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나 동화가 단지 어린이용이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그림책과 동화를 읽어야 한다. 사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감동과 교훈은 어쩌면 늘 뻔하다. 그걸 깨달으려고 읽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이야기가 품고 있는 의도를 내 방식대로 파악해야 한다. 나의 내적 자아를 작중 인물에 반영하여 동일시하거나 내 삶과 대비시켜야 한다. 다각도로 재해석하여 나와 타인,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성장의 밑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책을 읽고 대충 이런 내용이었군 하며 그냥 내려놓지 말자. 쉽게 다가오는 글 속에 진한 울림을 주는 메시지가 있는 법이다.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행복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웃음이 넘쳤고, 친구들 그리고 고양이와 개, 다람쥐 같은 동물들과도 다정하게 어울렸다. 어느 날 아이는 물놀이를 하기 위해 호수로 가던 중, 스르륵! 발밑에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거기엔 뱀이 있었고 아이는 비명을 내질렀다. 낯선 감정과의 만남.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과 맞닥뜨렸다.
질 티보의 동화 <두려움을 담는 봉투>에는 한 아이의 '두려움'이 가득하다. 한 번 맛본 감정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것의 존재를 알고 '두려움'이란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자 비슷한 경험은 수도 없이 몰려왔고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있는지조차 몰랐던 '두려움'이란 감정은 한 번 찾아오자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는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가고 없애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하지만 두려움은 점점 덩치를 키우고 어디서나 스멀스멀 다가왔다.
두려움은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나를 꼼짝 못 하게 했어. 나를 집어삼키려고 내 머리를, 내 숨통을, 내 몸을 휘휘 휘젓고 다녔어. 그 바람에 나는 구멍투성이가 돼 버렸어. (30p)
행복한 날들에 먹구름이 깔리고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온몸이 구멍투성이가 되어 숨조차 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이제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른인 우리에게 '두려움'은 익숙해진 감정이다. 흔하기에 책 속의 아이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 다소 과장되고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익숙함이 정상의 상황은 아니다. 솔직하자면 나는 그것이 무서워 제발 오지 않기를 바라고 빨리 벗어나고 싶어 버둥거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고민에 빠진다. 책 속 엄마 아빠처럼 직장을 잃을까, 성공하지 못할까 두렵고 아이가 아플까 봐 걱정하는 건 혹시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닌가 싶어 선뜻 말하지 못할 뿐 누구나 갖는 고민이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내 감정이 당연함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순간 두려움은 극복 가능한 모습으로 바뀐다.
두려움을 행복으로 바꾸기. 앙리 루소의 그림 <잠자는 집시>에는 밝은 보름달 아래 잠에 빠진 한 사람이 있다. 낮 동안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 한 손에는 아직도 지팡이를 쥔 채다. (아니면 금방이라도 일어나 다시 떠날 수 있기 위해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갈증이 날 때 언제라도 마실 수 있는 물병, 자신과 누군가를 위해 노래 한 곡조 부를 수 있게 만돌린이 곁에 있다. 넓디넓은 평야에서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잠에 곯아떨어진 이에게 맹수인 사자조차 순한 양같이 호기심을 보이고 곁을 맴돈다. 두려움은 스스로 날려버리고 인식하지 못할 때 저절로 사라진다. 루소의 그림 속 인물처럼 세상 편한 얼굴을 하고 원하는 꿈을 꿔보자. 어느새 행복이 가까이 와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