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백혈병이 내게 왔다. - 카테터, 항암시작

히크만 카테터 삽입과 1차 항암 시작.

by 근쌤

하루 정도 지났을까?

병동 담당의가 나에게 찾아왔다.


" 골수검사 중간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마 주치의가 바뀌실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예상했는데,

중간 결과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나왔습니다.

빠르면 오늘 주치의 선생님이 회진 오실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좀 당황했었다.

나도 당연히 골수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림프구성이라니.


찾아볼수록 좋은 얘기는 보이지 않았다.

아동의 경우 대부분 완치가 되지만,

성인의 경우 림프구성 백혈병의 예후가 더 좋지 않다고 한다.


몇 시간 동안 멘털이 나가 있었지만

어차피 확률이라는 게 내가 해당되면 100%인 거고

내가 해당되지 않으면 0%인 거니까,

굳게 마음먹고 버티기로 생각했다.



백혈병 환자들은 항암치료를 할 때

그리고 최종적인 치료인 조혈모세포 이식을 할 때

'히크만 카테터'라는 의료 기구를


이 기구는 심장에서 가깝고,

우리 몸에서 가장 큰 혈관에 연결하는 관이다.


ㅎ아암제가 워낙 독하다 보니

팔 등 우리 몸에 보이는 혈관을 통해 주입하면

혈관이 다 죽기 때문에

몸에서 가장 큰 혈관에 연결해야 한다.


간호사님이 일정을 알려주고,

수술복을 입혀주셔서 침대에 대기하고 있었다.


많은 후기들을 보니 그렇게 아프지는 않은 것 같아서

별로 긴장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막상 롱카에 누워서 가니 무서웠다.


수술실은 너무 차가웠다.


관 삽입 부위는 오른쪽 쇄골 바로 아랫부분이었다.


마취를 위해 갑자기 주사를 찔렀는데 생각보다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더니

의료진들이 내 어깨를 강하게 눌렀다.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


마취 빼고 시술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술 후 마취가 풀리면서 시술 부위가 많이 아프고 쑤셨다.


히크만 시술의 가장 큰 단점이 있다.

바로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완료한 후 어느 정도 수치가 회복될 때까지

가슴에 히크만을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가슴에 히크만이 있으면 행동에 매우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일단 시술 부위에 감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 이상 소독을 하고 필름을 붙여줘야 한다.


그리고 물이 묻으면 안 되기 때문에 샤워할 때 매우 불편하다.

땀이라도 난다면 바로 소독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만약 시술 부위를 통해 감염이 되면,

히크만을 빼고 다시 시술을 해야 한다.


보통 1차 항암에서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반년 이상 걸리니까..

대충 6개월~1년 정도는 히크만을 달고 다녀야 한다.


그것보다 제일 싫은 건

히크만 자체가

언제나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환자다.

이 사실을 버티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싫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히크만 덕분에 내가 치료받고

한 번 더 살아갈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고마운 생각도 든다.



다음 날, 주치의 교수님이 회진을 도셨다.


"환자분 병명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고 특별한 유전자 변이나 돌연변이는 없습니다.

바로 1차 항암 시작할 예정이고, 전문간호사가 와서 치료 과정을 설명할 겁니다.

1차에서 중요한 건 관해가 되느냐인데 최근에는 80% 이상 관해가 되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치료 잘 받으시면 됩니다."


백혈병 치료의 1차 관문은

현재 내 몸에 있는 백혈병 암세포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관해'라고 한다.

그래서 백혈병 1차 항암은 관해 항암이라고 하기도 한다.


관해가 되지 않으면

앞으로의 치료 자체가 힘들어지기도 하고 재발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치료 스케줄은 5일간 항암제 투여, 휴식 후 2일 더 항암제 투여.

그 후 내 수치가 회복되면 퇴원이다.



항암 시작 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죽고 싶지도 않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내가 나쁘게 살아와서,

잘못된 삶에 대해 벌을 받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커다란 힘이,

운명 또는 신, 명령 등의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 거대한 파도가 나에게 이렇게 작용해온다.


하지만 인간은 그대로 굴복하지는 않는다.

세상이 나에게 어떤 작용을 했다면

나는 반작용을 해야 한다.

그 반작용들이 모여서 나의 삶이 되고, 인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반작용은

두렵더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치료를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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