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남들보다 눈이 작다며 울곤 했다. 우리 엄마는 눈이 큰데 나는 왜 생기다 말았는지 모르겠다며 툭하면 눈물바람이었다. 계속 울면 작은 눈이 더 작아진다고 해서 울다 말고 뚝 그쳤다. 책에서 '단춧구멍 같은 눈'이라는 말이 나오면 내 얘기를 하나 싶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선생님이 비유법을 설명하며 '호수같이 맑은 눈'이란 문장을 예로 들면 발끈해서 눈에 불이 붙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눈이 크면 호수 같다고 뻥을 친 거야.
"왜 그렇게 눈이 작냐"라고 한 번씩 어른들은 농담처럼 말하고 애들은 대놓고 말했다. 눈에 대해 뭐라도 들은 날이면 나는 당장 엄마 아빠에게 달려갔다. 아빠가 눈이 작아서 그렇다고, 나는 하필 엄마가 아니라 아빠를 닮았다며 따지고 들었다. 내가 그럴 때면 아빠는 항상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눈 커봤자 먼지만 들어간다. 작아도 세상천지에 안 보이는 게 없다!" 솔직히 맞는 말인데 위로는 전혀 안 되어서 화가 났다.
눈이 작아서 연애는 할 수 있을지, 처녀귀신이 되는 건 아닐까 속을 끓였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혼하고 애 낳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럼 끝. 아, 이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작은 눈을 가진 나는 남과 차별화된 시각을 갖고 싶었다. 더 많은 걸 보고, 누구도 보지 못하는 걸 보고자 했다. 거꾸로 뒤집고 비틀고 쥐어짜면서 들여다보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나는 여전히 색다른 시선을 좋아한다. 유별난 구석에 눈길이 가고 희한한 방식에 끌린다. 독특한 관심을 자아내는 바로 그것. 내가 다니엘 살미에리의 그림책 <산책>을 보았을 때 바로 그 느낌에 사로잡혔다.
어느 고요한 겨울밤 곰이 숲에서 걷고 있다. 홀로 눈길을 즐기던 곰의 시야에 누군가 나타난다. 다음 장,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고 있던 늑대의 눈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뭔가가 보인다. 그다음 장, 뜻밖의 만남에 놀란 곰과 늑대는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산책을 하기로 한다. 또 그다음 장, 서로 마음이 맞은 두 친구는 나란히 눈밭을 걸으며 아무 말없이 눈과 귀와 코로 풍경을 느낀다.
저 멀리 하늘을 나는 새가 바라보는 원근의 경치를 따라가다 보면 호수 얼음 밑을 내려다보는 곰과 늑대, 반대로 얼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물고기의 시선이 교차된다. 책 속의 엇갈리는 시점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얼음 들판으로 변한 호수 가운데로 걸어가는 곰과 늑대의 원경은 한겨울임에도 정감 어린 온기를 피워낸다. 얼마 안 있어 짙푸른 봄날의 빛이 차오르고 우거진 초록에 온갖 싱그러운 소리와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찰 풍경이 절로 떠오른다.
헤어짐의 순간에 두 친구는 짧은 산책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별을 슬퍼하지 않는다. 기약 없는 만남을 꿈꾸며 각자의 삶 속으로 떠난다. 그리고 계절은 바뀐다. 눈부신 신록이 넘쳐나는 숲 속에서 곰과 늑대는 처음 모습 그대로 재회한다. 푸른 호수를 향해 발맞춰 걷는 그들의 봄 산책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은 눈을 반짝이며 한 장 한 장 아끼며 읽었다. 스토리에 대단한 사건이나 다채로운 감정, 의외의 반전 같은 건 없다. 그저 자연이 있고 같이 걷고 같은 걸 바라보면서 느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있을 뿐이다. 아마 산책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헤어질 터이다. 그러나 만남의 기억은 새롭게 살아갈 삶에 생동감을 선사하리란 것을 그들도 나도 안다. 작은 눈을 가진 나는 곰과 늑대가 느꼈던 모든 것을 나 역시 고스란히 향유하리라는 것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