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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Dec 09. 2023

꿈꾸고 깨어 있는 사람이 이야기의 주인공

옛날 옛날 우리 모두의 옛날에

『깨어 있는 숲 속의 공주 』 리베카 솔닛 글, 아서 래컴 그림, 반비 2023.


모든 시작 이전에는 또 다른 시작이 있지.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본래 동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그게 판에 박힌 진부한 반복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전래동화이고 구전이니까 언제나 시작은 '옛날 옛날 한 옛날에'이어야 했고, 그렇게 말머리를 꺼내야 구수한 옛이야기가 실타래같이 술술 풀려나오리라는 기대감이 일었다. 일말의 의구심도 없던 그 표현에 리베카 솔닛은 의문을 가졌다.


"어째서 한 옛날이어야 하는 걸까."


'하나의 옛날'은 오직 한 인물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 인물은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소중한 주인공이기에 어떤 순간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나머지는 기타 등등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주변인이 된다. 공주가 나오는 흔한 동화가 그렇듯이.


그러나 어느 각도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주인공은 바뀐다. 누구의 입장에서 서술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만드는 조력자들의 이야기도 간과하면 안 된다. 모두에게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의 한 옛날, 엄마와 아빠의 두 옛날, 동생까지 네 옛날, 일곱 요정의 옛날이 합쳐져 열한 옛날의 이야기가 된다. 스쳐 지나갈 뿐이던 생쥐의 옛날, 어디서 날아온 불새의 옛날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왕자 아니 소년의 옛날이 더해져 '옛날 옛날 수많은 옛날'이 되는 이야기.


힘이란 곧 책임을 뜻하는데, 그 책임 가운데 하나가 봄에 체리꽃을 피우는 노래를 불러서 여름이 되면 나무에 체리가 영글게 하고 겨우내 체리 잼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거였지.


열다섯 살이 되면 물렛가락에 손가락이 찔려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될 운명인 소녀, 이름은 아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여왕이었기에 아이다 역시 여왕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 그건 백성을 지배하며 명령하고 결정을 내리는 임무가 아니었다. 봄에 체리꽃을 피우는 노래를 불러 여름에 체리가 영글게 하고 겨우내 체리잼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책임'이 여왕의 '힘'이었다.   


아이다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하찮게 여기지 않고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으며 노래가 꽃이 되고 열매가 되고 잼이 되는 순리였다.


하지만 백 년 동안 잠만 잔 사람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니? 깨어 있던 사람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알고 있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그렇다, 백 년 동안 잠만 쿨쿨 자는 공주였다.

나라를 책임지고 자기 삶을 살아야 할 공주가 잠에 빠지고 그녀를 따라 줄줄이 사람들은 곯아떨어졌다. 왕국의 기능은 마비되고 사람들의 삶은 정지했다. 잘생기고 용감한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리베카 솔닛이 각색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백 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왜 우리는 주인공을 위해 그 시간을 당연히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 건지 문득 어리둥절해진다.


어떻게 해도 아이다를 깨울 방법은 없고 어찌 되었든 백 년 후면 아이다는 알아서 깨어날 테니 부질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잠만 자는'  공주가 아니라 '깨어 있는' 공주의 이야기다.


한 가지 더 달라진 게 있었는데, 아이다의 꿈이었어.


솔닛은 '깨어있는 공주' 이야기를 하지만 잠든 공주를 배제하지 않는다. 자의가 아닌 수면의 시간을 사는 아이다는 잠에 꼼짝없이 묶인 상태이지만 왕자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꿈에서도 노래 부르고 새들의 언어와 강물의 노래를 배우며 존재가 빚어내는 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폭포의 으르렁거림, 홍수의 함성, 봄비의 다정한 속삭임, 바위 위로 굴러가는 작은 시내의 행복한 옹알이, 파도가 밤과 낮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바위를 두들기는 소리, 뺨 위로 구르는 눈물방울의 슬픈 노래.'


아이다는 꿈을 꾸고 또 꾸면서 자연을 통해 배우고, 배우는 일의 지난함이 아니라 아름다운 배움을 터득한다.


무언가를 아주아주 잘하게 되면 마치 마법이나 다를 바 없게 돼.


반면 그녀의 동생 마야는 깨어서 무엇을 했을까?


'빛은 어디에 떨어지지? 잉크는 어떻게 작용하지? 빗방울은 어떻게 반짝이지? 나뭇잎은 언제 오그라들지?'

마야는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공부했고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면서 위대한 화가가 된다.


마법은 우연히 불가사의하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었다. 아주 아주 오래 꾸준히 갈고닦아서 저절로 체화되는 과정,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일이 쉬워지는 놀라운 결과가 바로 마법이었다.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운 것 이상이었어. 그 사람이 나타나면, 아름다움이 그 사람과 같이 나타났지."


리베카 솔닛의 이전 그림책에서 신데렐라가 자기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법을 부렸듯 숲 속의 잠자는 공주와 깨어 있는 공주는 씨실과 날실이 되어 서로 교차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엮어 마법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들은 마법을 혼자 독차지하지 않았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나 땅에 떨어진 깃털, 잎이 둘 달린 잔가지' 같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에 눈을 돌리게 했고, 눈은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과 제대로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야는 그림을 그려 마을 사람들을 도왔으며 잠에서 깬 아이다는 다시 노래를 불러 해마다 체리가 주렁주렁 열리게 했다.


"아뇨, 당신이 내 이야기 속에 있는 거죠!"


잠자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백 년 동안 자란 가시 덩굴을 헤치는 왕자는 없었다. 백 년이나 머금고 있었을 엄청난 입냄새를 무릅쓰고 감미로운 키스로 잠을 깨우는 왕자는 아예 상상도 안 한다. 단지 꿈이 아주 크고 맨발인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아틀라스였고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과수원을 지키고 있었는데 밤마다 불새가 날아와 황금 사과를 한 알씩 채어갔다. 불새는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 나오는 제비처럼 황금 사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틀라스는 불새를 잡으려다 발목에 매달렸고 하늘을 날아 아이다가 잠든 성에 내리게 된다.

때마침 백 년의 잠에서 깨어난 아이다는 아틀라스를 자기 이야기 속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왕자님이라고 생각하지만, 아틀라스는 자신이 '불새'라는 동화 속의 주인공이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나의 시점에서 보면 나의 이야기, 너의 시점에서 보면 너의 이야기, 우리의 시점에서 보면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무슨 소식 있어, 나팔꽃? 여러분 주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니?


일곱 요정의 이름이 월, 화, 수, 목, 금, 토, 일요일이라는 설정도 인상 깊다. 우리의 매일매일은 전부 똑같지 않다. 살다 보면 다정하고 포근한 날이 있고 끔찍하고 지독한 날도 있다. 자기를 초대하지 않았다고 고약한 저주를 퍼부은 일요일 요정 같은 날도 삶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느 날 활개를 치며 나를 꼼짝 못 하게 한다.


그렇지만 그 악몽 같은 요정이 깜빡 두고 간 물렛가락과 가위를 사용해 아이다는 백 년 동안 자란 머리카락을 자르고 땋아 바깥세상으로 탈출하는 법이다. 왕자의 구출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기지를 사용해서 말이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의 가닥가닥에는 아이다가 꾼 백 년의 기억과 용기,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모든 게 이야기였다. 나도 이야기고, 너도 이야기다.


리베카 솔닛의 글. 그건 누가 이야기를 하고 누가 판단하는지를 바꾸는 것은 곧 누구의 이야기인지 바꾸는 것이라는 예리하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이제 그 울림은 동화가 되어 어린이들에게 가닿는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잠자는 공주와 깨어 있는 공주, 과수원 지기인 아틀라스에게 머물지 않았다. 지렁이와 벌레, 생쥐,  불새, 요정, 아이다의 부모, 마야의 증손녀에게도 이야기가 있고, 그것은 각자 세상을 마주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덩굴을 타고 올라가는 가녀린 잎겨드랑이에서 뻗어 나온 꽃대에 자주색, 흰색, 붉은색의 색색깔 꽃을 피우는 나팔꽃처럼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에서 활짝 꽃 피우는 세상의 중심이자 우주를 이루는 숱한 중심들 중 하나라는, '옛날 옛날 우리 모두의 옛날' 이야기가 어제에서 흘러와 오늘의 곁에 잠시 머문다. 그 안에 나와 너의 이야기를 띄워 내일로 천천히 천천히 흘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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