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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Feb 24. 2024

아! 인생이 푸구이 하구나

살아간다는 건 나와 운명이 나누는 우정

『인생』 위화, 푸른숲


하루가 저무는 노을빛 하늘 아래 노쇠한 두 푸구이가 서로를 의지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뒷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해가 지며 어스름이 내려앉는 황혼 속으로 점점이 사라지는 푸구이라는 이름의 노인과 소는 아마 이승의 삶에 여한이 없으리라. 쇠락한 육체는 광활한 대지의 부름에 기꺼이 답하여 한 줌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게 살아간다는 것이자 어쩌면 위화가 말하고 싶었던 개인과 운명의 우정이라 생각합니다. 


내 삶은 어째서 이토록 평범한가. 큰 행운은커녕 특별한 재미도 없고 멋진 일 하나 없이 밋밋하고 심심한 생을 산다며 우울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빠의 사고 이후 풍비박산이 난 집안사와 불행했던 유년기의 기억을 오래 떨쳐내지 못했고 나는 참 태생의 운도 없다며 부모를 원망하고 또 그만큼 자책하며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그래서 푸구이 노인이 고난을 견뎌내고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끝내 나를 울리고 맙니다. 망나니 부잣집 도련님이 노름으로 가문을 몰락시키더니 가난한 농부로 전락하고 가족까지 하나하나 잃고 마는 그의 삶 앞에 나의 억지와 불평은 스르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전쟁, 대약진, 문화혁명 등 중국의 잔혹한 역사를 관통하며 누구보다 빨리 죽을 줄 알았던 자신이었건만 모두 떠나보내고 어느덧 곁에는 도살당할 위험에서 구해낸 늙은 소 한 마리만 남아 있습니다. 자기를 쏙 빼닮아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다며 그런 연유로 이름까지 푸구이라며 허허허 웃는 노인을 따라 미소 짓다 보니 인생의 행운을 따지고 재미와 멋을 운운하던 못났던 내 마음이 어느새 말갛게 개여 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들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나도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네. 내가 죽을 차례가 되면 편안한 마음으로 죽으면 그만인 거야.” (278p)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한평생. 온갖 굴곡을 겪고 힘겨운 풍랑을 만났음에도 정말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라며 담담하게 말하는 푸구이 노인입니다.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아들, 딸자식을 앞세우고 아내와 사위, 손자를 먼저 보냈지만 슬프고 고통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안심이 된다며 이제 마음 편히 살다가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싶다는 그의 말에 먹먹함이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아직은 운명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 말하기에 한없이 얄팍한 인생이겠지요. 살아감의 과정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삶을 바라보는 애정이 매일 깊어지고 있기에 내 삶의 끝에 서서 푸구이 노인 같을 수 있을지 미루어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노인의 생과 사, 삶의 내력이 담긴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게 고맙다 나직이며 따뜻하게 꼭 끌어안아줍니다. 그동안 잘 견뎌왔다고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된 거라고 내 마음속 빛나는 불꽃 하나 꺼뜨리지 않고 앞으로도 잘 살면 된다고 속삭여줍니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위화의 말이 점점 더 크고 투명하게 울립니다. 나라는 '개인'과 그 안에 얽히고설킨 '운명'이 '우정'을 잘 지키며 어깨동무하고 한걸음 한걸음 발맞춰 걷는 것이 바로 '인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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