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백혈병이 내게 왔다. -1차 항암, 첫 고비

1차 항암, 첫 고비

by 근쌤

2020년 12월 24일.

무균실로 옮겼다.


무균실에서는 식사나 간식 등 음식이 매우 제한되었다.


생식은 전혀 안되며, 무조건 익힌 음식만 먹어야 했다.

간식도 완전히 밀봉된 것 또는 멸균 음식밖에 못 먹었다.

또한 병실 반입물품이 제한되는데,

그 와중에 준비물도 있다.

준비물은 병원 지하 의료기 상사에서 준비할 수 있는데,

내 사정을 들은 삼촌이 준비물을 사다 주셨다.




항암을 앞두고 나의 첫 고비가 있었다.


무균실은 다른 일반 병동과 달리 수치가 저하된 환자들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보호 헬멧을 쓰고 다닌다.

혹시나 낙상을 해서 머리를 부딪힌다면

곧바로 뇌출혈이 일어나고 지혈도 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혈색소가 낮아서

저혈압이나 빈혈이 오는 경우

그 자리에서 갑자기 쓰러지거나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도 많다.


어쨌든 무균실 햇병아리였던 나는

그 헬멧이 너무 쓰기 귀찮았다.

복도 밖으로 나가면 간호사님들이 제지를 하시니

병실 안에서는 헬멧을 안 썼다.



무균실에 올라가기 전,

나는 척수 항암이라는 시술을 받았다.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들은 중추신경계 재발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척수에 바늘을 넣어서 항암제를 투여한다.

이때 뇌척수액이 아래로 흐르면 심한 빈혈과 어지럼증 등

부작용이 있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4시간 정도는 베개도 없이 정자세로 누워있어야 한다.

근데 나는 설명을 듣고도 이걸 까먹고

배게도 쓰고 살짝 일어났다가 자세도 바꾸고 했다.


그런데 이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갑자기 머리도 아프고 그냥 누워있는데 엄청 어지러웠다.


그래서 무균실에 올라온 뒤 거의 하루 종일 잤다


새벽이 되어 잠이 깬 후 잠이 들지 않았다.


머리는 이제 괜찮은 것 같았다.

종일 누워있어서 따분하기도 하고,

화장실도 갈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낙상 헬멧은 쓰지 않았다.


폴대를 끌고 한 발, 두 발 걷는데 갑자기 온 세상이 빙빙 돌았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이 실감 났지만

침대로 돌아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일단 화장실 벽이라도 잡겠다는 생각으로

온 정신을 집중해서 조금 더 이동했다.


드디어 벽에 손을 기대려 하는 순간,

나는 폴대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 이후 눈을 떠보니 병동의 모든 간호사분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내 의식을 확인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화장실 옆 자리 환우분께서 내가 쓰러지는 기미를 눈치채고 바로 간호사님들을 호출하셨다.


일단 의식을 찾았고, 부축을 받아 다시 침대로 간 후

맥박부터 모든 검사를 다 실시했다.


다행히 지금 당장은 이상이 없었지만,

낙상 헬멧을 쓰지 않았기에 뇌출혈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크리스마스 새벽,

나는 첫 번째 고비를 넘겼다.


다음 날 곧바로 mri 촬영을 했고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서

항암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완전히 관심 환자가 되어서

약 1주일 동안은 화장실을 가든 뭘 하든 무조건 간호사님,

조무사님과 함께 해야 했다.


혹시라도 혼자 침대에 앉아있기라도 하는 걸 들키면

혼났다.


소변줄도 끼우자고 하셨는데, 그때 소변줄을 했는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내가 극구 반대해서 소변줄은 끼우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에,

나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를 가더라도 낙상 헬멧을 꼭 챙겼다.



아프기 전에도 그렇지만,

사람이라는 게 참 건방지고 간사하다.


미리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말을 듣지 않다가

호되게 경험해보고 나서야 깨닫는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시작한 항암은 생각보다는 순탄했다.


치료 후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 중 하나는


'항암 치료하면 많이 아파?'였다.


그런데 사실 항암치료가 아픈 건 아니다.

오히려 '힘들다'라는 말이 어울렸다.


일단 몸에 피가 없으니 기운이 없다.

그리고 항암약이라는 게 암세포만 죽이는 게 아니라

증식 속도가 빠른 모든 세포를 다 죽인다.


그래서 대표적인 부작용, 증식 속도가 빠른 세포들이 죽으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탈모, 구내염, 변비, 설사, 항문질환, 피부 건조증 등이다.


탈모는 정말 온몸의 모든 털이 다 빠진다. 항암제 투여 후 바로 빠지는 건 아니다. 나도 첫 항암 후 약 2주 후부터 머리가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대신 머리카락이 계속 있으면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아서

입원 후 바로 삭발을 했다.


구내염은 입 속의 상피세포가 재생되기 전에 죽기 때문에 입에 상처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피곤할 때 생기는 구내염 정도가 아니라, 진짜 아파서 침도 못 삼키고 입도 못 벌려서 물조차 넘길 수 없는 그런 큰 구내염이다. 이 와중에 먹어야 할 약도 있으니까 너무 힘들다.


변비, 설사는 거의 대부분 오는 부작용인데 사람마다 다르고, 피부가 건조하거나 간지러운 증상 더 심하면 두드러기가 생기는 증상도 많다.



나의 경우에는 구내염이 가장 심했다.

그래사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을 24시간 내내 달고 있었고,

가글, 구내염 스프레이 등을 사용했었다.


그때 당시 진짜 입도 못 벌릴 고통이었는데,

다행히도 변비나 설사 등은 없이 구내염만 겪었다.


그래서 꼭 낫고 싶다는 일념 하에 병원 밥, 과일 통조림 등 정말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항암이 끝난 후 약 2주 정도 지나서

백혈구와 호중구 등 혈액 수치가 회복되니까

서서히 아물었다.


이번 치료를 끝내면서,

나의 병도 사라지길,

관해가 잘 되기만을 바라면서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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