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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쐬러 가는 기분

그저 바람 따라 나왔을 뿐인데

by 유주

나는 사람에 대한 어떤 신뢰를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장점이 한 가지는 있다는 것. 그런데 그가 책을 좋아한다면 좋은 점이 하나 추가되고, 만약 읽은 책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은 점이 하나 더 늘어난다. 혹시 평소에 글쓰기를 즐긴다면 또 늘어 최소 세 개 이상이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을 탐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혼자서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뭔가를 온전히 배우기 어렵다. 읽고 쓰는 걸 매일하고 있으니 발전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단순한 기대일 테고 그 믿음은 순전히 나만 인정하는 착각이 되기 십상이다. 타인을 통해 터득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앞서 말한 장점을 가진 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은 독방 독서나 나 홀로 글쓰기로 얻기 힘들다.

만남이 있다고 해서 바로 특별한 가르침과 구체적인 배움이 오가는 것은 아니다. 체화된 사고와 고유의 본성이 느닷없이 수면 위로 오르지도 않는다. 그건 느리고 담담한 '함께'에서 비롯된다. 가만가만 흐르는 시간은 오로지 그 순간이기에 가능한 감정선을 만들고 자연스레 드러나는 생각 고리를 서로에게 연결시킨다. 그들에게 우러나오는 열정과 순수한 행동은 가식적이지 않은 말과 어우러져 내 주변을 떠돈다. 책에 대한 생각과 쓴 글을 나누고 느낌을 주고받는 가운데 깨달음의 기류가 형성된다.

사람은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에 놓여 있다. 그런 와중에도 꼭 하고 싶어 하고, 할 때면 흥이 나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극적인 에너지를 안겨준다. 내 앞에 있는 이들은 그들의 인생길에서 맞닥뜨린 고유한 경험과 산뜻한 회상, 묵직한 사색의 향기를 내뿜고 있다. 그걸 말과 글로써 취하게 하고 한 수 가르쳐주기도 한다. '사는 맛이 또 이렇게 다르구나, 나는 그걸 배우는구나' 음미하는 만남을 가진다. 글쓰기 모임을 하러 가는 길에 바람만 있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바람은 분다. 집안에서 창문을 열어도 현관문 열고 한 발짝만 나가도 바람은 있다. 숨만 쉬어도 느껴지는 게 바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바람이 쐬고 싶다.

왜 꼭 바람을 맞기 위해 집을 벗어나 어딘가로 가야 하는가. 안과 밖의 차이는 환경의 변화이겠지. 장소가 바뀌면 색다른 느낌이 들고 좀 다른 걸 해보고 싶거나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 든다. 집에선 안 떠오르던 생각이 나고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된다. 이왕 나왔으니 뭐라도 안 할 수 없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같을 수 없다. 새로운 바람이 나에게 불어온다.

내가 머무는 공간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나를 낯선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내가 처음 만나는 나를 이전엔 알지 못했기에 두근거리고 설렌다. 긴장감과 묘한 자극이 뜻밖의 원동력이 되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참 이상하다. 바람만 쐬었을 뿐인데.

나는 도심 속 카페에 있기도 하고 빽빽한 빌딩의 숲에 둘러싸인 조용한 오피스에 있기도 하는데, 집이라는 매일 뻔하고 한정된 시공간에서 벗어나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찾은 곳이다. 그리고 나와 동일한 마음을 가진 인연들이 맞닿은 지평선이기도 하다.

살면서 내가 선택하는 어떤 계기는 또 다른 만남과 성장의 구름판이 되어 삶 속 기분전환이 된다.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충분하다. 지금 내가 만끽하는 공기의 움직임은 이미 여행지다. 나는 바람 쐬러 나왔다가 글과 바람이 나버린다. 아마 당분간은 이 바람을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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