다른 후배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그 반응이란.
"대박!!! 제 남편도 그렇게 술만 마시면 머리 서기를 해요! 아니 대체 요가하는 남자들은 다 왜 그런 거야?!"
맞다, 후배의 남편도 최근 요가를 시작했다고 했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나도 술을 마시면 아내 앞에서 머리 서기를 하곤 했으니까...! 요가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아내와 술을 마시다, 요즘 아내가 한창 머리 서기를 연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 서기? 그게 대체 뭔데? 아내가 내민 유튜브 영상을 보니 별로 어렵지 않아 보였다. 왠지 이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 해볼래! 나는 신이 나서 아내의 요가 매트를 거실에 깔고 머리 서기에 도전했다. 정수리를 매트 위에 고정하고, 팔 힘으로 버티며 다리를 하늘로 힘껏 올렸더니, 머리 서기가 돼 버렸다...! 아내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된다고?!' 나는 놀라워하는 아내의 반응에 더 신이 나서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나 요가 유망주인가 봐!!' 이제야 고백한다. 내가 요가를 시작한 것은 아내의 권유도 있었지만... 더 큰 계기는 머리 서기가 된다는 그 신나는 기분 때문이었답니다.
사실 '시르사아사나', 머리 서기는 꽤 어려운 동작이다. 특히 팔 힘이 부족하거나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들한테는 더 그렇다. 그래서 아내도 8년이나 요가를 했음에도 여전히 머리 서기를 자신 있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힘과 균형감각이 있는 사람은 요가를 배우지 않았어도 어설프게나마 머리 서기를 해낼 수 있다. 이게 남자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나 보다. 어쩌면 요가원에서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가원에 다닌 적이 있는 내가 아는 모든 남자들은 머리 서기 자세를 가장 좋아했다. 실은 나도 그렇다. 수련이 마지막을 향해 갈 때쯤이면 가슴이 뛴다. 오늘은 선생님이 머리 서기를 시키려나. 곧 모두가 매트 위에 앉고, 선생님이 입을 뗀다. '이제 머리 서기, '시르사아사나'를 연습해볼게요.' 그 말에 눈치 없이 입꼬리가 실룩댄다. 오늘 내가 다른 자세는 다 엉망이었지만, 머리 서기만큼은 당당하게 보여줘야지!
하지만 단순히 머리를 대고 서는 것이 결코 끝이 아니었다. 머리로 선 채 몸이 완벽한 일자가 되도록 반듯하게 펴는 것도 아직은 쉽지 않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여기서 유지하는 것. 처음에는 다섯 호흡, 그다음에는 열 호흡, 점차 유지하는 시간을 늘려간다. 그러려면 팔 힘 만으로는 안 된다. 몸 전체로 균형을 잡는 수련이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내려오는 과정도 중요하다.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90도만 내려 몸을 ㄱ자로 만드는 '우르드바 단다아사나' 자세를 거쳐 사뿐히 바닥에 발을 내려놓는다. 그러려면 선채로 모든 힘을 소진하기보다는 내려올 때 필요한 힘을 남겨놔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이 머리 서기 수련의 연장선이다. 나는 이제 겨우 머리를 대고 설 수 있는 수준. 나에겐 여전히 더 멀고 먼 수련의 날들이 남아 있다.
요가에 대한 글을 쓰는 어느 블로그에선가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포스팅이 머리 서기와 '핸드 스탠드', 그러니까 물구나무서기 하는 요령에 대한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요가를 즐겨한다는 연예인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항상 머리 서기나 물구나무서기를 보여줬던 것 같다. 이효리 씨도, 아이유 씨도, 요가하는 사진을 찾아보면 다 머리 서기를 하는 사진들이다. SNS에서 가끔 '추천 인기 영상'으로 요가 영상이 뜰 때가 있는데, 그 역시 머리 서기와 물구나무서기에서 이어지는 고난도 동작들이 대부분이다.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아마 사람들은 여전히 요가를 '묘기를 연습하는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나 역시도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랬던 것 같다. 마치 게임에서 한 단계씩 레벨업을 하는 것처럼, 이번엔 머리 서기, 다음에는 물구나무서기, 이런 식으로 하나씩 마스터해나가는 것이 수련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요가를 조금만 수련해봐도 알게 된다. 요가에는 중간보스도, 끝판왕도 없었다. 무술처럼 파란 띠, 빨간 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 서기도, 물구나무서기도 하나의 자세에 불과할 뿐, 결코 요가 수련의 목표가 아니다. 그 어떤 선생님도 수련을 시작하면서, '오늘은 머리 서기를 마스터해볼 거예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머리를 맑게 정화시키기 위한 수련을 해볼 거예요.' '오늘은 나를 단단하게 지지하는 코어에 힘을 불어넣는 자세들을 해볼 거예요.' 머리 서기를 할 수 있든 없든, 그렇게 수련은 매일 계속된다. 나의 요가는 머리 서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위한 것이니까.
그러므로 이 자리를 빌려 요가를 시작한 사람들, 특히 남자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다. 주변에서 곧 이렇게 물어올 게 분명하다.
"너 요즘 요가한다고 했지? 그래서 뭐 배웠는데? 막 연예인들이 하는 그런 거 할 수 있는 거야?"
이런 류의 도발에 욱해서 '그거 머리 서기? 야, 당연히 할 수 있지.'라고 답하지 않기를. '지금 보여줄까? 머리 서기?!'라고 외치지 않기를. 특히 술을 마시고 나서는 절대, 절대 머리 서기를 시도하지 않기를. 부디, '이석증'을 조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