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항암, 마음의 준비를 하시죠.
다행히 1차 항암에서 관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퇴원 1달 뒤 2차 항암을 진행하게 되었다.
1차 항암에 이어서 2차에도 창가 자리에 배정되었다.
창가 자리는 창틀 부근에도 수납을 할 수 있고,
그나마 바깥 풍경도 보이기 때문에 나는 창가 자리가 좋았다.
반포대교가 보이는 창문으로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하는 차량과 사람들의 행렬을 보며
'언젠가 나도 나아서 다시 출근할 수 있겠지' 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물론 기분이 우울해지면 저기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만 왜 이렇게 병원에 있지?'라는 생각에 울기도 했다.
사실 1차 항암에서 큰 부작용이나 이벤트가 적어서
2차 항암도 제발 딱 1차 항암 정도만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차 항암은 1차보다 좀 더 강한 항암제로 실시하고,
2차 항암의 목표는 관해 상태를 더 오래 유지하고 이식 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남아있는 백혈병 세포들을 더 눌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2차 항암을 '공고 항암' 이라고도 한다.
2차 항암 시작 전 간호사님들은 눈의 결막염, 피부발진이 가장 두드러진 부작용이라고 했다.
실제로 내가 입원했던 병실에서 2차 항암 중이셨던 환우분은
온몸 전체에 빨간 두드러기가 나서 너무 간지러워하셨다.
2차 항암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큰 부작용 없이 속이 불편하고, 그냥 피 수치가 떨어져서 기운이 없는 거 말고는 없었다.
열이나기도 했지만, 검사에서 나오는 균도 없었고 그냥 무난하게 흘러갔다.
힘든 점 없이 시간은 잘 흘러갔고,
어느새 퇴원 예정일이 다가와서 퇴원 이야기가 나올 때 즈음이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이시는 간호사님께서
" 몸에 좀 열이 있는 거 같은데요?"
라고 말하셨다.
" 아 그래요? 저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요. "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간호사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 이상하네요. 오늘 열날 수도 있을 거 같으니까 열감 생기면 바로 호출 누르세요.
곧 퇴원하실 수도 있으니까 관리 더 잘하셔야죠."
라고 말하고 가셨다.
몇 시간 동안 별생각 없이 놀다가 갑자기 몸이 확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간호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바로 호출벨을 누르자 간호사님이 뛰어오셨다.
" 그럴 거 같더라니까. 37.8도예요. 바로 항생제 검사하고, 처방해줄게요. "
신속한 조치 덕분에 맘을 놓았다.
약을 먹고, 열이 잡혀야 하는데 열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열만 나니까 곧 내릴 거라는 생각만 하면서 점점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해가 졌고, 저녁을 먹은 후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아테네가 머리에서 나올 때, 제우스가 이렇게 아팠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아팠고 시야도 점점 흐려졌다.
교대하신 간호사님께 증상을 말씀드리고 조치를 기다리는데,
머리가 정말로 쪼개질 것만 같아서 재차 말씀드렸다.
눈도 너무 아파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고,
눈을 감은 상태로 그냥 열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병동에는 처치실이라는 곳이 있다. 처치실은 보통 간호사 스테이션 뒤쪽에 통유리가 있는 공간이다.
응급한 상황에 처한 환자들을 간호사 전원이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통 중환자실에 가기 전에 잠깐 가는 곳이다.
수많은 응급환자들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곳,
그리고 많은 환우들이 생을 마감한 곳.
병동 산책을 할 때면 가끔 처치실에 계신 환자를 보며
정말 저곳만큼은 안 가고 퇴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눈을 떠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천장에 있는 조명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뿐이다.
내 눈의 초점은 빛을 향해 있지만,
어차피 시야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빛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었다.
몇 초정도 지났을까.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들린다.
굉장히 다급했고, 상당히 많은 수의 의료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처치실에 왔구나.
주변에서 들리는 많은 소리들 중에서
가장 또렷하고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리.
" 환자분!! 환자분!! 제 목소리 들리세요??
여기 환자분 눈 뜨셨어요!! "
내가 의식을 잃었었나 보다.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
" 환자분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병원이고, 내 상태가 안 좋아서 처치실에 왔구나.
' 병원이요 '
" 환자분 지금 여기가 어디예요? 아세요? "
' 병원이요. 처치실 온 거예요? '
" 환자분!! 말 좀 해보세요. 여기 어딘지 아세요? "
' 병원이요!!!! '
나는 분명 말을 하고 있는데,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나의 언어는 머릿속에서만, 나에게만 맴돌 뿐
소리로 표현되지 않았다.
분명 나는 말하고 있었는데.
마치 가위에 눌린 것 같이 나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했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곧장 어떤 간호사가 휴대폰을 가져오더니
어머니 전화라며 받아보라고 하셨다.
분명히 기억난다.
' 어, 엄마'라고 전화를 받으려고 했었다.
휴대폰 너머 엄마는 정말 오열을 하고 계셨다.
" 아들, 말 좀 해봐!! "
젖 먹던 힘을 다 쥐어짜서 소리를 냈다.
"어아아어어ㅏㅇ"
내가 들어도 말 같지 않은, 그냥 음성 자체였다.
언어를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은 소리.
희미하게 보이는 간호사님도 울고 계셨다.
나중에 들은 당시 상황은,
내가 경기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갑자기 2차례의 경기를 일으켰고,
그 후 의식을 잃어 처치실로 옮겨졌다.
당시 당직으로 있던 모든 의사들이 다 달려왔고,
혈액내과뿐 아니라 신경외과와 신경과 의사분들도 호출되었다고 한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팀장으로 계시던 간호사님께서
중추신경 감염을 의심하셨고, 곧바로 응급 CT, MRI를 촬영하러 내려갔다.
검사 결과 뇌수막염과 급성 뇌염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 때문에 경기를 일으킨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내릴 거라 생각했던 열이
뇌염이었던 것이다.
이 후유증으로 나는 언어능력이 상실되었고, 걷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게 퇴원 예정일 3일 전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의식을 잃은 동안
의료진 분들이 감사하게도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주셨다.
저녁 이후로 내가 연락이 되지 않자
안 그래도 연락을 해보려고 하셨던 어머니는 반갑게 연락을 받으셨을 것이다.
의료진이 나의 현재 상황을 말해드렸다고 한다.
" 현재 환자 의식은 돌아왔지만, 뇌출혈이나 뇌경색이 의심되고,
후유증으로 언어 사용 및 보행이 안되고 있습니다.
지금 응급 처치했고, 곧 검사하러 내려갈 겁니다. 검사 후에 원인이 발견되면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으며, 어떤 후유증이 어떻게 남을 거라는 건 저희도
예상하거나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심각할 경우에는 중환자실에 가거나, 가족분들 병원에 오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큰 대형병원에서 가족들을 병원으로 호출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퇴원하거나, 죽을 수도 있거나.
이 말을 들은 부모님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셨다고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게 단 하루도 안되어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다.
모순적으로 인생에 '절대로' 하는 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 병을 진단받은 직후부터,
'절대로'라는 건 없었으며
한 인간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고
한 존재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발병 전에 내가 세웠던 찬란한 계획,
내 앞에 놓일 거라 생각했던 미래들,
내가 노력했던 모든 것들은
존재의 소멸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하나?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이 모든 것들은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릴 한 순간의 꿈인데.
아니, 사실은 발병 전부터 '절대로'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내가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것들로 내 인생은 채워져 있던 것이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 얼마나 허무한지,
진실로 죽음을 마주하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제대로 느끼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죽음이 그토록 무서웠던 것도 맞지만,
죽지 않고 살아'만'있는 것 또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다.
걷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이 전혀 불가능 한 채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
내 삶이, 살아있는 게, 존재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처치실에서 약 3일간 천장만 보고 있었다.
3일 정도 지난 후 다시 입원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원인은 뇌염.
그때 내 증상은
언어 능력 상실, 거동 불가, 시력 감퇴 등 아예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솔직히 거의 포기하고 살았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의지를 다지다가도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우는 밤이 지속되었다.
병동의 간호사, 조무사님들 모두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시는 그 시선도 감사하지만 견디기 힘들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뇌염에 대한 치료 때문에 퇴원은 최소 3주 이상 미뤄졌고
나는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짧은 단어 몇 가지는 말할 수 있었다.
대신 단어와 단어 사이에 연결이 되지 않고,
아주 더듬으면서 말을 했다.
며칠이 더 지나고, 소변줄을 뺏다.
그리고 땅에 발을 디디는데, 허벅지에 있는 근육이 모두 사라져서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바로 침대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2주 정도 지나자 나의 증상들은 거의 회복되었다.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고, 의료진분들도 정말 다행이라고 해주셨다.
어느덧 부정적인 감정들은 사라졌고,
다시 힘을 내보겠다는 의지들이 살아났다.
그렇게 나는 치료 3주 차가 되던 때 퇴원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