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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Sep 07. 2021

#5
남자들은 요가할 때 무엇을 입나요

오늘도 男아스떼 -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근데 남자들은 요가할 때 뭐 입지...?"

  "편한 거 아무거나 입어도 돼."

  아내는 무심하게 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에겐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요가를 시작하고 처음 든 고민 중 하나는 '무엇을 입어야 하나'였다. 여자의 경우 답이 뻔하다. 상의는 티셔츠나 탱크톱, 하의는 레깅스. '요가'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복장 말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어떨까? 어떤 복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궁금해진 나는 유튜브를 켜고 남자 요가 유튜버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찾아보았다. 대부분 헐렁한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 상의를 벗고 수련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 정말 아무거나 입어도 되는구나. 단, 그들처럼 멋진 몸이 있다면 말이다. 문득, 헬스장에서 어느 무게를 들 수 있어야 '언더아머'를 입을 수 있다는 농담이 생각났다. 요가원에서 민소매 티셔츠란 그런 존재인가.


  나의 비루한 몸으로 감히 민소매에 도전할 수는 없지. 하는 수 없이 나는 러닝을 할 때 입던 운동복을 입고 요가원에 갔다. 그날 입은 티셔츠는 좀 길이가 짧은 편이었는데, 곧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다. 엎드린 자세를 할 때마다 티셔츠가 뒤집혀 거꾸로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반강제로 상의 탈의 노출쇼를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탄탄한 복근을 가지고 있었다면 개의치 않았겠지만, 슬프게도 나의 뱃살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이래서 헬스장 가서 몸부터 만들고 요가원 가겠다고 했잖아! 수련의 마지막 즈음, 땅에 누워 다리를 머리 위로 넘기는 '쟁기자세'에서 허리와 등을 시원하게 까면서 나의 노출은 절정에 달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날 요가원의 수많은 눈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날 수련을 마치고 난 서둘러 요가복을 검색했다. 다행히 나이키에서도 몇 종류 안되지만 남자 요가 라인을 출시했다. 코로나 시국의 홈트 열풍을 노린 것일 테지. 나 같은 사람의 고민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요가 라인의 티셔츠는 길이가 꽤 길었고, 엉덩이를 덮는 부분 안쪽에는 티셔츠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무 패치도 붙어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이제야 나의 몸을 가릴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가 산 티셔츠 옆에는 민소매 티셔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근육질의 탄탄한 팔뚝을 자랑하는 모델이 입고 있는 민소매 티셔츠. 나도 언젠가 저런 걸 입고 요가할 수 있을까. 정말 요가원 대신 헬스장을 먼저 가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인터넷 창을 닫았다.


  그날 저녁, 아내와 저녁을 먹던 중에 고민을 털어놨다.

  "요가만 꾸준히 하면 살이 빠질까? 막 복근도 생기고?"

  아내는 무려 8년 동안 요가를 꾸준히 수련해오고 있다. 나는 희망적인 대답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요가만 해서는 안되더라고. 식단 관리를 같이 해야 빠지지."

  나는 좀 실망스러웠다. 물론 모든 운동의 목적이 멋진 몸을 가꾸는 데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색이 운동인데.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다면 요가 하나만 해서 될까? 다가오는 여름을 위해 요가를 멈추고, 헬스장에 다니면서 식단 관리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아내가 덧붙였다.

  "대신, 내 몸을 더 좋아하게 돼."

  

  내 몸을 더 좋아하는 것. 내 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것.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식스팩이나 이두박근이 아니라 그런 것일지 모른다. 그동안 헬스장에 나가다 말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비싼 돈을 내고 개인 PT를 받으면서도 내 몸에 변화가 없었던 이유. 바로 내 몸에 대한 애정 없이 남의 손에 맡기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했으니까. 요가 수련을 할 때 선생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자세를 할 때 내 몸에 어떤 자극이 가는지, 내 몸이 어떤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고, 느껴보라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나도 내 몸을 좋아하게 될까. 겉으로 보이는 몇몇 근육의 크기가 아닌 몸의 구석구석 작은 부분까지 살피다 보면, '남에게 멋진 몸'이 아니라 '나에게 사랑스러운 몸'을 갖게 될까.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나의 몸과 남의 몸, 나의 자세와 남의 자세를 비교하지 말라는 이유라고 한다. 몸을 위한 공간이지만, 몸을 비교하지는 않는 공간. 그 공간에서 난 오직 내 몸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아직은 민소매 티셔츠를 사지는 못했다. 땀이 난다고 과감하게 상의를 벗어재끼지도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수련하는 공간에서는 내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고 나니 내 몸이 드러나는 것도,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조금은 개의치 않게 되었다. 아내의 말이 정답이었다. 요가원에서는 '아무거나' 입어도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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