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설] 중독
김 사장과 풍이 한국인 남자에게 다가가서 일일이 희망번호를 확인했다.
이윽고 중앙 테이블에서 즉석 맞선이 이뤄졌다. 40대 초반의 미스터 박이 번호 2를 지목했다. 란이었다. 풍이 베트남어로 란의 번호를 불렀다. 마이가 란을 중앙 테이블로 데려가 남자와 마주 보게 앉혔다. 김 사장과 풍이 한국어와 베트남어로 순차통역을 도왔다.
“몇 살입니까?” (한국어)
미스터 박의 질문을 풍이 통역해 란에게 전달했다.
“16살이에요” (베트남어)
란의 답변을 들은 풍이 잠시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는 16살은 한국에 시집갈 수 없으니, 19살로 하자고 란을 설득했다. 둘의 대화를 듣던 김 사장이 ‘미스터 박’에게 대답했다.
“19살입니다.” (한국어)
‘미스터 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 사장에게 한국어로 무언가 물었다. 김 사장이 ‘미스터 박’에게 ‘비자’, ‘한국’, ‘오케이’라는 단어를 섞어서 대답했다. 그는 허리를 90도로 숙여 절을 하면서 ‘미스터 박’을 설득했다.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지루했는지, 란은 물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 작은 목소리로 풍에게 물었다.
“삼촌, 저 아저씨 부자예요?”
풍은 란에게 엉뚱한 대답을 했다.
“한국 도착하면 공항에서 바로 도망가! 내가 전화번호 몇 개 줄게. 그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줄 거야.”
란은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윽한 눈으로 ‘미스터 박’을 응시했다. 란의 수줍은 눈이 깜빡거렸다. 풍이 베트남어로 김 사장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16살이 맞고 남자 경험도 없다고 알려주십시오. 싫으면 다른 남자한테 주겠다고 하십시오.”
김 사장이 ‘미스터 박’에게 풍의 말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미스터 박’은 곧바로 결혼의사를 밝혔다.
첫 커플의 탄생이 선언됐다. 김 사장은 커플을 나란히 일으켜 세워 둘의 팔짱을 끼워주었다. 풍이 양팔을 공중에 들어 올려 요란한 박수소리를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따라 했다. 김 사장은 둘을 데리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닫힌 문을 한 참 동안 바라봤다.
풍이 베트남어로 숫자 8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번호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나를 선택한 남자는 40대 중반으로 보였고, 쥐색 양복이 작은지 윗옷의 앞 단추가 열려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미스터 최’였다.
풍이 마이에게 나를 데려 오라고 했다. 마이는 제 자리에 주저하며 서 있었다. ‘미스터 최’가 빨리 진행 안 하고 뭐하냐고 풍에게 독촉했다. 풍이 우리에게 주먹 쥔 손을 들어 보이며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와 마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풍이 갑자기 자신의 윗옷 첫 번째 단추를 풀었다. 그의 목에서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마이의 목걸이였다. 그는 그 소중한 물건을 집어 옷 밖으로 내보이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마이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내 왼쪽 팔꿈치를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나를 세게 당겨서 중앙 테이블로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온 몸으로 버텼다. 그때 김 사장이 혼자 대기실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풍이 급하게 목걸이를 옷 안으로 숨기더니 김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두 사람에게 호텔방을 잡아 줬습니까?”
“그 도둑놈이 방 열쇠 받더니 입이 귀까지 찢어지더군. 아주 좋아 죽더라고”
둘은 한국인 고객에게 대화 내용을 들키기 싫은지 베트남어로 서로 대화했다.
글/사진: 박경주