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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Aug 31. 2021

그 자리는 제자리예요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얼른 가자! 이러다 늦겠다!!"

  "응 벌써? 지금 출발하면 너무 일찍 도착할 텐데?"

  요가원에 가는 날이면 나는 늘 아내를 재촉한다. 이러다 늦으면 어쩌려고, 빨리 출발해야지! 아내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5분 전에만 가서 앉아있으면 되는데 뭐하러 그렇게 일찍 가냐고. 내가 원래부터 약속 시간을 지키는 데 철저한 사람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정해진 시간보다 5분 정도는 늦는 게 한국인의 미덕이자 배려 아닌가. 그리고 난 예상외로 내향적인 인간이라, 일찍 가서 괜히 어색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마지막에 짠 하고 등장하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요가원에 갈 때만은 늦어서는 안 된단 말이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란 것은, 요가원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한테 요가를 시작했다고 말했더니, 후배 중 한 명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저도 전에 회사 요가 동아리 한 적 있어요."

  "아 진짜? 혹시 거기에도 남자들이 있었어?"

  "네, 처음엔 없었는데 나중에 생겼어요."

  "오, 진짜 남자들도 많이 하는구나. 근데 지금은 동아리 왜 안 해?"

  "아니 변태 같은 남자 부장님이 하나 있는데, 맨날 맨 뒤에 앉는 거예요. 그래서 다들 안 나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동아리 없어졌어요."


  나는 멘붕에 빠졌다. 왜냐하면, 나도 그동안 요가원에서 맨 뒤에 앉았으니까. 단순한 생각이었다. 초보니까, 제일 못하니까, 맨 뒤에서 사람들 따라 해야지, 사람들에게 내 엉성한 몸동작을 보여주지 말아야지. 그런데 뭐, 맨 뒤에 앉는 남자는 변태라고? 물론 그 부장님은 평소에도 변태 같은 행동을 했으니까 그런 오해를 산 걸 거다. 그럼에도 안심할 순 없었다. 이러다 나도 괜한 오해를 사면 어쩌지? 우리 요가원도 나 때문에 회원이 하나 둘 줄기 시작하다 끝내 망해버리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미 몇몇 회원님들이 선생님들께 불만을 토로한 건 아닐까? 이번에 새로 온 남자 회원은 왜 자꾸 뒤에 앉아요? 내심 불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한 번 더 물었다. 남자들이 뒤에 앉으면 혹시 좀 그런가? 아내는 같은 답을 해주었다. '음, 아무래도 여자들은 레깅스를 많이 입기도 하고 엉덩이가 부각되는 자세도 많으니까, 뒤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지?'


  나는 다짐했다. 이제부터 맨 앞에 앉을 것이다. 그렇다고 초보 주제에 선생님의 바로 앞자리를 독차지하긴 좀 그렇다. 덩치도 가장 큰데 선생님을 가려 버리면 안 되니까. 그러니 맨 앞의 가장 왼쪽 혹은 오른쪽, 최대한 가장자리에 앉아야겠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은... 유연성도, 코어 힘도 아닌, 바로 속도다! 난 누구보다 빨리 요가원에 가야만 한다! 그때부터 나는 아무리 늦어도 수련이 시작되기 10분 전에는 요가원에 도착했다. 수련 종류에 따라 자리 배치가 그날그날 다르기도 한데, 가장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남들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한 자리를 미리 골라 차지해야만 했다. 딱 맞는 자리를 골라 앉고 나면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진다. 휴, 나 때문에 요가원이 망하진 않겠구나.


  한 번은 꽤 일찍 요가원에 도착했는데, 나보다 먼저 도착해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혼자 온 남자 회원님이었다! (요즘은 혼자 오는 남자들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내심 반갑기도 했지만, 또다시 멘붕에 빠졌다. 내가 앉으려던 자리를 먼저 온 그가 차지했기 때문에. 그 자리는 제 자리란 말이에요! 아마 그도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일찍 오고, 똑같은 기준으로 그 자리를 고르지 않았을까. 나는 매트를 들고 선 채로 수련 공간을 훑으며 빠르게 고민을 시작했다. 아예 저분 옆에 앉을까? 음, 남자끼리 너무 모여 앉으면 오히려 더 눈에 띄려나? 그렇다고 일부러 멀리 앉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까? 그럼 다시 뒷자리로? 혼란 속에서 헤매던 사이 아내는 그러거나 말거나 한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어쩔 수 없이 고민을 멈추고 나도 아내 옆에 따라 앉았다.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아, 나 때문에 요가원이 망하면 어쩌지.


  다행히 아직까지 우리 요가원은 망하지 않았다. 망하기는커녕 요즘은 회원들이 더 늘어난 것 같다. 하긴, 레깅스를 입고서 카페도 가고, 회사도 가는 시대인데. 요가원에서 무엇을 신경 쓰겠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난 여전히 1등으로 요가원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는다. 마음이 편안한 것도 있지만, 요가를 안 했던 며칠 동안 다시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을 풀 시간이 있는 것도 좋다. 좋아하는 자리도 생겼다. 수련 공간의 가장자리 창가 바로 앞. 수련을 하다가 매트에 누우면 하늘과 구름이 떠다니는 것이 보이는 게 좋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열린 창을 넘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달궈진 얼굴의 땀을 가벼이 식혀주는 것도 좋다. 난 앞으로도 혼자 만의 치열한 자리싸움을 계속할 생각이다.


  생각해보니 어느새 나는 이 공간에서 꽤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전히 수련 때마다 몸은 힘들지만, 이 공간에 나 혼자 남자라는 게 여전히 어색하고 신경 쓰이지만, 그럼에도 순간순간 참 평화롭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서울 한 복판, 결코 넓다고 할 수 없는 이 조그만 사각형의 방 안,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나긋한 목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 보면 마치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나는 일상으로부터 유리된다. 전쟁터 같은 일상 속에서 잠시 동안 몸을 숨기고, 한 조각이나마 평화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작은 피난처. 나는 점차 이 공간이 좋아지고 있다. 오늘도 그 평화를 맛보러 요가원에 간다. 그리고 부디, 어쩌다 내 앞에 앉은 다른 회원님들의 마음에도 내게 강 같은 그 평화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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