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이 Sep 07. 2021

남자들은 요가할 때 무엇을 입나요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근데 남자들은 요가할 때 뭐 입지...?"

  "편한 거 아무거나 입어도 돼."

  아내는 무심하게 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에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요가를 시작할 때 처음 했던 고민 중 하나는 '무엇을 입어야 하나'였다. 여자의 경우 답이 뻔하다. 상의는 티셔츠나 탱크톱, 하의는 레깅스. '요가'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복장 말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어떨까? 어떤 복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남자가 요가하는 장면을 내가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여자들이 처음 축구나 농구를 하러 간다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티셔츠를 입어야 할지, 어떤 양말을 신어야 할지 백지상태일 테니까. 요가원에 가려는 나도 그랬다. 궁금해진 나는 유튜브를 켰다. 검색 창에 '남자 요가'라고 쓰고 검색 버튼을 누르니 상단에 몇몇 유튜버의 계정이 떠올랐다. 그래, 이 사람들처럼 입으면 되겠구나. 영상 속 그들은 대부분 헐렁한 민소매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 차림. 몇몇 유튜버들이 고난도의 자세를 뽐내는 영상에서는 아예 상의를 벗고 수련을 하기도 했다. 아내의 말대로 정말 아무거나 입고하는구나. 단, 그들처럼 멋진 몸이 있다면. 문득, 헬스장에서 3대 운동 몇 백 킬로 정도는 들 수 있어야 '언더아머' 운동복을 입을 수 있다는 농담이 생각났다. 요가원에서 민소매 티셔츠란 그런 존재인 건가.


  나의 비루한 몸과 요가 실력으로 감히 민소매에 도전할 수는 없지. 하는 수 없이 나는 러닝을 할 때 입던 운동복 차림으로 요가원에 갔다. 그리고 러닝복과 요가복이 왜 달라야 하는지 곧 깨닫게 되었다. 그날 입은 티셔츠는 좀 헐렁하고 길이는 또 짧은 편이었는데, 다운독과 같은 엎드린 자세를 할 때마다 티셔츠가 뒤집혀 거꾸로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손으로 티셔츠를 잡아 내려 정리라도 할라치면, 또다시 다운독, 또 티셔츠는 뒤집혀 흘러내리고. 끝내는 티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어 배바지라도 감수해보려 했지만, 잠시 뒤면 길이가 짧은 티셔츠가 또 금세 삐져나와 흘러내리고. 나는 반강제로 상의 노출쇼를 온 사방에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탄탄한 복근을 가지고 있었다면 개의치 않았겠지만, 슬프게도 나의 뱃살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단 말이다. 이래서 헬스장 가서 몸부터 만들고 요가원 가겠다고 했잖아! 수련의 마지막 즈음, 땅에 누워 다리를 머리 위로 넘기는 '쟁기자세'에서 허리와 등을 시원하게 까면서 나의 노출은 절정에 달했다. 내 등에 등드름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이 자리를 빌려 그날 요가원의 수많은 눈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싶군요.


  그날 수련을 마치고 난 요가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요가를 할 땐 요가복을 입어야 하는구나! 서둘러 포털 사이트 쇼핑 탭에서 요가복을 검색해보니, 다행히 나이키에서도 남자 요가 라인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디자인도, 컬러도 수십 종은 족히 될 것 같은 여자 요가복과는 비교할 게 못 되지만, 단 몇 벌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의 고민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요가 라인의 티셔츠는 길이가 꽤 길었다. 게다가 엉덩이를 덮는 부분의 안쪽에는 티셔츠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무 패치도 붙어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주문하기 버튼을 눌렀다. 이제야 맘 편히 다운독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나의 배와 등을 안전 가릴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가 산 티셔츠 옆에는 같은 요가 라인의 민소매 티셔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근육질의 탄탄한 팔뚝을 자랑하는 모델이 입고 있는 민소매 티셔츠. 나도 언젠가 저런 걸 입고 요가할 수 있을까. 정말 요가원 대신 헬스장을 먼저 가야 하나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하긴, 수영을 배우고 싶었을 때도 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번 헬스장을 먼저 다니는 바람에, 나의 수영 실력은 여전히 자유형에 머물러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인터넷 창을 닫았다.


  그날 저녁, 아내와 저녁을 먹던 중에 나의 고민을 털어놨다.

  "요가만 꾸준히 하면 살이 빠질까? 막 복근도 생기고?"

  아내는 무려 8년 동안 요가를 꾸준히 수련해오고 있다. 나는 희망적인 대답을 기대했지만 아내는 뼈 때리는 팩트로 내 기대를 후려 팼다.

  "아니, 요가만 해서는 안되더라고. 식단 관리를 같이 해야 빠지지."


  나는 좀 실망스러웠다. 물론 모든 운동의 목적이 멋진 몸을 가꾸는 데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 운동인데.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다면 요가 하나만 해서 될까? 다가오는 여름을 위해 요가를 멈추고, 헬스장에 다니면서 식단 관리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아, 지겹겠지만, 또 나의 요가 도전기는 여기까지인가.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아내가 덧붙였다.

  "대신, 내 몸을 더 좋아하게 돼."


  내 몸을 더 좋아하는 것. 내 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식스팩이나 이두, 삼두 따위가 아니라 그런 것일지 모른다. 그동안 헬스장에 나가다 말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비싼 돈을 내고 개인 PT를 받으면서도 내 몸에 변화가 없었던 이유. 바로 내 몸에 대한 애정 없이 남의 손에 맡기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했으니까. 수련을 할 때마다 선생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자세를 하든 간에, 그 자세를 통해 내 몸 어디에 어떤 자극이 가는지, 내 몸이 곳곳의 근육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보라고. 자세가 끝나고 나서도 내 몸에 어떤 감각이 남아있는지 세심하게 느껴보라고. 몸을 움직이며 내 몸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나도 내 몸을 좋아하게 될까. 겉으로 보이는 몇몇 근육의 크기만이 아닌, 몸의 구석구석 작은 부분까지 살피고 살피다 보면, '남에게 멋진 몸'이 아니라 '나에게 사랑스러운 몸'을 갖게 될까.


  그러고 보니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나의 몸과 남의 몸, 나의 자세와 남의 자세를 비교하지 말라는 이유라고 한다. 몸을 위한 공간이지만, 몸을 비교하지는 않는 공간. 그 공간에서 난 오직 내 몸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아직 민소매 티셔츠를 사지는 못했다. 땀이 난다고 과감하게 상의를 벗어재끼지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수련하는 공간에서는 내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차피 그곳에서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를 상상하는 대신, 내 감각의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자. 그러고 나니 내 몸이 드러나는 것도,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조금은 개의치 않게 되었다. 아내의 말이 정답이었다. 요가원에서는 '아무거나' 입어도 된답니다.


요가할 때 입을 옷을 고민하는 남자들을 위한 TIP!


  첫 번째, 땀 배출이 원활한 옷을 입으세요. 

  요가는 생각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입니다. 기능성 소재의 운동복이 아닌 일반 면 티셔츠나 바지를 입고 갔다가는, 땀에 절은 자신을 보게 될 거예요. 특히, 회색 티셔츠는 주의하세요. 곧 '겨터파크'가 개장할 수 있거든요. 저도 땀이 많은 편이라 여름에는 주로 반팔 티셔츠+반바지, 겨울이라 해도 반팔 티셔츠+긴바지 조합으로 입고 요가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신축성이 생명입니다. 

  그 어떤 운동보다 다양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이 요가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의도 하의도 잘 늘어나는 재질이 아니면 불편할 수 있어요. 내 몸이 마음대로 안 늘어나면, 옷이라도 마음껏 늘어나야죠. 특히 겨울용 운동복의 경우, 방풍을 위해 두꺼운 비닐류의 소재를 쓰기도 하는데, 이런 옷은 신축성이 떨어지므로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 티셔츠는 아래 길이가 긴 것이, 반바지는 속바지 일체형이 (마음이) 편안합니다. 

  엎드리는 동작, 팔다리를 높이 드는 동작이 많다 보니, 티셔츠가 거꾸로 흘러내리거나 딸려 올라가는 일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짧은 반바지를 입을 경우에도 다소 민망한 상황을 겪을 수 있습니다. 나의 몸이 드러나는데 개의치 않겠다고 다짐해보지만, 타인의 눈 건강까지 고려한다면 안전한 선택을 추천드립니다.


  국내에서 남성 요가 라인을 판매하는 스포츠 브랜드는 나이키와 룰루레몬이 거의 유일합니다. 가격은 나이키가 조금 더 저렴한 편이지만 종류가 많지는 않습니다. 룰루레몬은 (운동복의 샤넬 아니랄까 봐) 가격이 비싼 대신 기능성 면에서는 더 훌륭합니다. 요가복은 아니지만 몇몇 글로벌 SPA 브랜드의 트레이닝 라인을 잘 살펴보면, 요가하기에 좋은 옷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 05화 비로소 서는 법을 배우다 : 나무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