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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Apr 07. 2020

#11. 중독

[르포 소설] 중독

 풍이 달라붙어 있는 나와 마이를 동시에 끌고 중앙 테이블 앞에 세웠다. 이윽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 맞선이 시작됐다. ‘미스터 최’가 김 사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8번 여자가 처녀 맞지요?”(한국어)

 ‘미스터 최’의 질문에 나는 피식 쓴웃음이 나왔다. ‘미스터 최’는 참을성 없는 사람 같이 느껴졌다. 내 대답이 늦어지자 그가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와 김 사장을 번갈아 노려봤다.

 나는 지옥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미스터 최’가 가장 크게 충격받을 선물을 주기로 결심했다.

 “처녀 아니에요. 저 남자한테 통역해 주세요.”(베트남어)

 내가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풍과 김 사장의 눈이 벌겋게 타올랐다. 둘 중 누구도 내 말을 통역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이는 풍을 곁눈질하며 내 팔을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살벌해진 분위기를 느끼고 ‘미스터 최’도 눈을 부릅떴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유 노우 You know? 아이엠 낫 버진 I’m not virgin. 아이 해브 어 베이비. I have a baby. 영어로 된 문장을 천천히 말하며 나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미스터 최’는 내 말을 이해한 듯 보였다. 그가 김 사장을 향해 역정을 내며 고막이 터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으니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긴장감이 풀리지 않았는지 내 몸은 아직 파르르 떨고 있었다. 마이가 비로소 내 팔뚝을 움켜쥔 손을 풀었다.      



 대기실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에 있는 번호표를 떼어내 마이의 손에 건네줬다. 그리고 내 가는 눈으로 마이의 큰 눈을 노려보았다. 마이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문 쪽으로 향했다.

 방문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급하게 나를 쫓아와 내 뒤에 서 있는 풍이 보였다. 그가 나의 뒷덜미를 잡아끌려 하자 마이가 막았다. 나는 밖으로 걸어 나왔고 마이가 방문을 닫았다.

 방문이 닫히기 직전 마이와 내 눈은 아주 잠깐 마주쳤다. 나는 마이가 눈으로라도 내게 어떤 변명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마이의 눈동자는 어떠한 말도 담고 있지 않은 진공 상태였다.



 호찌민에서 까이랑으로 오는 야간 침대버스에 누워, 나는 모든 사건을 곱씹어 봤다. 까이랑에서 만난 결혼 중매업자, 마이와 마이의 이모, 맞선녀들 그리고 하노이에 있는 부모님까지. 모두 돈 때문에 한국에 중독된 사람들 같았다.

 마이는 왜 결혼 중매업자를 돕는 것인지, 그 목걸이는 돌려받았는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문득 마이의 이모가 줬던 쪽지 생각이 났다. 나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두 손에 펼쳤다. 후안 마이 3920 1638. 마이의 전화번호를 손에 꼭 쥔 채 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끝)  


글/ 사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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