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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Sep 09. 2021

비로소 서는 법을 배우다
: 나무 자세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두 발로 땅을 단단하게 디디세요. 오른쪽 무릎을 들어 발목을 잡고, 발을 왼쪽 허벅지 안쪽에 붙여보세요. 그리고 양 손을 가슴 앞에서 합장. 브륵샤아사나, 나무 자세.”


  한 발로 서서 합장을 하는 자세. 주변 사람들이 하는 걸 보니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그래, 내가 유연성은 좀 떨어져도 균형 감각은 나쁘지 않지, 하며 자신 있게 한쪽 다리를 들었건만. 나의 그것은 나무 자세가 아니라 '사시나무 자세'에 가까웠다. 다리는 물론이고,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다 겨우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내려서야만 했으니까. 한 발로 서서 버티는 게 보기보다 쉽지가 않았다. 사시나무는 이파리가 얇아서 그런 거라지만, 나는 다리도 굵직한데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몇 번의 수련을 거듭해도 나의 나무 자세는 발전이 보이지 않았다. 남들보다 중심을 못 잡고, 그러니까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가고, 쉽게 지쳐버리기를 반복했다. 이쯤 되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 못할 수가 있나? 아내에게 비보를 전할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나의 요가 도전은 여기까지 인가 봐.


  어느 날, 또 나무 자세를 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발가락으로 땅을 꽉 움켜쥐듯이 힘을 주셔야 해요. 다리뿐만 아니라 발가락 끝까지 힘을 써서 중심을 잡는 거예요."


  손가락 끝까지, 발가락 끝까지 힘을 쓰라는 말. 수련 중에 자주 듣는 말이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손가락, 발가락까지? 어휴. 너무 자주 듣는 말이라 으레 하는 말이겠지 하며 흘려 넘긴 것이 사실이다. 마치 버스를 타면 정류장에 정차하기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하는 안내방송처럼, 매번 하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는 그런 충고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다들 알다시피 정차할 때까지 안 일어나면 버스는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내 발가락을 지켜보고 있다. 발가락에 힘을 주어야만 이 끝없는 한 발 서기에서 하차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나는 떠밀리듯 마지막 힘을 쥐어짜 땅을 밀어 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발가락에 힘을 주자 발바닥 안쪽이 바닥에서부터 떨어지면서, 그러니까 발날 쪽으로 체중이 실리면서 훨씬 균형 잡기가 편해진 것이다. 고개를 숙여 발을 내려다보았다. 사실, 내 발에는 사연이 좀 있다.


  내 몸에는 이다지도 사연들이 많은지. 짧은 햄스트링이 끝이 아니었다. 내 발은 '평발'이다. 어릴 땐 내가 평발인 줄도 몰랐다. 딱히 사는데 불편한 게 없었으니까, 남과 다르다는 걸 깨닫지도 못했다. 평발이 느끼는 불편함이란, 보통 이런 것들이다. 일반적인 운동화가 발에 잘 맞지 않아 발바닥 아치 부분이 아프기 쉽고, 그래서 오래 걷거나 달리기 어렵다. 또 발목이 안쪽으로 많이 무너지는 '과내전' 증상 때문에, 운동을 하다 발목을 다치기 쉽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체력시험을 보면 오래 달리기를 유독 못하는 축이었다. 다른 운동은 그럭저럭 다 잘했는데, 오래 달리기만 못하는 나를 두고 체육 선생님은 늘 '정신력'을 탓했다. 재능은 있지만 정신력이 약한 녀석으로 포장되는 것도 나름 멋진 것 같아서, 난 그냥 받아들이고 살았다. 훗, 천재는 원래 그런 법이지. 그러다 내가 평발이었음을 깨달은 건 언젠가 축구 선수 '박지성'의 평발 사진을 보고서였다. 평발로는 오래 달릴 수가 없다고, 그럼에도 세계적인 선수가 된 박지성 선수가 대단하다는 기사였는데, 아니 내 발과 다를 게 없잖아?! 몇몇 진단법을 검색해보고서야 나는 평발임을 인정했다. 게다가 양발의 불균형도 심했다. 오른쪽은 아주 평발, 왼쪽은 조금 평발, 흔히 말하는 '짝발'.


  하지만 평발임을 깨닫고 나서도 내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난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될 게 아니니까. 오래 달리기는 군대를 전역함과 동시에 내 인생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능력이 되었고,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삼보 이상 걸으면 택시를 탄다는 '삼보택시'의 태도를 실천하며 오래 걸을 일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요가원에서 한 발 서기를 하다가 깨닫고야 말았다. 평발은 한 발로 균형 잡는 게 힘들다는 사실을. 평소와 같은 편안한 발 모양을 해서는 도무지 한 발로 서서 버틸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말대로 열 발가락에 힘을 꽉 줘서 발바닥 아치를 세워야만, 난 비로소 다른 사람의 발과 같은 모양을 하게 되었다. 흔히 발바닥 도장을 찍으면 나오는 모양. 발바닥 중간 부분에서 발 바깥쪽으로 부드럽게 굴곡진 그 모양. 의식적으로 그렇게 서는 연습을 하다 보니 점차 한 발로 설 수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나는 좀 충격적이었다. 뭐랄까, 이제야 비로소 '서는 법'을 배운 느낌.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말이다.


  예전에 개인 PT를 받을 때, 트레이너 선생님이 내 몸의 좌우 불균형이 얼마나 심한지 보여준 적이 있다. 거울 앞에 서서 하나하나 뜯어서 비교해보니, 어깨, 골반, 팔 길이와 다리 길이까지 전부 좌우가 달랐다. 그때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는 오른손잡이니까 당연히 오른쪽이 더 발달했겠지. 중학교 때 멋 부린다고 무거운 백팩을 한쪽 어깨로만 매고 다녀서 그런가, 아니면 습관적으로 다리를 한쪽으로 꼬고 앉는 습관 때문인가. 그런데 뭐, 남들도 이 정도는 다르지 않나.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몸의 불균형은 평발과 짝발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아저씨를 목전에 둔 지금까지 서서히 내 몸은 균형을 잃어간 게 아닐까. 다시 거울에 비친 내 몸을 찬찬히 살펴보니, 평발이 심한 오른쪽 다리가 안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다. 한 발 서기를 할 때처럼 발가락으로 땅을 밀어 아치를 만들자, 그제야 양쪽 다리의 균형이 얼추 맞춰졌다. 나는 그동안 '잘못' 서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단순히 몸으로 균형을 잡는 감각뿐만이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 나와 타인 사이의 균형,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 등등. 균형을 잘 잡으려면 먼저 현재의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처럼 내 발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한 발로 서려고 하면 넘어지는 게 당연지사. 먼저 나 자신을, 그리고 내가 선 자리를 꼼꼼히 들여다봐야만 어느 쪽으로 힘을 실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는 것이다. 버스 정차 안내방송처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니 정말로 끝까지 힘을 줘야 한다. 균형은 가만히 서서 두 팔을 벌리고 한 다리를 들기만 해도 저절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것. 온 힘을 다해야만 겨우 지킬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매트 위에서 한 발로 선채, 한 시간 동안 나무 자세를 수련하는 경지에 이르러 깨달았다고 하면 물론 새카만 거짓말이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 만은 진짜다. 나는 이제, 서는 법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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