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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 세상 누구도 외롭지 않기를

by 유주
book17.jpg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인디아 데자르댕 글, 파스칼 블랑셰 그림, 시공주니어 2018


할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했지만, 정작 할머니가 두려워한 것은 삶이었어요.


내 곁에 늘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걸 지켜보는 기분은 어떤 걸까 상상해 본다. 조부모나 부모처럼 나와 다른 세대가 아니라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 말이다. 배우자 또는 형제자매, 친구를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후 다가올 느낌을 짐작하는 건 어려울뿐더러 아직은 떠올리기조차 싫은 문제다. 볼로냐 아동도서전 라가치 상을 받은 그림책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는 산타가 나오는 흔한 내용이 아닌 조금 색다른 의미를 안겨주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르게리뜨 할머니는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풍성한 요리를 준비한다. 온 가족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따뜻하고 뿌듯한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이가 들며 점점 몸이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가만히 있어도 손은 떨렸고 요리는 그만두었다. 그런데 야속한 세월에 무너지는 육체를 보아야 하는 무력함이 다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60년을 함께 한 남편을 떠나보낸다. 다음은 오랜 단짝을, 오빠를 보낸다. 친하게 지낸 이웃 친구들을 하나둘 잃는다. 모두가 할머니 인생의 한 조각이었던 사람들이다.

혼자일지라도 삶은 계속된다. 할머니는 자기 차례의 죽음이 언제 올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바깥은 위험한 곳. 감기에 걸리거나 교통사고, 소매치기, 강도를 당할까봐 집안에만 머문다. 자식들에게는 홀로 보내는 이브가 좋다고 말한 뒤 전자렌지에 데운 도시락을 먹고 텔레비전을 본다.

그러나 뜻밖의 불청객이 찾아온다. 눈길에 미끄러진 차가 할머니 집 앞 눈 더미에 처박힌 것이다. 할머니는 겁을 먹고 도둑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도움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런데 차에 타고 있던 부부와 두 아이는 할머니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두운 길가 눈 속에 고립된 차 안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선물을 교환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구조를 기다리며 그들만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집안 유리창 너머로 그 장면을 몰래 엿본 할머니에게 특별한 바람이 불어온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행여 큰일을 당할까 싶어 문밖출입을 삼가는데 그 가족은 불의의 사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견인차에 이끌려 멀어지는 차를 보며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할머니 얼굴을 흐뭇하게 물들이던 마지막 미소가 우리에게 말해준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삶이었다. 내 몸이 늙으며 맞는 변화를 빤히 바라보며 인정해야 하는 삶. 마음을 나누며 의지했던 이들이 사라짐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삶. 자식이나 주변인에게 신세 지기 싫어 스스로 자처한 고독한 삶. 이제 할머니는 다시 걸어 들어가리라. 혼자가 아닌 삶, 죽음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삶 속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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