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이 따뜻하고 벅찬 여름이 되려면
"아, 애는 원래 오냐오냐하는 거지." (52p)
아이를 오냐오냐하면 버릇이 나빠진다며 어른들은 행동을 조심한다. 그러나 한 번도 '오냐오냐'를 겪어 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의 그런 행동과 마음이 너무나 귀하고 고맙다.
'여유, 생각할 시간, 여윳돈'(19p)이 없는 자기 집과 딴판인 킨셀라 아저씨 아주머니의 집에 잠시 맡겨진 소녀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17p)에 놓인다. 두 분은 자기 아빠 엄마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아빠! 소녀의 아빠는 처음부터 뭔가 꺼림칙했다. 그는 집의 큰 재산이었을 암소를 카드 게임에서 잃었다고 한다. 아이를 아내 쪽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맡기러 가서도 행동거지가 영 탐탁지 않다.
아이들은 먹을 것만 축내는 존재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지 않나, 음식 차리는 걸 도와주는 킨셀라 아저씨가 서빙 포크로 피클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서도 자기 포크를 사용해 피클을 담질 않나, 엄마에게 갖다 주라며 아주머니가 잼을 만들 때 쓸 루바브를 잔뜩 안겨주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바닥에 떨어진 루바브를 자기 손으로 주울 줄도 모르고 아이를 남의 집에 맡기고 가면서 다정한 작별 인사도 조만간 데리러 오겠다는 위로의 말도 안 한다. 심지어 소녀의 짐 조차 내려주지 않고 서둘러 가버린다. 나중에 아이를 집에 데려다준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수고에 대한 친절이 담긴 말 대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감기에 걸렸다며 삐딱하게 굴고 아이에겐 "그 꼴로 돌아오다니, 잘한다"(94p)며 타박한다.
분위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드는 이 아빠,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사소한 행동이나 말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말이나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야 함에도 그는 서툴다. 아니 생각이라고는 아예 안 하는 사람 같다. 아내 말에 의하면 그는 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고 내키는 대로 거짓말을 한다. 어디에서 뭘 하든 차분하게 머무르는 법이 없고 누구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줄도 모르며 자기 볼일이 끝나면 가기 바쁜 사람이다. 가진 것 없이 살며 자존심은 세서 누구의 도움도 감사히 받을 줄 모르고, 단 한 번도 아이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지 않은 아빠였다.
그리고 엄마! 소녀의 엄마는 늘 할 일이 태산인 사람이었다. 다섯째 아이를 임신해 만삭의 몸으로 네 명의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송아지 챙기랴 일꾼 부르랴 늘 지쳐 있다. 돈이 없어 항상 쪼들린다. 그렇게 좋아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생각할 시간이 없다.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칠 짬도, "에"가 아니라 "네"라고 대답할 수 있게 바로잡아 줄 세심함은커녕 아이가 가족의 당당한 구성원이자 단단한 인격체로 조화롭게 자라야 한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 낸다.
반면 킨셀라 아주머니는 소녀가 엄마에게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손길로 목욕을 시켜주고 침대에 오줌을 싼 것을 방이 습해서 매트리스에 습기가 찬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소녀가 무안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잔일을 시키면서 말끝마다 "착하지, 착하기도 하지"라며 칭찬을 보탠다. 뉴스를 보는 내내 소녀를 무릎에 앉히고 느긋하게 발을 어루만져 주며 참으로 멋진 발이라고 기분 좋은 말을 해준다. 오줌을 싸지 않도록 우유 없이 시리얼을 먹게 하면서 피부 관리법이라고 둘러대는 유머도 발휘한다.
"넌 몰라도 돼." 모르는 일은 모르는 채로 지내야 하는, 비밀 투성이던 자기 집과 달리 아주머니는 "넌 너무 어려서 아직 모를 뿐이야."(27p)라며 소녀의 마음을 살뜰하게 보듬어 준다.
또한 킨셀라 아저씨는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오도록 소녀에게 달리기를 시키면서 발이 빠르다고 늘 격려해 주고 소녀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도와준다. 수다스럽고 오지랖 넓은 이웃 여자의 말에 놀라고 속상했을 소녀의 손을 잡아 모래 언덕을 오르고 목말을 태워 바닷가를 거닌다. "보렴, 저기 불빛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 세 개가 됐구나."(75p)라며 소녀가 자신의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아 준다.
소녀는 이 모든 일이 혼란스럽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꾸중을 듣고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를, 편안함이 어서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잔잔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어느새 소녀의 키와 마음을 쑥 자라게 한다. 킨셀라 부부의 집 앞에 있는 수양버들의 가지가 땅에 끌리는 걸 보고 아픈 것 같다고 말하던 아이는 그들에게 맡겨져 충분히 먹고 배우고 철이 든다.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 나간 어린 소녀는 길 잃은 어린 암소가 되었다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망아지가 되었다가 우물에 빠진 아이가 되기도 하면서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67p)는 사람이 된다.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70p)는 아픈 현실을 알게 되고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79p)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 어두운 바다에서 깜빡이는 '세 번째 빛'의 가치를 알게 된 아이는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된다."(33p)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따라 밭을 다시 지나올 때 내가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으면 아주머니는 분명 넘어질 것이다.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평소에는 틀림없이 양동이를 두 개 가져왔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 (30, 31p)
아저씨가 우리 발자국을 따라가려고 해변에 불빛을 비추지만 내 발자국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기서는 네가 날 업고 왔나 보다." 아저씨가 말한다. 나는 내가 아저씨를 업는다는 것이 너무 말도 안 돼서 웃지만 곧 그것이 농담이었음을, 그 농담을 내가 알아들었음을 깨닫는다. (74p)
소녀는 무거운 물양동이를 손에 든 아주머니의 다른 쪽 손을 잡아주며 '균형'에 대해 생각하고, 깊고 어두운 밤에 아저씨와 바닷가에 나란히 서서 '서로 의지가 되는 관계'에 대해 깨닫는다.
"무서울 것 없다"(71p)는 아저씨의 든든한 말,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많다"(73p)는 아저씨의 무거운 말은 '염려'와 '침묵'에 대한 경구가 되어 소녀에게 거대한 파도로 밀려온다.
깜깜한 밤바다를 비추던 두 개의 작고 외로운 불빛은 마침내 세 개가 되어 반짝임으로 어둠을 밝히지만 어김없이 찾아온 이별은 가슴을 무너지게 한다. 소녀는 우물 속과 같은 '축축하고 차가운'(89p) 집으로 결국 돌아가게 된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면서 소녀는 얼마나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을까. 터질 듯한 심장을 견디지 못해 손에 쥐고 내달리는 소녀의 모습에 내 심장은 아파서 오그라든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헐떡거리는 호흡을 아저씨 품 안에서 진정시킬 때 둘을 떼어놓기 위해 점점 다가오는 아빠의 모습이 밉고 야속하다.
아저씨에게 안겨 그를 꼭 잡고 놓지 않는 소녀의 선명한 눈동자가 나에게 각인된다. 그만 내버려 두라고, 그렇게 사는 건 옳지 않다고 '아빠'에게 경고하고 싶은 마음, 아저씨와 단 몇 달을 지냈을 뿐이지만 '아빠'라 불러주고 싶었을 그 여린 진심이 내 마음을 지극한 통증으로 물들인다.
클레어 키건의 짧은 소설은 우물 같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어 책을 읽는 나의 숨결 안에 고요한 생각이 가득 차오른다. 나는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듬뿍 떠서 마신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려면 부모는 어떻게 자기 역할을 다해야 될지, 말이 적절한 쓰임을 얻고 행동이 올바른 소용을 다하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내 아이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치고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을지. 그윽한 이해와 날카로운 각성이 가슴에 종을 울린다. 아일랜드 시골의 전원적인 풍경과 간결한 분위기 묘사, 적확하면서도 드러나지 않은 행간의 문장은 담백하고 진한 여운을 더한다. 한 편의 시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뜨거운 감정을 자아내는 이 소설에 나의 유년과 내 아이들의 유년이 투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