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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Oct 11. 2021

귀와 어깨 멀어집니다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오빠는 어떤 자세가 제일 좋아?"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물었다. 글쎄, 내가 좋아하는 자세? 아내는 '트리코나사나', 삼각 자세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다리와 옆구리를 길게 늘이는 자세인데, 몸이 뻐근할 때 이 자세를 하면 너무 시원해져서 집에서도 종종 이 자세로 몸을 풀곤 한다고. 나에게도 그런 자세가 있었나? 수련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아무래도... '사바아사나', 송장 자세? 수련이 가장 마지막, 매트 위에 온 힘을 빼고 편안히 누워 휴식하는 바로 그 자세 말이다. 그건 그냥 힘든 수련이 끝나고 쉬는 거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요가를 시작한 후 내가 혼자서도 자주 해보는 자세라면? 아, 있다, 있어. 찾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


  "귀와 어깨 멀어집니다."

요가 선생님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에는 재미난 말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난 이 표현을 제일 좋아한다. 동작을 하다 보면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한다. 귀와 어깨가 멀어지도록, 힘을 빼고 어깨를 낮추라고. 아무렇게나 말한다면, '어깨 으쓱하지 마세요'라거나, '어깨 내리세요'라고 말해도 될 텐데, 선생님들은 굳이 '귀와 어깨가 멀어진다'라고 말한다. 수련을 하다 보면 동작을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어지곤 하는데, 이런 표현 방식은 꽤 직관적이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곧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하지 마세요'라는 부정적인 표현에 비하면 훨씬 긍정적이지 않은가. 이런 표현은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동안 내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요가 선생님들 특유의 표현들을 읊어보자면.


  "배와 등 가까워집니다."

  귀와 어깨가 멀어지는 것처럼, 이번엔 배와 등이 가까워진다. 서로 반대편에 있는 배와 등이 어떻게 하면 가까워질 수 있을까? 바로 배에 힘을 주면 된다. 요가를 하면서 배에 힘을 주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 표현은 단순히 복근에 힘을 주어 배를 단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배가 쏙 들어가도록 당기는 힘을 주라는 의미이다. 이런 식의 표현으로는 척추를 곧추 세운 채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자세를 할 때, '이마와 정강이 가까워집니다'가 있다. '멀어진다'와 '가까워진다'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한 만능 표현.


  "등 주름으로 얇은 종이 한 장을 집는다고 생각하세요"

  등으로 뭘 집는다는 상상력도 놀라운데, 그것도 얇은 종이 한 장이라니! 양 팔을 크게 벌려 등 뒤를 꽉 쪼이는 자세를 할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내 등 뒤를 들여다본 적은 없지만, 주름 사이에 종이를 껴 넣는다고 생각하면 꽉 쪼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마치 '스타킹'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몸의 주름으로 뭐든 집어 드는 묘기를 선보이는 기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선생님들의 표현 속에는 '주름'도 참 많이 등장한다. '손바닥 주름이 다 없어질 정도로 손에 힘을 주세요'라든가, '오금의 주름이 사라지도록 다리를 쭉 뻗으세요' 같은 표현들. 보톡스를 맞으러 간 것도 아닌데, 내 몸의 주름들이 이토록 주목받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발로 단단히 땅을 딛고 밑으로, 밑으로 1층까지 뿌리내리세요."

  참고로 우리 요가원은 4층이다. 바닥을 힘 있게 디디다 못해 바닥을 뚫고 1층까지 내려가라는 의지의 표현이랄까. 내가 어지간히도 못했던 '한 발로 서기'를 할 수 있게 된 일등공신 표현이다. 이 말을 들을 때면, 정말로 내 발에서 뿌리가 돋아나 1층까지 뚫고 내려가 건물 아래 흙속에 깊이 박히는 상상을 한다. 그럼 신기하게도 뭔가 내 몸이 더 단단히 설 수 있게 되는 느낌이 들곤 한다. 생각해보니 한 발로 서서 합장을 하는 자세의 이름도 '나무 자세' 아닌가. 요가 자세는 동물의 이름에서 딴 것이 많은데, 그 동물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세를 하면 더 잘 되는 것 같은 신묘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대자연의 섭리인 것인가.


  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 똑같은 설명도, 똑같은 메시지도 어떤 말로 표현하고 전달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평소에 말 한마디를 해도, 메일 한 통을 써도 단어를 조심스럽게 고르고 말투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려 애쓴다. 반면, 누군가는 그렇게 고심해서 말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라 말하기도 한다. 말은 어떻게든 의미만 전달되면 그만이라고. 난 그런 사람은 가급적 상대하고 싶지 않다. 성의 없는 말, 부정적인 말, 배려 없는 말들은 듣는 사람을 괴롭고,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난 요가 선생님들의 말들이 좋다. 아무렇게나 보이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과 연습을 통해 고르고 고른 단어와 문장으로 내 몸을 일깨우는 그 말들이 좋다. 그런 말들은 내뱉고 곧바로 흩어져 사라지는 게 아니라 머리와 몸속에 남아 내내 기억된다. 그리고 수시로 그 말들을 떠올리며 몸을 움직이게 된다. 어쩌면 요가원에서 배워가는 것은 스스로 몸을 바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말들일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는 바로 '귀와 어깨가 멀어지는' 자세. 이건 어떤 이름이 붙은 '아사나', 즉 요가의 자세는 아니다. 하지만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떠올리고, 스스로 해보는 자세라면 난 역시 이걸 꼽을 수밖에 없다. 나는 조금만 집중을 하거나 긴장을 해도 어깨가 움츠러들곤 한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두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가 버린다. 내 어깨 관절이 좋지 않은 건 이 나쁜 습관의 탓이 가장 크다. '귀와 어깨가 멀어진다'는 말을 배운 후로는 '귀와 어깨가 가까워진' 상태를 전보다 빨리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난 '요가의 말들'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벌써 몇 번이고 움츠러든 어깨를 발견했다. 하루 종일 잔뜩 긴장한 채 앉아있는 회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여지없이 우뚝 솟은 어깨를 발견할 때면, 마치 '이제 서서히 잠에 듭니다'라는 최면을 거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귀와 어깨는 이제 서서히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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