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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Sep 27. 2021

요가에도 장비병이 있다면

평범한 아저씨의 요가 도전기

  헬스장 빌런으로 꼽히는 유형 중에는 '바벨 콜렉터'라는 게 있다. 헬스장에 있는 온갖 무게의 바벨을 다 자기 주변에 모아 놓고, 남들이 바벨이 부족하던 말던 신경도 안 쓴 채 하나씩 무게를 바꿔가며 운동하는 사람. 요즘도 가끔 헬스장에 가면 바벨 콜렉터가 꼭 한 명씩은 있다. 이들은 딱 보면 티가 난다. 항상 주위에 여러 크기의 바벨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는 요가원에도 콜렉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세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요가 소도구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이 콜렉터 주변에는 늘 소도구가 가득하다. 나는 이를 '소도구 콜렉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 소도구 콜렉터입니다.


  대체 누가 요가를 '매트 한 장만 있으면 세상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했던가. 나로서는 매트 한 장 가지고는 턱도 없다. 물론 나도 수련이 시작할 때는 매트 한 장과 내 몸 만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곧 내가 잘 못하는 자세를 만나 낑낑 대고 있으면 그때마다 선생님은 나에게 소도구 하나씩을 가져다 건네준다. 처음엔 요가 블록, 그다음엔 두꺼운 수건, 그다음엔 스트레칭 스트랩 등등. 다 쓴 소도구는 매트 옆에 내려놓고 다음 동작을 이어간다. 그렇게 수련이 다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면 내 주위에 온갖 소도구가 가득 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매트 한 장 돌돌 말아 가뿐히 요가원을 나설 때 난 내가 썼던 소도구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소도구 콜렉터의 퇴장은 늘 이런 식이다.


  처음부터 요가에 소질이 있어 한 번도 소도구를 써본 적이 없거나, 유튜브에서 고수들의 요가 영상만 본 사람들은 '대체 요가 소도구가 뭐야?'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럼 이쯤에서 나의 요가 장비를 소개해볼까나. 내 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요가원에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도구들이니까, 애착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먼저 요가 블록. 가볍고 단단한 스티로폼으로 만든 조그만 벽돌처럼 생겼다. 요가 블록은 활용도가 아주 높은데, 주로 허리를 숙여 손으로 땅을 짚을 때 가장 자주 쓰인다. 나같이 뻣뻣하고 짧은 햄스트링을 가진 사람들은 손이 땅에 닿을 리 만무하므로, 이 요가 블록을 손으로 잡고 땅을 밀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땅을 짚는 동작이 계속 이어질 때면 선생님이 '요가 블록 사용하시는 분들은 손에 잡은 채로 그대로 일어나서 동작 이어가세요.'라고 하는데, 이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양 손에 요가 블록을 들고 팔이 길어진 채로 허우적 대는 모습이란... 심하게 말하면 가전제품 전시장 앞에 있는 춤추는 바람 인형 같달까. 역시 몸이 유연하지 않으면 팔이라도 길었어야 했다.


  다음은 스트레칭 스트랩. 앞으로 굽어 있는 내 어깨 탓에 두 손을 등 뒤에서 맞잡는 자세가 잘 안 된다. 한 손을 위로, 반대쪽 손을 아래로 보내 등 뒤에서 맞잡아야 하는데, 나는 왜 아무리 더듬어도 반대쪽 손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인가. 마치 샤워 타월 없이 등에 비누칠을 하는 모양새랄까. 등이 간지러운 것도 아닌데 자꾸 등을 긁고 있는 내 모습을 선생님이 발견하면, 또 말없이 다가와 내 양 손에 샤워 타월을, 아니지, 스트레칭 스트랩을 쥐어준다. 어째서 내 두 손은 내 앞에선 친하게 지내면서 내 등 뒤에선 서로 내외하는 걸까. 앞뒤가 다른 녀석들 같으니라고.


  요가원에는 두꺼운 수건이나 담요도 소도구로 쓴다. 나는 무릎을 꿇고 오래 앉아있는 것이 힘든데, 그럴 때면 이 수건을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끼워 넣어 조금이나마 아픔을 피한다. 수건이 돌돌 말린 채 고무줄로 묶여있는 것도 준비되어 있다. 이 동그랗게 말린 수건은 다리를 넓게 찢을 때, 허벅지 아래에 뜨는 공간을 채울 때 쓰인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말없이 두꺼운 수건을 가져다준다면 땀 닦으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절대 그 수건으로 땀을 닦고 다시 선생님께 되돌려 드리는 참사는 피하도록 하자.


  한 번은 아내와 함께 요가 브랜드인 '룰루레몬' 매장에 간 적이 있다. 아내는 열심히 요가복을 구경할 때, 나는 각종 소도구 코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와, 역시 여기는 요가 블록도 고급지구나. 이런 블록이라면 손에 들고 있어도 나름은 멋지겠는걸(그럼 아마 아주 멋진 바람 인형이 되겠지). 스트레칭 스트랩도 감촉이 아주 좋은데? 이걸로 요가도 하고 샤워타월로 써도 되겠어. 아니, 요가 양말도 있잖아?! 이걸 신으면 미끄러지지 않고 한 발로 단단히 설 수 있게 될까? 발 냄새도 감출 수 있겠는걸! 그 순간은 마치 등산 브랜드 매장에서 각종 장비에 눈독 들이던 과거의 내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아내가 내 손을 잡아끌며 외쳤다. 오빠, 또 장비병 도지려고 그러지!


  그렇다. 나는 사실 장비병 환자다. 어떤 운동이든 간에, 일단 시작하면 장비를 사재끼느라 정신이 없어진다. 평소에 쇼핑을 할 땐 살까 말까 수십 번을 고민하지만, 스포츠 용품을 사면서 '기능성'이라는 세 글자가 붙으면 아무리 비싸도 고민 없이 사게 된다. 기능성이 있다면 비쌀만하지. 이거 사면 운동 열심히 할 수 있겠네. 그럼 사자! 이런 마인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집에는 온갖 스포츠 장비들이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다. 자전거 장비, 스노보드 장비, 스노클링 장비, 등산 장비, 그리고 신발장 속 십여 켤레의 운동화들까지. 다행히 요가 장비는 아직 하나도 사지 않았다. 장비병이 고쳐진 건 절대 아니다. 그보다는 요가의 매력 중 하나가 맨 몸으로 집을 나서는 그 '가벼움'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요가하러 갈 때는 준비할 게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매트도 들고 다니는 게 영 귀찮아져서 요가원의 공용 매트를 주로 사용한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는 요가복을 입고, 맨발에 쪼리를 신은 채 쭐래쭐래 집을 나선다. 요가는 어차피 맨발로 하니까 애초에 양말도 신을 필요가 없다. 집에서 요가원까지는 걸어서 15분 남짓. 동네 골목 풍경을 즐기며 아내와 함께 천천히 걷는 가벼운 걸음이 좋아졌다.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말할 것도 없다. 몸을 구석구석 움직이고, 충분히 땀을 흘린 후의 가벼워진 몸과 기분. 서늘한 저녁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이 말이 절로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아, 진짜 좋다...!


  그 가벼운 시작과 끝, 가벼운 마음이 좋다. 출근하는 아침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릴 때, 혹은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두 어깨와 명치께가 한없이 무거워질 때, 그때마다 나는 요가를 하며 느꼈던 가벼운 마음들을 떠올리곤 한다. 매트 위에서 무엇을 비웠는지, 무엇을 내려놓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렇게 계속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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