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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죽을 순 없지

죽기 딱 좋은 죽음을 그려보는 삶

by 유주
book01.jpg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고정순, 만만한책방 2020


인간은 혼자다. 세상에 올 때 홀로 왔듯 갈 때도 홑몸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은 나이가 점점 들어간다는 생각에 빠질 때보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시점에 조금 더 비장해진다. 슬프긴 해도 이겨내고 씩씩해져야 한다고 다독이고 싶은 기분이랄까. 30이 올 때 그랬고 40을 맞을 무렵, 어느새 다가온 50 언저리의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보는 책들마다 제목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데, <50+ 인생 후반전>, <50부터는 물건은 뺄셈 마음은 덧셈>, <50의 품격은 말투로 완성된다>,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오십, 질문을 시작하다> 등등 전환기의 50을 맞은 저자들의 고민과 성찰이 궁금해 자꾸 그런 내용을 담은 책에 눈길이 간다. 그러고 보면 나는 40 중반 무렵부터 쉰 살의 그림을 그렸다. 언젠가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이라면 차근차근 준비하며 담백하고 명랑하게 맞고 싶었다.

나이 듦을 예감하는 건 죽음에 대한 숙고를 동반한다. 내게 남은 삶은 먹고 자고 누구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을 비관적이거나 부정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일본의 수필가이자 편집자인 히로세 유코도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에 이렇게 썼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기하게도 생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끝이 있는 시간이라서 더욱 충만한 순간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인간이 죽음과 짧은 생명에 대해 헛되다고 이야기하는 건 우울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건 경험에서 결함을 찾아낼 용기 그리고 사랑, 선, 신실, 겸손, 친절 등 미덕에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유한성, 인간의 한계는 소멸적 죽음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결국 존재는 사라지고 이룬 것들이 무의미해진다면 지금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깨달을 필요가 생긴다.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기분 좋게 보람 있는 생을 누리다 간다면, 고정순의 그림책 속 산양처럼 내일 아침 당장 눈을 뜨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꺼이 행복하지 않을까.


난 곧 죽게 될 거야. 하지만 가만히 앉아 죽을 수는 없지.


늙은 산양은 자기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지팡이 없이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데 그 지팡이를 손에서 자꾸 놓친다.


"뭐야, 혹시 죽을 날이 가까웠나?" 깊은 고민에 빠진 양은 이대로 순순히 죽을 순 없다며 길을 나선다.


마지막으로 들판에서 멋지게 달려볼까, 다시 한번 높은 절벽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까, 시원한 강물에 발을 적셔볼까.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용기를 내고 시도를 한다.


양은 번번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뿐이지만 이만하면 됐다는 위안을 얻는다. 그리곤 담담히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오랜만에 편안한 잠자리에 든 산양은 깊은 잠에 빠져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죽기 딱 좋은 곳이네."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양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내 마지막 미소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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