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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마음

존 브라운에게 내 마음을 담아

by 유주
book10.jpg 『복슬개와 할머니와 도둑고양이』 제니 와그너 글, 론 브룩스 그림, 느림보 2003


나만 바라보던 다정한 사람이 갑자기 다른 이에게 눈길을 돌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외로운 삶의 여로에서 서로 의지하며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낯선 이가 우리 사이에 끼어든다면 나는 괜찮을까? 아무래도 괜찮지 않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따져봐도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다. 내 사랑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가만히 두고 볼 순 없다.

내 마음이 감정이입되어 애틋함을 자아낸 개 한 마리가 있다. 이름마저 멋진 존 브라운. 혼자가 된 로즈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할머니를 도와 무슨 일이든 하고 늘 곁에 머물며 지켜준다. 할머니 역시 개를 친구로 생각하고 수시로 안아주며 이렇게 말한다. "존 브라운, 너랑 나랑 둘만 있으면 돼."

이 이야기는 제니 와그너가 쓰고 론 브룩스가 그린 <복슬개와 할머니와 도둑고양이>의 도입부다. 노후에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와 인생의 동반자 같은 개의 모습은 잔잔한 여운을 자아낸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안이 되는 존재. 로즈 할머니랑 존 브라운이 꼭 끌어안는 장면에서 그들의 흐뭇하게 미소 짓는 표정과 상대에게로 향하는 손동작을 보면 왠지 모를 울컥함이 올라온다.

이 행복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존 브라운에게 위기가 다가온다.

"존 브라운, 저기 정원에 있는 게 뭐냐?" 어느 날 밤, 로즈 할머니는 떠돌이 길고양이를 발견한다. 할머니의 호기심에 존 브라운은 딴청을 부린다. 심지어 할머니 모르게 고양이에게 협박을 한다.

"우린 너 필요 없어, 저리 가."라고 말이다. 계속되는 할머니의 관심과 달리 존 브라운은 못 본 척 눈을 꽉 감아 버리고 고개를 획 돌려 버린다.

"고양이는 필요 없어요, 할머니에겐 제가 있잖아요."

아! 나는 존 브라운의 심정이 이해된다. 존, 기운 내. 너무 속상해하지 마.

하지만 로즈 할머니는 존 브라운의 냉담한 반응이 영 섭섭하다. 몰래 우유 그릇을 내놓고 달빛에 비친 고양이가 참 멋지다며 대놓고 칭찬한다. 어서 가서 문을 열어 주라며 존을 다그친다. 싫다는 존의 말에 몸져눕고 밥도 내팽개친다. 아프다며 맨날 누워있을 거라고 괜스레 투정을 부린다.

불쌍한 나의 존 브라운. 이 소심한 개는 할머니의 분홍 슬리퍼를 끌어안고 하루 종일 고민에 빠진다. 할머니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고양이를 데려오면 나을 것 같아요?" 저녁 시간이 다 지나도록 침대에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존이 말한다. 결국 져 준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존이 선택한 마지막 방법은 헌신이다.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것. 자기 삶 속으로 불쑥 들어온 이방인을 맞아들이고 벽난로 할머니 바로 앞자리의 안락의자를 내준다. 도도하게 걸어 들어와 뻔뻔하게 자리를 차지한 고양이가 기분 좋다며 가르랑거릴 때 로즈 할머니는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존 브라운은 얼굴을 돌려 외면한다. (왜 도둑고양이라는 제목이 붙었는지 알겠다).

얼마나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까. 뻔히 예상했던 결과에 무너지는 존의 상실감이 마치 나의 아픔처럼 다가온다. 고양이는 존의 양보에 고마움을 표시할까. 할머니는 존의 희생을 알아줄까. 존의 성격을 봐서는 그들에게 나 좀 알아달라고 떼쓸 것 같지 않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량과 내 몫의 일정량을 포기할 줄 아는 호의를 존 브라운에게 배운다. 책을 덮으며 나는 꼭 말해주고 싶다. 존, 파이팅! 너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어. 내가 널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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