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으로 행복한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이 책은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제시한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는가? 인공지능은 자신이 스스로 무엇이기를 바랄까? 인간의 방향성은 어디로 향하는가?
세상에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내 편만 들어줄 이는 누구일까. 나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듯 누군가에게 한결같은 모습을 요구한다는 건 이기적인 마음의 일환일 터이다. 상황에 따라 두 얼굴, 아니 천의 얼굴로 변하는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한결같이 지지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존재를 원하게 된다. 바로 감정형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런데 그 존재는 내가 옳은 길로 가도록 입바른 말을 하면서 솔직하고 단호해야 될까, 아니면 내 입장과 감정을 최우선순위로 삼아 비도덕적인 판단이나 하얀 거짓말도 빤하게 할 줄 알아야 할까. 아마 도덕적인 직관은 전자라 할 테지만 매번 그런 식이라면 정이 떨어지고 과연 너가 내 편인지 미심쩍을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강아지나 고양이나 사람과는 외향부터 다르고 언어를 사용해 의사소통도 할 수 없지만 나의 정신을 어루만져주고 내 마음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해한 존재라서 사랑스럽다. 우리는 같은 종인 인간한테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선상에 놓고 자꾸만 채점하게 만드는 온갖 감정의 찌꺼기, 나를 나다운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비참한 일들이 꼬이고 줄줄이 엮일수록 따뜻한 숨을 내쉬며 곁을 지켜주는 존재의 위로가 필요해진다.
자체로는 온전하지 못하니까 자꾸만 바깥의 무언가에게 의지하려 들고 순수한 위로와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과 반려 동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리나 빅스비처럼 인간의 말 상대용 인공지능, 나아가 움직이며 판단하고 사람의 내면과 정신까지 헤아려주는 존재인 로봇 개가 출현하지만 인간의 감정이 그대로 프로그래밍된 개는 혼란 상태에 빠진다. 왜냐하면 인간의 감정이란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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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함께하기 위해 인공지능이 고통을 배워야 한다면, 그건 솔직히 인공지능을 돕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의식을 이 세계에 불러내는 시점에서, 그 형상을 철저히 계산하고 고통의 잠재태를 부여하는 시점에서 이미 폭력을 행한 것이다. (57p)
이 개는 나를 닮았을까, 아니면 동생을 닮았을까? 난 이 개의 이야기에 정확히 어떤 기억을 투영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앞으로는…… (59p)
인간관계를 최종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총점의 평균이 아니라 불합리한 과락 조건이니까. 아무리 호의를 베풀더라도 하나가 충족되지 않으면 충격을 받고, 반대로 그 하나만 만족시키면 다른 것쯤이야 괜찮은 관계를 많이 보고 겪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웃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76p)
사람들은 자신이 명확한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믿으며 상대가 자신과 같은 태도를 보이길 기대한다. 감정형 인공지능 설계사의 딜레마다. 구매자는 하나뿐인 친구가 선량하기를 바란다. (116p)
삶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죽음은 두려워하게끔 자라나서, 어떻게든 외로움 사이에 숨을 곳을 마련하려는 인간 말이에요. 고칠 수 없는 것들은 정말 불쌍하고 안타깝군요. (208p)
기계들이 감정의 고저를 아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느끼도록 만들어지는 것부터가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강압이라고 봐요. 이용하는 거죠. (...) 우리네 설계사의 입무란 결국 인간이 아닐 수 있는 존재에게 인간의 염증을 주입하는 것이고요. (214p)
정신의 방향성을 갖추고 욕망을 지향하게 된 인공지능은 인간의 편향과 오류까지 담게 된다. 인간은 기계에게 온전히 따뜻한 인간성을 바라지만 기계가 기계답지 못하고 너무나 인간 같은 모습을 보이면 비위가 상하는 이중적인 면을 보인다. 감정의 실체를 알게 된 인공지능 역시 인간중심적인 모순과 이중의 잣대, 비합리한 결과에 노출되어 고통받는다.
희생적이고 선량하지만 기계적인 정신과 적나라한 감정, 타산을 유발하는 자율적인 정신 중 무엇이 더 인간형 인공지능일까, 또한 감정형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생하려면 어떤 설계가 이루어져야 할까. 과학기술로 그런 관계가 정말로 현실화된다면 인간은 또 어떤 모습을 드러낼까.
작가의 진지한 물음이 인공지능 설계사인 도하와 동생 태이의 관계, 감정형 인공지능 로봇 개와 슈퍼스타 릴리, 그리고 백해나와의 관계로 확대되며 흥미롭게 펼쳐진다. 부록인 도보시오 (~도 보시오 see also)까지 읽다 보면 인공지능의 의식과 인간의 정신, Chat GPT와 같은 언어 모델에 대한 분석과 통찰, 윤리적인 판단과 타산의 부조화, 행동과 인식이 나아갈 방향까지 고찰해 볼 수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지만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메인은 늘 인간이다. 문윤성 SF 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작가가 한 말처럼 애정과 호감이 반드시 선하고 좋은 감정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애정과 호감이라는 이름으로 뒤틀린 지배나 어그러진 영향력을 유발하기도 하고, 그런 식의 방어적인 우회로가 세상에 잘못된 감정은 없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낳는다. 올바른 행동과 적절한 행동의 차이, 상황에 어울리는 감정과 그것에 따른 행동 원리를 기계에게 요구하는 인간에게 그 모든 건 풀기 어려운 과제였다.
어쩌면 우리는 '불합리한 균형 맞추기 게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인간이라서 인간 때문에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상처받게 될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으로부터 결핍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타인의 해결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아야 하는 '감정의 윤리'와 '타자와의 윤리'라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며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자신을 또 어디까지 데리고 갈지, 혼돈의 감정과 관계 속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자기도취에 빠진 인간 본성의 민낯은 어떤 굴레에 다시 얽매일지.....
책을 덮는 순간 내 핏줄에도 불안과 무감각의 약 기운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