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뒤로 보내 다운독, 견상 자세로 넘어갑니다."
다운독, 견상, 아도무카스바나사나. 요가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이 자세를 안 해봤을 리 없다. 마치 강아지가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엎드린 채로 엉덩이를 치켜올려 몸을 ㅅ자로 만드는 자세. 흔히 알고 있는 '엎드려뻗쳐' 자세를 떠올리면 된다. 나도 남중, 남고, 군대를 거쳐오며 이런 자세는 수없이 해봤다. 훈련소에선 1시간 가까이 엎드려뻗쳐를 한 채 기합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숙달된 조교의 마음으로 엎드려뻗쳐를 선보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조건을 덧붙였다.
"가능한 분들은 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무릎을 곧게 펴 보세요."
응? 뒤꿈치를? 나는 힘껏 발목을 안쪽으로 조여봤지만 내 뒤꿈치는 하이힐을 신은 것 마냥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그다음엔 무릎을? 굽어 있던 무릎을 펴려고 하자 허벅지와 종아리 뒤쪽이 말도 못 하게 당겨왔다.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또 햄스트링이 문제구나. 나의 빌어먹을 짧은 햄스트링.
예전에 헬스장에서 개인 PT를 받을 때였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나에게 열정적으로 스쿼트를 가르치고 있었다. 헬스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스쿼트 아닌가. 하지만 난 어쩐 일인지 스쿼트 자세가 영 나오지 않았다.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엉덩이를 낮추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려고 하면, 자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발 뒤꿈치를 높이 들어야만 하는데도, 트레이너는 자꾸만 무게 중심을 뒤꿈치에 실으란다. 몇 번의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듯했다. 처음 등록할 때만 해도 자기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이제는 불치병 선고를 내리는 것 마냥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원님은 선천적으로 햄스트링이 짧으시네요."
그놈의 선천적. 또 선천적이다. 내 몸이 뭐가 안되기만 하면 모두들 선천적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 치과에 가면 충치가 많은 것도 내 선천적인 구강구조 때문이라고 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해도 선천적으로 얇은 내 머리카락 때문에 원하는 스타일이 안 나온다고 했다. 선천적, 그거 참 쉬운 핑계다. 여하튼 간에 나의 햄스트링은 짧은 게 맞는 것 같다. 트레이너의 열정 넘치는 특훈 끝에도 난 결국 맨 몸 스쿼트를 마스터하지 못했고, 그 뒤로는 기구에 의존해 스쿼트를 해야 했다. 햄스트링이 짧아서 못하는 것이 어디 스쿼트 뿐인가. 쪼그려 앉기는 물론이고, 다소 TMI 긴 하지만 푸세식 화장실에서 큰 일 보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난 짧은 햄스트링 탓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요가원에서 그 난관에 또 부딪힐 줄이야. 짧은 햄스트링 탓에 나는 다운독 자세가 유독 힘들었다. 허벅지와 종아리 뒤가 뻐근하니 당겨오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리가 덜덜 떨린다. 그런데 이 다운독 자세는 가장 기본인 동시에 일종의 중간 휴식 자세라고 한다. 힘든 자세들을 숨 가쁘게 넘어오면 선생님은 말한다. 자, 다운독 자세에서 다섯 번 호흡하면서 숨을 고를게요. 네, 여기서 쉬라고요? 이 자세로요? 이건 마치 야근을 해도 모자랄 만큼의 일을 던져 놓고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어깨를 두드리며 '쉬엄쉬엄하지 그래'라고 말하는 얄미운 팀장과 다를게 뭔가. 나는 점점 숨이 가빠진다. 선생님이 다섯을 카운트하는 동안, 나는 열다섯 번 정도 숨을 헐떡인다. 선생님, 저도 좀 쉬고 싶다고요!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니, 완벽하게 ㅅ자 모양으로 다운독 자세를 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좀 얄미울 정도로 편안하게. 역시 아내는 유연하다. 요가에 적합한 몸이란 저런 것이구나. 유연성이란 것도 타고나는 것 아니던가. 수련을 마치고 나오며 아내에게 나의 선천적 비애를 털어놓았다. 저기... 결혼 전에 말 못 해서 미안한데... 나는 사실... 짧은 햄스트링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스쿼트도 못하고, 쪼그려 앉기도 못하고, 또 푸세식 화장실에서... 아니 아니, 그래서 다운독도 못 하겠더라고. 아무래도 나의 요가는 여기 까진가 봐. 이토록 심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데도 아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 뒤꿈치? 나도 처음 시작할 때는 땅에 안 닿았어. 무릎도 안 펴졌고. 그거 하다 보면 금방 돼."
나는 아내가 너무 쉽게 요가 자세를 하는 걸 보며 원래 몸이 유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엔 지금의 나처럼 모든 자세가 쉽지 않았고 다운독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가가 좋아서 꾸준히 하다 보니 지금의 유연한 몸이 되었고 다운독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도 곧 그렇게 될 거라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다운독이 안 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정말...? 정말 햄스트링이 짧은 나여도 괜찮을까? 다음 수련을 마치고서 용기를 내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저의 다운독,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선생님은 나에게 다운독 자세를 해보게끔 한 후, 내 다리 여기저기를 눌러보고 아픈 곳이 있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아픈 곳은 없었다. 선생님의 대답도 아내와 같았다. '아픈 곳이 없으면 관절이 문제는 아니네요. 그러면 그동안 근육을 안 써서 그런 거예요. 처음 오신 분들은 대부분 그래요. 그러니까 조금만 수련하면 금방 뒤꿈치도 땅에 닿고, 무릎도 펴질 거예요. 정말 금방 된다니까요!' 아니, 이 사람들 왜 이렇게 긍정적이야...?
요가를 시작하고 한 가지 발견한 것은, 그 누구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 나처럼 '이것도 안 돼요, 저것도 안돼요'라는 말에 하나 같이 '계속 수련하다 보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된다'고 답해 준다. 요가의 세상에선 선천적으로 안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의 햄스트링은 잘못이 없다. 햄스트링을 쓰지 않고 묵혀둔 건 바로 나다. 매사에 비관적인 나지만, 이번엔 속는 셈 치고 요가의 세상 쪽을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시간은 꽤 걸릴 테다. 몇십 년 묵은 햄스트링이 고작 몇 일간의 수련으로 모차렐라 치즈처럼 사르르 녹아 쭈욱 늘어날리는 없을 테니까.
나의 첫 번째 목표는 다운독 자세에서 뒤꿈치를 땅에 붙이는 것. 그래서 쪼그려 앉기도 하고, 허리를 숙여 발목도 한 번 편안하게 잡아보는 것. 내친김에 푸세식 화장실에서 편안하고 시원하게 볼 일도 봐볼까나. 선천적이라는 미명 아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긴 세월을 살아온 가여운 나의 햄스트링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기꺼이 바닥에 엎드린다. 다운독, 아도무카스바나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