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드디어 나의 첫 요가 수업이 시작되었다. 지난번 등록 이후로 처음 온 요가원도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내 옆엔 든든한 아내도 있으니까. 시작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들어와 자리에 앉을 무렵, 나는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오늘은 몇 명의 남자 회원이 있으려나? 응? 한 명도 없잖아?! 사실 오늘 아침부터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지만 애써 지워냈던 상상 속 그 장면, 수많은 여성 회원들 틈에서 나 홀로 뻣뻣한 팔다리를 꼬으려 애쓰는 광경이 이제 펼쳐질 판이었다. 선생님, 남자 많다고 했잖아요! 다 어디 간 건가요?! 물음을 꾹 참고 선생님의 말에 집중해 가까스로 하나씩 자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밝히는 나의 요가 실력은? 그간 헬스장에서 단련된 기초 체력과 조기축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하면서 나도 모르게 발달된 내적 유연성을 발견하며, 단 하루 만에 우리 요가원의 유망주로 떠올랐으면 참 좋았겠지만.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이었다. 다 문제지만 그중 가장 큰 문제라면 나에겐 유연성이 부족했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물론, 내가 첫날인 것을 아는 선생님은 나에게 초보자의 옵션을 알려주었지만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찌어찌 비슷하게 동작을 흉내 내며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났다.
앞으로는 어쩌지, 이걸 계속하는 게 맞나. 장장 한 시간 동안 끊임없이 낙오자 신세를 면치 못했던 부끄러움을 매트와 함께 돌돌 말아 깊숙이 밀어 넣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이 다가와 물었다.
"어땠어요 오늘? 처음인 것 치고 잘하시던데요?"
늘 이런 식이지. 초심자를 대하는 뻔한 멘트. 여기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 딱 한 달만하고 더 이상 나오지 않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밑밥을 깔아놔야 한다. 예를 들면, 알고 보니 내 몸은 비정상적으로 요가와 잘 맞지 않다던가. 나는 우는 소리를 더해 답했다.
"아니에요, 너무 힘들었어요. 이렇게 힘든 게 정상인가요? 저는 아무래도..."
"그럼요, 처음엔 다 힘들어하세요. 다음 시간에도 오실 거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다음에 올 건지를 물으신다면, 제가 아니라고 답하기가... 결국 허허허,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남기고 요가원을 떠났지만, 내 마음속에선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 다음 주엔 남자 회원들이 있을까?! 나와 함께 이 수업의 열등생을 맡아 줄 사람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란 걸 증명해줄 사람들이 나타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수업도, 그다음 수업도 남자는 나뿐이었다. 그 말인즉슨, 늘 이 수업의 꼴찌는 나라는 것. 내 마음속 아우성은 멈추지 않았다. 나도 중간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 아니,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이 방에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던 어느 날, 요가원에 들어서며 신발을 벗으려는데 신발장에 사이즈가 좀 커 보이는 운동화가 있었다. 아니, 혹시...? 이 정도 사이즈라면...! 아마 요가원에 들어서며 신발 사이즈를 확인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나뿐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내 예상과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수련 공간에는 남자 회원 한 명이 매트 위에 앉아 몸을 풀고 있었다! 나처럼 아내와 함께 온 듯했다. 드디어 왔구나, 왔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는 무례를 범할까 싶어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요가원에 정말 남자가 있긴 하구나. 나는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분은 혹시... 고수이려나? 여자들보다도 요가를 잘하면 어쩌지? 내가 더 초라해지는 건 아닐까?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동작을 하면서도 멀찍이 떨어진 그 남자가 계속 신경 쓰였다. 티 내지 않으려 애쓰며 힐끔힐끔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치 슬램덩크에서 천재 서태웅을 의식하는 자칭 천재 강백호처럼. 생각보다 잘하고 계시네, 그래 아직까지는 쉬우니까. 이 자세는 어려운 자세인데,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설마 이게 되지는 않겠지? 다행히 그는 서태웅 같은 천재는 아니었다. 나처럼 요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훗, 내가 조금은 나은 것 같군. 아닌가, 지금 자세를 보면 저 사람이 더 나은가? 동작을 따라 하랴, 그 남자를 신경 쓰랴 정신없이 한 시간이 다 가버렸다.
나는 결국 나와 그중 누가 더 천재인지, 아니, 그나마 덜 열등한 회원인지 판정을 내리지 못했다. 수련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래도 아까 그 남자보다는 내가 좀 더 잘하는 거 같지...?"
아내의 대답은 놀라웠다.
"응? 남자? 누구? 오늘 남자도 있었어??"
충격적이었다. 아내는 멀찌감치 앉은 그 남자를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 요가원에 누가 있는지, 그중 누가 나보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그토록 신경 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순간 그런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요가는 경쟁이 아니다. 요가를 이제 막 시작한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이기고 지는 것도 없고, 1등도 꼴찌도 없다. 오직 자신만의 호흡으로 자신만의 수련을 한다. 못 하던 자세를 완벽하게 할 때까지, 그 자세로 더 오랜 시간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페이스대로 꾸준히 수련을 할 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운동들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재밌는 운동, 남보다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해야만 끝이 나는 운동. 상대에게 진다는 건 죽기보다 싫었고, 남들보다 못하는 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었다. 30년 넘게 살면서 나에게 운동이란 그런 것이었기에, 나는 요가원의 모두를 넘어서야 하는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가는 그런 게 아니다. 알지, 알면서도, 아직은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고, 나의 수준을 지레짐작한다. 난 여전히 우리 요가원의 꼴찌가 틀림없는데도. 아마 더 많은 수련을 하다 보면 나도 오로지 나의 호흡에 집중할 수 있게 되겠지. 사실 다른 사람들은 내 요가 실력에 관심도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겠지. 혹시 그때쯤이면 나도 꼴찌가 아니게 되려나.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요가를 조금 더 해보자. 선생님, 다음 주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