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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Sep 23. 2021

저를 만져도 괜찮아요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그날은 유독 긴장되는 날이었다. 몸 컨디션이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어려운 수련이 있는 날도 아니었다. 나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요가원에 가득한 사람들. 그날따라 유독 수련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다지 넓지도 않은 수련 공간이 가득하도록 다닥다닥 매트가 펼쳐졌다. 옆 사람과는 팔을 벌리면 손과 손이 닿을 만한 거리. 요가원에서 수련을 하다 보면 몸이 닿을 수도 있지, 그게 뭐 대수인가 싶다가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왜냐하면, 나는 이 공간의 유일한 남자니까. 그리고 사방엔 맨 살을 드러낸 여자들이 가득하니까.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남중, 남고를 졸업했다. 일 년에 한 번쯤 다녀오는 해외여행을 제외하면 딱히 외국물을 먹어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전형적인 '유교 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손만 잡아도 결혼을 해야 되는 줄 알고 큰 옛날 옛적 세대는 아닐지라도, 나는 이성 간의 '터치'에 대해서는 유난히 조심스럽다. 특히나 나이를 먹어 가면서 더 그렇다. 이제는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보다 공적인 관계가 더 많아졌고, 요즘처럼 흉흉한 시절에 괜히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연예인들만 해도 '매너손'이 유행 아닌가. 불가피하게 몸이 닿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닿는 척만 하는 것. 우리는 '터치하지 않는 매너'가 중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요가원의 유일한 남자로서, 나는 팔다리를 펼칠 때마다 움추러들고 만다. '팔을 옆으로 길게 쭉 늘이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에도 소심하게 주변을 먼저 살핀다. 그리고 옆 사람이 자세를 끝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빈 공간을 찾아 조심스럽게 팔을 쏙 밀어 넣는다.


  요가원이 가득 찼던 그날도 나는 매트 위에서 혼자 만의 거리두기를 실천 중이었다. 혹여라도 내가 누군가를 건드릴까, 혹은 누가 내 몸을 만질까 걱정하며, 조심조심. 좁은 매트 위에서 안 되는 자세를 어떻게든 해보려 낑낑대던 중, 선생님이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내 뒤에서 속삭였다.


  "제가 만져도 괜찮을까요?"

  네? 제 몸을요? 선생님이요? 예상 밖의 질문에 나는 당황해 어버버 대답했다.

  "네네, 그럼요 그럼요, 만지세요 만지세요."

  '괜찮아요'도 아니고 '만지세요'는 또 뭐람. 그동안 조신하게 쌓아온 '유교 보이'의 이미지는 산산조각 나버렸겠구나. 그런데 어딜 만지신다는 거지...? 지금 내 몸은 온통 땀범벅인데...! 내 머릿속 시끄러운 생각들은 아랑곳없이, 선생님은 흩어져 있는 내 팔다리를 가볍게 모으고 손으로 지그시 눌러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나의 첫 '핸즈온'이었다.


  요가 선생님이 수련생의 자세를 손으로 직접 잡아주는 것을 '핸즈온(Hands-on)'이라 한다. 사람에 따라 선생님의 핸즈온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워하거나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별을 떠나 누군가가 나의 몸을 만지는 걸 꺼리기도 하니까. 나에겐 선생님의 핸즈온이 큰 도움이 되었다. 요가 자세가 대부분 처음이다 보니, 선생님의 말만 듣고는, 또 다른 사람의 자세만 보고서는 정확하게 동작을 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요가원에는 거울도 없다 보니 나의 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없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말없이 다가와 내 자세를 바로 잡아준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자세를 해보려고 애쓸 때도 마찬가지. 나의 짧은 햄스트링 덕에 몸이 다 굽혀지지 않을 때나, 중심을 잡지 못해 흔들리고 있을 때, 선생님은 내 등을 지그시 눌러 힘을 보태주고, 흔들리는 내 몸에 손을 내밀어 준다.


  핸즈온은 단순히 자세를 바로 잡아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련생의 몸에 부족한 힘을 보태 주거나, 반대로 몸의 힘을 빼고 제대로 이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까지 수련을 도와주는 모든 터치를 포함한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 어떻게 핸즈온을 해주느냐는 선생님의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라고 한다. '핸즈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니, '말만 하지 않고 직접 실천하는'이라는 뜻도 있었다. 이 말뜻처럼, 요가원에서 선생님은 단순히 말로만 자세를 지시하는 게 아니었다. 수련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손으로 몸을 만지고 힘을 보태면서 모두가 함께 자세를 만들어가는 것. 그날도 선생님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생의 몸을 하나하나 만져 주고 있었다. 내 조심스러움과 달리, 이 공간에서 몸과 몸이 닿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게 수많은 여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남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선생님의 따듯한 터치 덕에, 나도 조금씩 남들처럼 '요가하는 몸'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내가 처음 요가원에 가자고 했을 때, 조금은 의아했다. 요가는 어차피 혼자 하는 것 아닌가. 유튜브에 널린 게 요가 영상인데, 왜 굳이 요가원에 가야 하지? 굳이 마스크를 쓰고,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요가는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동시에 함께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옆 사람과는 말 한마디 안 하고 몸을 부대끼지도 않지만, 나란히 선 모두가 같은 리듬으로 몸을 움직이고 같은 호흡으로 숨을 마시고 내뱉는다. 그것만으로 생겨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동질감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조금 더 힘을 내기를, 더 평화로워지기를, 바라고 도와주는 선생님이 있다. 땀에 젖은 내 몸을 거리낌 없이 만져 주면서 말이다. 그 공간에서 나의 몸과 마음은 결코 외롭지 않다.


  수련이 모두 끝나고,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말한다. 오늘 이 시간, 함께 호흡하고 에너지를 나눠 준 주변 분들과도 따뜻한 인사를 나눕니다. 나는 선생님을 향해, 그리고 매트 밖으로 삐져나간 내 팔다리를 이해해준 좌우의 회원님들을 향해, 거듭 고개를 숙인다. 오늘도 나마스떼, 나마스떼,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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