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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항상 내 곁에 있을 소중한 무엇이 있음에

by 유주
book13.jpg 『시간이 흐르면』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마달레나 마또주 그림, 그림책공작소 2016


그림자는 자리를 바꾸고 시곗바늘은 처음 자리로 돌아가.
줄을 서면 내 차례가 오고 하루가 흘러가면 눈을 감아.
우리는 흐르는 시간을 볼 수 있어. 모든 것들이 점점 사라지거든.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변함없이 항상 곁에 있어!



나는 30대 중후반이 되자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음을 알았다. 한없이 더디기만 하던 시간에 가속이 붙어 있었다. 제발 좀 어서 갔으면 하고 바랄 때는 그토록 안 가던 시간이 말 그대로 쏜살같이 흐르고 있었다. 40대 초반이 다르고 중반을 넘어서니 또 달랐다.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걸까.

테드 창의 단편 소설 <숨>을 읽다 보면 갑자기 변칙적으로 작동하는 시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멀쩡히 잘 가던 시계가 어느 날 빨라진다. 책 속 화자는 뇌 해부를 하던 중 이유를 깨닫는다. 시계가 빨라진 게 아니라 인간의 뇌가 느려진 거였다. 아마 테드 창은 그 대목에서 시간 지연과 엔트로피 현상을 짚고 싶었겠지만 나는 인간의 생체 나이와 비례하는 체감 속도의 인과관계를 찾은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몸 안의 생체 시계는 낡는다. 뇌신경세포는 줄고 기능은 떨어진다. 감각 기관은 둔해지고 사고도 점점 느려진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세상의 물리적 시계에 적응을 못하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고 여긴다. 며칠 안 지났는데 금세 주말이고 새해 다짐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있는 식이다.

포르투갈 작가인 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와 마달레나 마또주의 그림책 <시간이 흐르면>은 제목에서 짐작하듯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대해 말한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하는 점과 변하지 않는 점을 대비시키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진다. 지우개는 닳아 없어지고 카펫은 낡아 희미해진다. 빵은 딱딱해지고 과자는 눅눅해지며 감자는 싹이 난다. 시간이 흐르며 잃는 바도 있지만 때로 얻기도 한다. 어려웠던 일이 쉬워진다. 모든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가운데 우리는 순간을 흐르는 시간을 본다.

지금 내 시간의 화살은 계기판의 시속 40km을 지나 50km를 향해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풍경과 사람들을 스쳐 지나고 최종 목적지에 닿을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상실의 아쉬움과 소멸의 안타까움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쉽게 삶을 긍정하거나 막연히 동경하지 않는 대신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갈망한다. 내 선택에 의미를 담아 행동한다. 혼자 그리고 함께 추억을 만들고 가치를 쌓아간다. 나란 존재와 그 모든 순간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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